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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부모님의 결정에 따라 우리 집은 인테리어 공사를 계약하고 2주 남은 시점부터 집청소를 시작했다.
누군가가 스트레스 받아서 죽고 싶을 때 인테리어를 하면 된다 했던가. 헛소리가 아니었다는 듯이 우리는 하루 하루 시들고 있다. 
분명 지인의 소개로 알게된 인테리어 집이었는데, 역시나 나의 지인은 아니었기에 아쉽게도, 당연하게도 그들은 남이었다.
여름이 오기 전 전체 샷시교체와, 집의 절반이상을 인테리어 및 수리를 하기로 결정 했다. 이렇게 대공사일 줄 처음엔 몰랐다.
생각보다 해야 될 것들이 꽤 많았다. 샷시 선택, 인테리어 스타일 결정, 디자인 확인, 도안 확인, 시공 순서 일정 짜기, 엘리베이터 사용 각서, 필요 없는 가구 처리, 인터폰 교체, 몰딩유무 등등. 해야 할 건 많았고 집에는 사람이 없었다. 줄자와 친해질 수 있었던 기간이었다. 
 
우리 집은 생각보다 짐이 없다.
가족 구성원은 4명인데 2명은 정리하는 걸 너무나 좋아하고, 2명은 다 쓸데가 있다는 생각으로 버리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집안의 실세는 한 분이시고, 그 덕에 짐이 생길 틈이 없다. 생긴다 하더라도 결국은 정리될 뿐이다. 
이전에 서재방에 배관누수로 곰팡이가 핀 적이 있었는데, 우리는 곰팡이를 발견한 김에 서재에 있는 책들을 정리를 했었다.
무려 차로 두 번을 가득 실어서 이동시켜야 할 정도로 많은 책들을 한 번에 버렸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 중 몰랐어야 덜 슬펐을 소식 하나가 아빠가 가지고 있던 많고 많은 고전소설 책들도 그때 다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이미 허리가 나갈 정도로 지친 몸상태였기에 나중에는 손에 잡히는 모든 것들을 확인도 안 하고 묶어두었다. 거기부터 아빠의 책들은 내손에서 떠나버렸던 것이다. 어느 날 아빠가 내가 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보고 말씀하셨다. "어! 그 책 우리 버린 건데?" 그때 직감했다. 아마도 앞으로 살 책들 또한 아빠가 버린 책들에 속할 것이라는 것을. 
어쨌든 그 당시 서재 책들을 버리려고 거실에 쌓아두었다가 이왕에 정리하는 거 방에 있는 책들도 정리하자는 말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집안 대청소가 시작되었었다. 아마도 다른 집에서 우리 집을 봤을 때, 이사를 가는 줄 알았을 수도 있다.
나는 그때 이젠 털어도 더 이상 먼지하나 나올 게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또다시 집안의 곳곳에 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으면 이제 버려야 한다는 말을 기준으로.
우리는 이젤도, 목재 책상도, 목재 식탁도, 베란다에 있던 피아노도 전부 버리기 시작했다. 선물 받은 도자기들도 정리 대상이었다. 왜 있는지 모르는 타일들도. 그래도 식탁의 경우 상태가 좋아 당근에 올려두니 적십자였나 어디선가 가져가기로 연락이 왔다. 
이참에 그릇들도 정리하기로 했다. 쓰던 것들을 버리고 선물 받았던 그릇들로 교체하기로 정해졌다. 도자기를 버릴 때는 자루를 구매해야 한다. 6000원이었지만 아저씨가 일일이 망치로 하나하나 다 깨야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수고스러움에 잔돈을 받을 수 없어 만원을 냈다. 옷들도 버리기 시작했다. 겨울 옷, 여름 옷 말할 것 없이 올해 입지 않았다면 파란 봉지안으로 들어갔다.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눈앞에 봉지 개수가 쌓여 있었다. 진짜 이게 맞나? 하루하루 허리가 나갈 것 같다. 그래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피아노를 버릴 때는 5만 원의 수고비를 내면 수거해 가시는 업체가 따로 있다. 레쓰비와 현금 5만 원을 함께 준비해 두었다. 
 
관리사무소에 처음 가봤다. 1층에는 노인정도 있었는데 지하에는 탁구실도 있다 한다. 예전에 아빠랑 탁구를 한번 치러 갔던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한 희미한 기억이 희미하게 사라졌다. 추억을 회상하기엔 할 게 너무 많았다. 승강기를 사용하기 위해 보증금 10만 원을 내고 5일 이상 사용하는 날짜를 추가로 원금 + 추가금의 돈을 입금시키고 왔다. 엘리베이터에 승강기 사용료가 인상됐다는 안내문을 봤을 때 "이런 것도 있었네."하고 넘겼던 부분에서 인상된 그 돈을 내야 되는 대상자로 바뀐 날이었다. 세대 내부 공사 신고서와, 혹시 모를 민원 방지를 위해 5세대 이상의 공사 동의를 구한 공사 동의서도 함께 제출하였다. 승강기 사용 각서도 제출해야 승강기에 보양재를 붙여준다.
 
인터폰을 교체할 때는 선택지가 3개정도 있다.
1. 인테리어 업체, 2. 관리사무소와 연계된 업체, 3. 인터넷 구매.
그중 가장 싼 곳을 선택하면 되는데, 동일한 모델인데도 불구하고 가격이 80, 40, 30이 되는 것을 보고 정신 바짝 차려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지인 찬스라 생각했던 신뢰도가 그때부터 약간 흔들렸던 것 같다. 80은 너무 부른 것 아닌가.
인터넷으로 구매 할 때는 1층 로비와 연결이 되면서, 현재 집에 있는 모델과 호환이 되는 모델을 찾아야 한다. 1층 로비에 설치되어 있는 모델 브랜드와 동일해야 호환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업체들 모두 동일한 브랜드의 3,4가지 모델들을 보여줬었다. 기능이 많을수록 가격 또한 올라갔지만, 적당히 필요한 모델을 선택했다. 
 
인테리어 공사 기간 동안 마실 수 있는 음료수들도 구매를 해두었다. 아무래도 여름은 아니라 더위에 지칠 리 없지만 그래도 소소하게나 힘내시라는 마음으로. 
 
주변에서 인테리어 공사한다 하니 아침, 저녁으로 꼭 확인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꼼꼼히 보지 않으면 어떻게 해둘지 모른다는 말이었다. 사실 꼼꼼히 본다 해도 내가 잘 돼 가는지 잘 안 돼 가는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일반인의 눈으로 과연 그걸 알아챌 수 있는 것인가. 그럼에도 항상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가는 것을 보면 일반인의 눈으로도 확인이 될 정도로 처참한 상태를 목격한 사람들이 있기에 하는 소리겠지? 
 
한 편으로는 걱정되고, 다른 한 편으로는 기대가 된다.  
무엇보다 집안의 평화가 절실하다.
  

식탁의 마지막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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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날들의 향연을 지나 5월 7일이 되었다. 화창한 하늘을 보니 오늘 하루도 기분 좋은 하루가 될 것이라는 알 수 없는 확신이 드는 그런 좋은 하루였다.  
5월 7일, 그날은 친구를 만나 함께 클래식을 들으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다들 클래식을 좋아하는가? 아마도 내가 처음 클래식에 접했을 때의 나이가 중학생 때였을 것이다. 학교 숙제로 클래식 듣고 오기가 있었던 것 같았는데, 친구 중 한 명이 예술의 전당에서 일하고 계신 분을 알고 있어서 그 덕에 좌석까지 업그레이드되어 볼 수 있게 된 좋은 기회가 있었다.
좌석도 좋았고, 클래식도 너무 좋았지만, 친구들은 나와 달랐나 보다. 너무 어렸던 나이가 문제였던 걸까. 우리는 인터미션 때 나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내 입장에서는 참 아쉬웠던 기억이다. 친구들이 싫다 하니 나도 싫다 했던 그때, 사실 난 너무 좋았었으니. 그래도 그때는 친구들이 제일 좋았던 나이였다. 그 아쉬움이 얼마나 컸는지 아직도 그날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내 머릿속에 중학교 때 기억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날만큼은 선명하다. 내가 의자에 겉옷을 어떻게 벗어두었는지도 기억이 날 정도니까..
 
어쨌든 나는 그 이후로, 내가 클래식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클래식을 들으러 자주 왔다. 어느 날 혼자 왔을 땐, 무슨 음악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잠이 솔솔 와서 잠깐 당황스러웠었다. 그 정도로 음악 소리가 감미로웠던 것일까.
종종 클래식 공연 후기에서 누군가 박수를 쳐서 사람을 깨운다거나, 지휘자가 코를 고는 소리를 듣고 골탕을 주기 위해 북을 치게 한다거나의 상황들을 읽을 때마다 설마 그런 거에 놀랄까 했는데, 막상 내게 졸음이 오니 무슨 말인지 확 체감이 되었다. 그 이후로는 공연을 오기 전 날 잠을 충분히 자고 온다. 효과는 꽤 있는 것 같다. 
박스석을 예매해 본 적이 있는가? 나로서는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툭 튀어나와 있는 공간이 주는 매력이란, 가봐야 안다. 공연하는 모두가 유독 잘 보인다. 2층이라 전체적인 시야도 아주 좋다. 하지만 그 특유의 장점을 나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듯. 경쟁률에 치여 예매하기 너무 어렵다. 그래서 찾게 된 두 번째 마음에 드는 자리. 아마도 예술의 전당에서 오케스트라를 들으러 갈 때마다 거의 동일한 자리를 예매하는 것 같다. 이 자리 역시 모두가 다 보이는 자리라 마음에 든다. 피아노 치는 연주자분의 손가락까지 잘 보이는 자리랄까. 
아, 천당석이라고 들어봤는가.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천당석이라고 불리는 거의 꼭대기에 있는 자리가 있다. 왜 천당석인가 궁금해서 예매해 본 적이 있었는데 거긴 정말 무섭고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혹시라도 그럴 일은 없겠지만 헛디디기라도 하면 까딱하다간 진짜 천당에 가겠더라. 계단을 무서워하는 나로서는 그날 이후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나 좋아라 하니 우리 가족 역시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올타쿠나 하고 가족 모두의 마음을 이참에 사로잡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봤던 공연이 이무지치와 한경 필하모닉 공연이었다. 다행히도 가족들 모두 그때 이후로 클래식에 대한 좋은 감정이 들었는지 우리는 공통된 취미를 얻었다. 
 
친구들은 고맙게도 내가 클래식을 좋아한다는 것을 잊지 않고 좋을 것 같은 공연이 보이면 나에게 연락을 준다. 덕분에 굳이 내가 찾아서 볼 필요가 없다. 이번에는 무려 1+1 이벤트를 한다며 정보를 물고 온 친구덕에 우리 가족들에게도 득템의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우리는 위치만 다르게 같은 날 함께 자리했다. 나는 내 친구와, 우리 가족은 다른 곳에.
이번 디즈니 & 픽사 OST 공연은 중간중간 뮤지컬도 함께 했는데 남자분, 여자분 모두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들은 아마도? 언제나처럼 남다른 위트로 사람들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했다. 그래서였을까. 이번 공연에서는 박수를 꽤 많이 쳤다. 남자분은 톰과 제리의 제리 느낌이었다면, 여자분은 숲 속에 사는 요정 같은 분위기였는데 특히나 남자분이 알라딘 노래를 부르실 때는 정말로 동화 속으로 빠진 기분을 느꼈다.
이번 공연으로 가장 크게 흥미를 갖게 된 부분은 색소폰이었다. 우리 집에는 아빠가 색소폰을 불고 싶다 하셨던 적이 있어서 색소폰이 있다. 집에 있던 그 악기가 저런 소리를 낸다는 것은 참 새로웠다.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취미로 플룻을 꽤 오래 배웠던 적이 있어서, 색소폰을 만났을 때 허풍을 치며 불어봤다가 큰코다쳤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생각보다 폐활량이 엄청나게 필요했던 악기로 기억하는데, 그만큼 공간을 감싸는 그 풍성함을 바로 이 공연에서 처음 느꼈다. 아빠가 저 정도까지 불려면 어느 정도의 연습이 필요할 까 싶다가 이참에 내가 배워볼까도 생각해 본 하루였다.
 
오케스트라를 들으러 가면 항상 내 시선을 사로잡는 한분 혹은 두 분이 존재감을 뿜으며 그곳에 자리하고 계신다. 가장 뒤에서 북도 치고, 실로폰도 치고, 뭔가 아주 분주하신 분. 박스석에 앉아서 이분들만 봐도 순식간에 공연이 끝나있다. 나중에 찾아보니 타악기(퍼커션) 연주자라 하시던데, 여러모로 참 대단하신 것 같다. 저 정박을 어떻게 저렇게 흔들리지 않고 찾을 수 있을 까도 싶다가, 얼마나 많은 악보를 볼 줄 아는 것일까 싶다가도, 저 순서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바로바로 들어오는 걸까 싶달까? 말 그대로 멋지다. 만약 오케스트라에서 이런 타악기 연주자가 없다면 아마도 풍성함이 배는 줄 것 같다. 물론 각자의 공간에서 소리 내는 악기들은 모두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나에게 음악회는 언제나 즐거웠지만 갈 때마다 내 귀를 사로잡는 악기들은 항상 달랐던 것 같다. 어떤 날은 첼로가 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바이올린, 어떤 날은 피아노, 이번에는 색소폰. 그 와중에 늘 한결같이 관심이 갖던 게 타악기 연주자인 것 같다. 
 
인생이 하나의 오케스트라라면 나는 무슨 악기를 다루고 있을까.
이번 생은 잘 모르겠지만, 다음 생이든, 이번 생에서 남은 생을 다 모아서라도 나는 타악기 연주자가 되고 싶은데 이제는 욕심일까 싶다. 어렸을 때는 모든 게 그냥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제는 모든 것이 왜 이리 무겁게 다가오는지.
엄마 아빠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걸까? 다시 봐도 대단한 것 같다.
부모님은 과연 어떤 악기를 다루고 싶으셨을까? 꿈은 이루었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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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도 올해도 봄이 오는 걸 보면 시간은 여전히도 흘러가고 있나 보다.
벚꽃은 떨어진다, 떨어진다 해도 아직까지 굳세게 매달려있는 애들도 있고, 이미 꽃비로 흩날린 애들도 있다.
오늘도 저녁 산책을 하면서 꽃비를 꽤 맞았다.
날씨도 웃긴 게 어제는 4월이 아닌 10월 같다가도 오늘은 영락없는 4월의 어느 날이더라.
바람이 따뜻해서 살랑살랑 기억도 안나는 어느 하루의 추억이 생각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늘은 또 알고 지내던 지인이 연락이 왔다. 날씨가 좋아졌다며 하루 만나자는 연락이었는데 반갑다가도 꼼질거리는 그 어떤 느낌에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이가 먹긴 먹었는지 이제는 길을 가다가 햇살이 닿아 빛을 내고 있는 풀잎들이 있으면 잠깐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왜 그렇게 어른들의 사진첩에는 꽃 사진, 나무 사진 등등 자연 사진이 한가득한가 했던 날들이 있었는데 ㅎㅎ 이제는 내가 그러고 있네.

또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요즘 들어 그렇게 학생들이 예뻐 보인다.
얼굴이나 외적으로 미의 기준이 낮아졌다기 보단 그냥 그 젊음이 주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된 게 맞지 않나 싶다. 내가 대학생 때만 해도 그저 말 못 하는 아기들만 귀여워했었는데 이제는 대학생들도 그렇게 사랑스럽고 귀엽게 보인달까.
친구들을 만나러 종로나 홍대, 이태원 정도 가면 젊은 친구들이 한가득 보이는데 그때마다 정말 귀엽고 예뻐 보인다.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또 그렇다고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데. 참 알 수 없다.

눈이 자꾸 안 보여서 이제는 진짜 안경을 써야 된다. 안경을 쓰면 뭔가 인상이 더 차가워지는 것 같아서 안 썼었는데 이제는 안 쓰면 얼굴이 안 보인다.
흐릿흐릿해서 초점이 나가 있달까.
근데 또 그게 장점이 될 때도 있다. 길을 걷거나 자세히 볼 필요 없을 때는 오히려 좋다. 집중해도 안 보여서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 얼굴도 안 보인다.
예전에는 시선이 의식돼서 불편했는데 이제는 모두가 배경이다.
블러처리된 배경이라 가끔 주인공들인 친구들 얼굴도 못 봐서 붙잡힐 때가 있지만 그게 뭐 중요할까.

공허하다는 기분이 자꾸 든다.
봄을 타나? 내가 그럴 리 없는데, 이것도 나이가 들어서 더해지는 감정일까.
시간의 흐름이 가끔은 너무 빠르게, 가끔은 너무 느리게 느껴진다.
빠르지 않았으면 좋겠는 그 시간에는 빠르게 가고, 빠르게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또 어떤 시간에는 고정이라도 된 것 같이 멈춰있고.
가끔 보면 시간이 참 무정하달까. 그렇기에 태연히 지금도 흘러가고 있는 거겠지.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며, 오늘은 좋은 꿈을 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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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여러 연말 약속을 지나 어느덧 2024년의 마지막 하루가 되었다.

2024년이 되었을 때도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 발만 내딛으면 2025년이 된다니.

2024년에는 꽤 많은 비극적인 사건들이 있었다. 러시아 전쟁에 참전한 북한 병사의 이야기들이나, 며칠 전 일어난 항공기 추락 사고라던지. 공평하게 흘러가고 있을 시간에서도 공평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들이 지나갔다. 어렸을 때는 이런 사고 소식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왜 잊혀질 때쯤 하나씩 참사의 소식이 전해지는 것일까 의문이 든다.

내가 어렸을 때는 이만큼의 뉴스를 보지 않아서 였을까. 철렁거리는 마음이 익숙하지 않다.

 

나이가 든다는 게 어떤 면에서 보면 축복이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해지는 감정으로 와닿는다. 아마도 이기심이 불러오는 감정일 것이라 생각한다.

 

어렸을 때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경계선이 뚜렷했다. 봄에는 벚꽃을 보러 가고 여름에는 물놀이를 하러 계곡이나, 빠지, 워터파크, 그것도 다 할 때쯤 바다로 여행을 갔다. 가을에는 한강으로 피크닉도 가고, 날씨가 좋으니 친구들과 어디든 여행을 다녔고, 겨울엔 스키장으로 여행 계획을 짰었다. 이빨이 딱딱 부딪힐 정도로 추운 한파에도 친구들이랑 털모자를 눌러쓰며 즐거웠던 시간을 보냈었다.

20대가 지나 30대가 돼 보니 이제 친구들도, 나도 너무 바쁘다. 20대에는 공부만 하면 나머지는 다 놀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30대에는 놀 시간을 만들기 위해 꽤나 노력이 필요했다. 더 이상의 계절에 따른 감성은 내 인생에서 사라지고 있다. 옛말에 젊을 때 더 많이 놀아야 된다는 말이 이제는 퍽 무슨 뜻이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다.

 

어렸을 적에 해 질 녘까지 친구들과 신나게 놀이터에서 놀다가 배고파질 때쯤 집으로 들어갈 때의 기분을 기억하는 가. 나의 10대와 20대는 아마도 놀이터에서 놀던 그때의 꼬마였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가족이 있는 집으로 들어온 기분이다. 친구들과의 시간이 줄었다면,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은 늘었다. 어쩌면 엄마, 아빠는 내가 친구들과 다 놀다 오길 기다려 준 것 같다.

부모님과 대화하는 시간이 꽤 즐겁다. 나이에 따른 충고도 가끔 들을 기회가 있는데 최근에는 살짝 무서운 말을 들었다.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시간은 아무렇지 않지만 30대에서 40대로 넘어가는 시간은 꽤나 힘들다는 것을. 아직 시간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뭐가 어떻게 다르다는 건지 알지 못하니, 사실 두렵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간이 흐르기에 나이가 드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고, 그렇기에 나 또한 늙어가는 게 당연한 건데 피터팬 증후군이라도 걸린 것인지 요즘 들어 참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감정이라는 것은 참 무섭다. 비옥한 토양이 쌓이면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숲이 되고, 땅에 있는 수분이 다 뺏기면 아무것도 살지 않는 사막이 될 수 있듯이 감정이 쌓이면 그게 나의 얼굴이 된다. 내 얼굴에는 내가 쌓아 뒀던 감정을 머금고 있다. 가끔 거울을 본다. 내 무표정에 인색함이 있지 않은 지, 내가 웃을 때는 어떤 얼굴인지 관찰한다. 주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체크해봐야 한다. 무관심 또한 조절할 필요성이 있다. 사실상 조금이라도 귀찮아진다 싶으면 무관심해지는 게 더 심해졌달까. 내가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무관심이 당연해진다면 나 또한 그들의 기억 속에 무의 상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나의 감정에 모든 것들을 품을 수 있지 않더라도, 적어도 생명체가 숨 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 장점 중 하나로 오래 걷기가 있다. 2만 보도 걸으니 걷는 건 자신이 있었다. 물론 믿는 구석이 있었다. 표지판. 표지판만 보면 어디서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기에 난 새로운 길에서도 내 체력만 되면 그냥 걷는 것을 좋아했다.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누군가가 만들어 둔 표지판이 있지만 인생에는 그 표지판을 내가 만들어야 한다.

어디인지도 모른 채로 익숙하게 너무 많이 걸은 것이 문제였을까. 길이 안 보인다.

어렸을 때와, 나이가 들어 길을 잃는 게 다른 것 같다. 뭐 랄까. 어두움의 깊이가 다른 것 같달까. 검정에도 다 같은 검정이 아니듯 내가 걸어온 길이만큼 더 깊고 더 진해진다. 어쩌면 사실 표지판이 있는데 내가 있는 곳이 너무 어두운 것일까도 생각해 봤었다. 근데 그렇게만 생각하면 너무 슬프기만 하니까 그만두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왜 어둠도 시간이 지나면 눈이 적응을 한다 하지 않는가. 슬슬 보일 때가 된 것 같다. 그래서 내년엔 더 좋은 일들이 생길 것 같다.

그런 거 보면 엄마, 아빠는 얼마 큼의 어두움에 적응한 것일 까?   

 

2025년에는 올해보다, 지금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자. 더 많은 감정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세상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제 진짜 곧 지나갈 2024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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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1월이 되었다. 이제 올해가 가기 전까지 단 두 달만을 남겨둔 상황이다.
나는 과연 올해에 어떤 삶을 살았는가.
최선을 다해 바쁘게 살았을 까.
결과적으로 나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바쁘게 살지 않았다 해서 여유를 가지고 나를 위해 살았나 생각해 봐도 나는 이도저도 선택하지 못한 한 해였던 것 같다.

차라리 완벽하게 편안한 쉼을 선택한 것도 아니라는 부분이 아쉽다. 왜 그랬을 까.

나이가 먹을수록 1년의 단위가 참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체감 상 거의 버스 정류장 지나가듯 한 달, 두 달 그렇게 지나가는 기분이 든다.
그 사이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잠시라도 눈을 떼면 이미 손에서는 멀어져 원래 내려야 할 정류장이 아닌 그다음 정류장으로 가고 있는 상황이다. 처음엔 그 상황이 당황스러웠는데, 이제는 더 늦기 전에 그다음 정류장에서라도 내려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친구 관계도 그렇다. 나도 모르게 멀어져 버린 내 친구들이 올해도 존재한다. 어렸을 때는 친구를 사귀는 게 참 쉬웠던 것 같은데 이제는 친구를 잃는 것 역시 참 쉬워진 것 같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 수 없듯이 모두가 다른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기에, 그 사이에서 오는 아쉬움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 어쩌면 이유가 되는 것 같다. 
어렸을 땐 같은 시간 속에서 다른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현실이 새롭고 흥미롭게 다가왔는데 어느 정도 성장한 지금의 상태로 보면 흥미롭게만 생각할 수 없는 것 같다. 아마도 나 또한 변해버린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일 뿐이겠지.

 

나는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생각이 쌓이고 그 쌓인 생각 위로 또 다른 생각이 쌓이는 것이 나는 참 좋았다.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마도 나이가 들면서 얻을 수 있는 큰 장점이라 생각했었다. 간과했었다. 생각에는 좋은 감정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렸을 때는 기쁨의 기준치가 낮았던 것 같다. 풀밭을 걸어가도 신이 났고, 모든 게 궁금했고, 그래서 모든 시간들이 추억이 되었다.

하지만 커가면서 기쁨이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기쁨보단 슬픔이라는 감정에 대해 더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모든 것에 무뎌진 감정을 갖게 되었다. 맞다. 나는 어쩌면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던 슬픔에 대해 배워가고 있는 것 같다. 감정은 다양하기에 이 시간이 지나면 나는 또 다른 감정에 대해 배우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인간이라는 기준치에 맞는 감정들을 가지게 될 테니 지금의 이 생각도, 익숙해지자.

아! 그래도 자격증을 두 개나 땄다. 새로운 환경에서 경험도 해보았다. 잘 되지 않은 결과라 할지라도 꽤 여러 곳에 발을 넣어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올해의 나에게 부족하다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던 이유는 아마도 세상 모두가 나보다 더 바쁘게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인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오늘, 내일을 더 열심히 생각하고 살아가기로 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이 어느 정도 일지 몰라도 열심히 살고 싶다. 오늘 같이 또 후회되는 시간을 갖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년엔 더욱 발전한 나를 만나길 바라고 바란다. 힘내보자!

 

 

 

 

그대가 자신의 별을 따라가는 한, 영광스러운 항구에 실패 없이 도달할 수 있으리라. - 단테의 신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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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았던 어느 하루, 경희궁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원래도 좋아했던 에스프레소를 유럽여행을 통해 더 좋아하게 된 나는 오늘도 이탈리아에서 마셨던 그 맛을 잊지 못해 주문해 보았다. 그리고 메뉴판 끝에 내가 좋아하는 샤케라또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들 샤케라또에 대해 알고 있는가? 어느 날 문득 처음 가본 카페에서 샤케라또를 발견했다. 이름이 참 특이하네 싶었던 나는 주저없이 주문했고 원래도 쓰고 단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기가 막힌 데스티니를 느낄 수 있었던 맛이었다. 에스프레소를 시럽과 함께 얼음과 미친 듯이 흔들어 마시는 음료를 도대체 누가 처음 만들어 먹었을까? 그 누가 되었든 내 입맛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카페에 잘 없는 메뉴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메뉴판에서 만날 때는 기대감에 부풀어 주문하게 되는 음료 중 하나이다.
다행히도 나는 카페인에 놀라울 정도로 무디다. 하루에 커피를 5잔 마셔도 전혀 두근 거리지 않는다. 잠도 물론 잘 잔다. 그렇기에 부담 없이 다양한 커피를 맛보고 즐길 수 있다. 처음 에스프레소를 주문한 날 느꼈던 작디작은 나의 컵을 기억하며 두 번째로 여운을 즐길 샤케라또도 같이 주문했다.

커피가 나오길 기다리며 창가쪽에 여유롭게 자리를 잡았다. 창문 밖에 조경으로 돌들을 담처럼 쌓아 넣어둔 벽을 보고 있자니 날씨가 딱 이 정도 가을의 느낌이 날 때 친구랑 같이 간 카페에서 주문했던 후추 에스프레소가 생각났다. 성당을 전망으로 옥상에 있는 카페였는데 메뉴를 주문하러 간 데스크가 이런 돌들로 껴서 만들어져 있었다. 사실 그때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때 주문했던 후추 에스프레소 때문이었다. 후추가 생각보다 에스프레소랑 어울리데?
후추 에스프레소를 생각하다 내가 언제부터 커피를 이렇게 좋아 했었나 기억을 되돌려 보았다. 아마도 대학생 때 처음 만났던 커피 장인이 내가 커피를 좋아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나는 대학생이 되면서 드디어 커피를 당당하게 마실 수 있었다. 초등학생 때 엄마 옆에서 한 개씩 얻어먹었던 에이스 과자에 묻힌 맥심커피 맛. 나의 소중한 기억 중 하나이다. 우리 엄마는 커피는 커서 먹어야 된다고 했었다. 그리고 지금에나 카페들이 이렇게 많지 사실 내가 고등학생 때는 카페도 그렇게 많이 있지 않았었다. 있어도 핫초코를 먹었었지. 그렇기에 대학생 때부터 진정한 커피를 마시게 되었었는데 진정한 커피 맛에 눈뜬 날이 바로 친구들과 간 정동진 여행 때였다.

정동진역 옆에 있는 해돋이를 볼수 있는 카페에는 커피 장인이 살고 있다. 대학생 때 갔던 기억이라 지금은 없어졌을 수도 있겠지만 그곳에는 엄청난 장인이 바다와 함께 npc처럼 존재했다. 그 당시 밤 기차를 타고 정동진역에서 내리면 새벽이 지날 때까지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1. 새벽이 지날 때 까지 깜깜한 새벽 공기를 맞으며 역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는다.
2. 기차가 정동진 역에 도착하자마자 역 앞에서 방을 빌려주기 위해 기다리고 계신 여러 어르신들 중 한 분의 집으로 가서 3만원을 내고 대실한다.
3. 걸어서 갈수 있는 위치의 24시간 하는 카페를 찾아간다.

우선 첫번째는 해보려다가 너무 무서워서 그만뒀다. 정동진을 찾아갈 때쯤엔 내 시간은 항상 겨울이었는데 추운 바람과 함께 노숙을 하기엔 그곳은 너무 깜깜했다. 두 번째, 친구들과 선택했던 인심 좋아 보이는 할머니네 집은 너무나도 더러웠다. 바닥이 끈적거리는 건 양말로 어떻게든 버텨보았지만 침대 위에 머리카락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의 털은 3만원을 깃털처럼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의 더러움이었다. 우리는 바닥에도 침대에도 못 앉아 있다가 해가 뜨자마자 벗어났다. 소중한 추억이며 값진 경험이었다. 세 번째로 선택했던 카페는 폭신한 기다란 의자가 가득 있었다. 커피 냄새가 가득했던 그곳은 우리 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와서 따뜻한 커피를 시켜 마셨다. 그 새벽에 자리가 없을 정도였으니 우리만 몰랐던 히든 카페였던 것 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할 때쯤 바리스타 자격증이 줄줄이 있는 한쪽 벽을 보았다. 장인이 살고 있었다. 외국어로 휘갈겨 뭔가를 증명하는 것 같이 생긴 자격증들이 한가득 있었다. 아저씨 장인이셨구나 싶은 마음으로 마셨던 커피는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아직 잊히지가 않는다. 여기저기 따뜻한 커피로 몸을 데우고 수면제를 먹은 것 같이 픽픽 쓰러져서 자는 모습을 보면 진짜 게임 속 여관느낌이었다. 해가 뜨기 시작하면 통유리였던 카페에서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주황색의 빛이 카페 가득 들어오던 그날의 따스함은 오랫동안 기억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창문 밖으로 선선한 바람이 흘러 들어왔다. 어디선가 나타난 호랑나비가 내 옆에서 날아다녔다. 열린 창문은 못 찾고 닫힌 창문들에만 다가가 부딪히는 중이라 문을 열어줘야 되나 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나의 커피들이 나왔다.

나의 샤케라또. 그건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가 아니였다. 내 거품 어디 갔어?
10월의 시작, 나의 설레는 마음은 샤케라또 거품처럼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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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우리 아파트 단지는 지금 엘리베이터 공사를 한다. 4월부터 9월까지의 대공사. 랜덤인 것 같은 공사 날짜가 엘리베이터에 공지되었을 때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던 모두가 조용해졌다. 3월의 선선했던 그날에 우리가 그토록 조용해졌던 이유는 별거 없었다. 무려 한 달 동안 하는 대 공사에 하필이면 가장 더울 때의 한 달이 우리 아파트가 된 것뿐이랄까.
초조하게 다가오는 공사날짜에 맞춰 물이나 쌀 등 무거울 만한 택배들을 미리미리 주문해 두었다. 그래도 한 달이면 길고도 짧은 시간이니까. 사람들도 모두가 한 마음이 된 것 같이 비슷하게 준비해 두는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됐겠지.(이 문장은 플레그였다.)"라는 생각과 함께 기다리던 엘리베이터 공사가 시작되었다. 
 
최근 여름에 하는 엘리베이터 공사로 인해 고령의 어르신들께서 집안에서 발이 묶여 병원도 못 가고 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현실이 된 이 순간, 가령 어르신들 뿐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내 나이 아직 젊다면 젊은 나이에 속하는 데도 정말 땀이 비 오듯 하더라. 단순한 근력 운동도, 유산소 운동도 아니다. 일직선으로 이어진 계단도 아닌 이 돌고 돌아야 되는 무수한 계단은 공포로 다가오기 충분했다. 그것도 고층에 살고 있다면? 나도 이렇게 힘든데 어르신들은 정말 아찔하다. 
우리 집은 17층이다. 처음부터 냉장고를 채워둘 것이 아니었다. 운동을 했어야 했다. 체력을 쌓아 뒀어야 됐다는 말이다.
생각보다 체력은 쉽게 쌓이지 않았다. 재활용을 버리러 가는 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날,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날, 외식하러 가는 날, 택배를 찾으러 가는 날, 자격증 받으러 간 날, 엄마랑 운동 가는 날. 모든 날들을 다 쌓아도 나의 체력은 그대로였고 그때마다 내 숨은 턱끝까지 차오르며 곧 죽을 사람처럼 헉헉거렸다. 이 정도면 평소에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건지 반성을 해야 될 체력이었다.
 
숨찬 하루하루를 보내던 우리에게 장마가 왔다.

비가 온다. = 우산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

이 수식은 평소엔 간단하면서도 상황에 따라 무서운 결괏값을 가지고 있다. 엘리베이터 공사를 하는 이 시점에선 우산을 깜빡한다면 집까지 다시 걸어 올라와 우산을 가져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장마가 시작되고 며칠 후, 누군가 인간은 진화의 동물이라 했던가. 사람들이 문 앞에 우산을 두기 시작했다. 
 
이렇게 힘겹게 집을 나가면 집으로 돌아오는 나에게는 정말 아무것도, 아무런 짐을 들고 올라오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인생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집을 나간 사람 = 집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운반할 사람 

참 웃긴 게 막상 나가면 책임감이 생겨서 뭐라도 사서 오게 된다. 내가 가족을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 이 기회에 알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묵직해진 두 손에서 가족의 사랑을 느꼈다면 이제 다시 현실과 마주해야 할 때. 13층까지 정도를 올라가면 가족의 사랑이든 뭐든 다 내려 두고 오로지 내 몸 하나만이라도 집으로 던지고 싶다. 힘겹게 집에 들어간 후엔 가족들의 손길이 느껴진다. 내가 아닌 내가 가져온 나의 사랑(보통 먹을 거)으로.
 
택배와 배달과도 거리를 두게 되는데(우리는 이때 하필이면 캐리어가 망가져서 두 번이나 캐리어를 받아야 했다.)
원래부터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에 대해 차이가 컸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왜 이렇게 배달음식이 땡기고 사고 싶어지는 게 많아질까. 그래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음식점 대부분 가서 먹는 게 배달해서 먹는 음식 값보다 싸다. 배달비를 내니까 가격이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던 우리는 거의 500원에서 1000원 차이가 나는 가격을 보고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를 등지게 되었다. 포장에서도 가게에서 포장하는 가격이랑 앱에서 할인받고 주문하는 가격이랑 다르더라. 아마도 수수료 때문이겠지라는 생각에서도 예전에 보였던 동네 배달북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이 기회에 배달을 끊고 직접 가서 포장해 오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우리가 얼마나 편안함만을 추구하며 살았었나에 대해서도 고찰해 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공사를 통한 또 한 가지의 순기능, 바로 주민들과 꽤 자주 볼 기회가 생긴다. 적어도 도착지점이 나의 가는 길 사이에 있거나 나의 도착지점보다 위라면 우리는 함께 걷는다. 물론 아무 말도 없이 걷기도 하지만 보통 그 순간의 마음은 같다. 너 마음이 내 마음이다 보니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묻는 질문 "몇 층 가세요."는 대답으로 들려올 그곳이 어디든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주기 충분한 근본의 힘이 된다. 아이들과도 자주 만날 수 있는데 함께 가진 못한다. 워낙 체력이 달라서일까. 날쌘돌이도 이런 날쌘돌이가 없다. 환한 그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하염없이 나의 젊은 날이 그리워 질 정도였다. 순수한 아이들은 오히려 자신의 도착지점에서 나를 기다려 준다. 힘내라는 응원과 함께 밝은 인사를 하고 뿌듯하게 집으로 들어가는 아이들. 정말 귀여우면서도 그들의 체력이 너무 부럽다. 
중간 중간의 층 사이에 쉬어가라는 의자가 하나씩 있는데 여기서도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이곳에 앉아 숨 좀 쉬었다가 갈지, 지친 나의 멱살을 잡고 집에 올라가서 쉴지. 나는 거의 이중인격이 된 것 같이 번뇌에 빠진다. 처음에는 보일 때마다 쉬어보았다. 한결 편하긴 하지만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늘어졌다. 땅만 보고 쉬지 않고 올라간 날은 4분 만에 도착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체력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시간으로 한 시간을 쏟아야 했다. 적당히 쉬다가 적당히 올라가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는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언제나 순기능만 있을 순 없는 이 상황에서 사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순간은 택배도, 배달도, 약속이 있는 날도 아닌 누군가의 담배 타임이다.
흡연. 
우리 가족은 아무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 덕에 담배냄새에 정말 예민하다. 그리고 일단 간접 흡연으로도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 다는 것이 가장 별로다. 니코틴이 주는 행복을 느끼지도 못한 채 암에 한걸음 다가가야 된다니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순간이란 말인가. 모든 암의 첫 번째 원인이 되는 것이 흡연이다. 담배는 담배를 피우는 시간이 어느 정도였든지 금연을 하는 그 순간부터 몸에 반응이 긍정적으로 온다. 그런 담배. 관리 사무소에서 가끔 마이크를 잡고 방송을 한다. 세대 내의 흡연으로 인해 많은 민원이 발생하니 화장실이나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 것을 권유하는 내용의 방송.
하지만 엘리베이터 공사가 시작되고 담배냄새는 하루를 멀다하고 하루에도 3,4번씩 집안을 가득 채웠다. 
물론 그들이 이해는 간다. 담배를 피기 위해 오르락 내리락 하기 힘들 수 있다. 그럼 그냥 시간대를 정해서 방송을 해줬으면 좋겠다.  차라리 그 시간에 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고 있는 게 나을 것 같다. 담배는 왜 태워야 될까. 그냥 씹어 먹는 사탕이나 껌으로 개발되었으면 좋겠다. 

사람의 권리는 참 답이 없는 것 같다. 나의 권리가 있다면 상대방의 권리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함께 협력하며 살아가는 세상에서 더 나은 방향을 찾아 끊임없이 탐구하며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

담배에 대해서 신기한 상황도 있었다.

어느 날은 3시부터 6시까지 거의 30분에 한 번씩 담배냄새가 나길래, 처음에는 짜증이 났지만 연거푸 나니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담배를 찾게 될 상황이면 담배를 피울게 아니라 울어야 되는 거 아닌가. 본 적도 없는 누군가가 걱정이 되는 순간이었다. 나 이 정도면 인류애가 꽤 있는 것 같기도. 

 

아무쪼록 엘리베이터 공사가 하루 빨리 끝나서 안전하게 새롭게 다시 태어나길 기대한다.

그동안 너무 엘리베이터에 대해 감사함을 못 느꼈던 것 같다.

엘리베이터 공사가 끝나면 물론 아쉬운 부분도 생기겠지만 이번 기회에 당연하게 생각했던 부분에 대해 감사함을 알아갈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 그리고 이번 기회에 살면서 볼일 없었던 스티커를 만나게 되었다. 엘리베이터가 들어 있는 벽에 붙어 있는 스티커.

무슨 의미인지는 갤럭시 서클투 서치로 찾아보기까지 했는데 잘 모르겠다. 대충 주의하라는 경고 스티커가 아닐까 예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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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을 만나러 가고 있는 버스 안, 문득 나의 dap에서 늘어진 것 같은 반주가 시작되었다. 유명한 영화 ost였는데 원래 노래가 이렇게 늘어졌었나. 반정도 듣고 있는 순간 갑자기 슬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준비돼있지 않은 순간에 혹시나 내가 울게 될까 봐 날을 잡아 혼자 있는 날에 펑펑 울고 슬픔이란 감정을 닫아버린다.
최근에 울었던 적이 너무 예전이었을까. 요즘 부쩍 눈물이 튀어나오려 하는 순간들이 늘고 있다.

내가 슬퍼졌던 이유는 이렇다.
인생이 한곡의 노래로 이루어져 있다면 모두가 정박의 노래가 자신의 노래일지 그대는 확신할 수 있는가. 어쩌면 정박의 노래 사이에서도 가끔은 늘어지는 순간도 있지 않을까.
잘못된 노래 가사는 아니더라도 그렇다고 이상함이 없지 않은 그런 노래 가락이 귓가에 흘러나온다 생각해 본다면.
나는 과연 어떤 감정을 우선순위로 느끼게 될 것인가.
고요한 적막으로 나의 노래를 곱씹어 볼 것인지, 위태롭다는 감정이 느껴질지, 이것 또한 나의 인생이다 받아들일지, 노래 가사가 나오기도 전에 음악을 꺼버릴지, 그것도 아니라면 당신은 무엇을 느끼겠는가.

한곡의 노래의 시간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누군가는 노래의 평균의 시간을 계산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 행동이 의미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혹여나 나의 노래가 3분 정도 흘러갔을 때
평균의 시간 속에서 이제 끝을 향해 가고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안심하게 해 줄 요소정도일까.

나의 인생. 나의 날들.
나의 세상의 노래는 몇 분 정도가 적당할까.
나는 아마 수차례 시작지점으로 돌아가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어쩌면 수차례 지금의 이 순간을 나의 음악의 끝으로 선택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음악이 다 완성되지 않은 이 순간을 마지막으로 한다면 영원히 미완성된 곡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미완성의 곡이 완성된 노래보다 가치가 있을 확률은 어느 정도 될까.
억지로 마무리된 노래와 도입부부터 끌렸지만 완성되지 않은 노래.
이 두 가지의 노래를 생각해 볼 때 우리가 선택할 노래는 무엇일까?

내 선택은 이렇다.
나는 두 노래 모두 안 들을 것 같다.
그렇지만 노래가 꼭 누군가에게 들려야만 가치가 있을까.
그렇게 세상이 우리의 존재에 대해 감상할 선택권을 줘야 할까.
미완성된 노래도, 억지로 완성이 된 노래도 노래를 만든 그들의 용기로 만들어진 노래인데 말이다.

모두의 노래가 어떠한 장르를 선택할지는 노래를 만드는 모두에게 주어진 기회이겠지만, 우리의 모두의 노래가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슬픔만 남아있는 곡만은 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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