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왔다. 그제 밤부터 하늘이 흐리기 시작하더니 어제 아침이 되자 온 세상이 눈 속에 덮여 하얀 세상이 되어있었다. 나무에는 눈꽃이 피었고, 땅과 건물들에는 추위에도 녹지 않는 눈이불이 덮였다. 말 그대로 세상이 눈 속에 있었는데 첫눈이 이렇게 커다랗게 온건 정말 오랜만이라 보고만 있어도 참 행복했다.
이제 슬슬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구나라는 느낌이 날 더 즐겁게 만들었다. 수정볼안에 들어있는 것처럼 어느새 밖에는 또다시 눈이 내렸다.
"역시 눈이 내리는 날엔 핫초코지."라는 생각으로 지난번 이마트에서 사둔 미떼를 꺼냈다. 뜨거운 물에 미떼를 녹여주고 우유를 넣고 다시 저어서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주면 맛 좋은 핫초코가 탄생한다. 이렇게 탄 핫초코를 들고 베란다에 나가 첫눈의 흔적과 함께 계속해서 오고 있는 눈송이들을 한동안 구경했다. 여기에 이불이라도 하나 들고 오면 딱일 텐데라는 생각을 하던 중 이전에 내가 베란다에서 자보겠다고 도전했던 날이 생각이 났다.
그런 날들이 있다. 계절마다 해볼 수 있는 삶의 체험 현장.
유독 겨울을 좋아해서 그런지 나는 겨울에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든다. 삶의 체험 현장이라 해서 웅장한 것이 아니다. 가령 한겨울에 황토 맨발 걷기 하기나 베란다에서 자보기 같은 1박 2일에서 나올 법한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황토 맨발걷기를 할 수 있는 공원들에서 한겨울에 사람들이 걷지 않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왤 까"란 생각으로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걸어봤다. 우리 가족들은 그런 나를 보고 "그래, 해봐라"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공원 옆에 있는 그네에 앉았다. 처음엔 양말을 벗고 얼어있는 땅에 발이 닿으니 약간의 한기가 느껴졌다. 황토가 얼어있었다. 걸어봤다. 발바닥이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순식간에 내 따뜻했던 발바닥이 냉골의 상태가 되었다. 그래도 이렇게 시작을 해봤으니 한 바퀴는 돌아봐야 지란 생각을 가지고 빠른 스피드로 빠른 걷기를 시작했다. 다 걷고 난 다음 발을 물로 씻어야 됐는데 엄두가 나지 않아서 양말을 신고 집에 와서 따뜻한 물로 발을 씻었다. 집에 돌아오던 길 내내 우리 가족들은 나를 걱정하면서도 도대체 그걸 왜 해봐야 아냐고 타박을 했지만 나름 재미있었다. 그 후로 나는 겨울이 되거나 좀 추워질 때 공원을 산책하는 순간이 오면 그때의 내가 생각난다. 사람들도 아마 어쩌면 해봤다가 이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일 지도 모른다.
베란다에서 자보기를 한 날은 유독 뉴스에서 한파 주의를 외치던 날이었다.
겨울중에서도 가장 추운 겨울에 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지라 뉴스에서 속보같이 떠있는 한파주의 단어를 보자마자 "오늘이다!"를 생각했다. 엄마, 아빠께 오늘은 밖에서 자볼 것이라 이야기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이전에 나의 형제는 고등학교 때 자신의 선교부 선배의 수능을 응원하기 위해 선배가 수능을 보는 학교 앞에서 강제로 강 추위 속에서 노숙을 한 경험이 있다. 그는 나를 보며 왜 사서 고생을 하냐는 눈빛을 보냈다. 엄마, 아빠는 그때도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냉장고 박스와 신문지, 침낭을 챙겨 나의 형제에게 집을 만들어 주었던 경력이 있다. 그때의 그 사건은 사실 학교 선배들의 강압적 태도 안에서 이뤄진 거라 자발적인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더 추위를 느꼈던 것 같았었다. 내 일이 아닌 해프닝이었기에 나 또한 얼마나 추운지 궁금했었던 마음이 컸다.
엄마, 아빠는 그날도 여기서 침낭 깔고 자다가는 얼굴이 돌아간다며 몇 가지만 해줄 테니 그 위에서 자라하셨다. 난 뭐 얼마나 달라질까를 생각했지만 부모의 사랑은 위대했다. 어째서인지 베란다 창문과 문에 김서림이 끼기 시작했다. 난 베란다에 누워 창문 밖 별을 보고자 했던 것인데 왜 저렇게 하얀 베란다가 되어있을까 싶어 나가 봤다. 바닥엔 우리 집에 있었는지도 모를 두꺼운 돗자리부터 시작해서 이불 요 매트 + 이불 + 침낭 + 파쉬 물주머니 여러 개. 원래라면 베란다에 가면 코가 시린데 그때는 집안보다 베란다가 더 따뜻했다. 뭔가 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잠자리였지만 그래도 베란다에서 자보기가 주 포인트였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자보려 침낭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바닥이 많이 깔려있는 것인지 내 침대만큼 폭신했다. 이게 바로 가족의 사랑인가 싶었는데 가족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었다.
잠을 자다 너무 더워서 뒤척이다 눈이 떠졌는데 누군가가 날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정말 화들짝 놀라서 일어나 보니 엄마와 아빠가 베란다 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밖에서 자겠다는 나를 말리기엔 내 행동이 너무 완강했고, 그렇게 내버려 두자니 내가 얼어 죽을까 봐 걱정이 되셨던 것이었다. 그 새벽에 우리는 서로 놀랐지만 그만큼 웃었다. 다음날 아침 여전히 뽀얀 창문들을 보며 잠에서 깼다. 역시나 나름 재밌었던 기억이다.
어제는 엄마와 밤 산책을 갔었는데, 엄마가 나무들마다 한가득 눈이 쌓여있는 걸 보고 "눈이 많이 쌓여있으면 나무들이 무거울꺼야"라는 말과 함께 어디서 찾아왔는지 모를 긴 나뭇가지로 나무들을 털어주었다. 키가 닿지 않는 곳엔 점프를 하면서 털어주었는데 그 모습이 참 귀여웠다. 슬쩍 내 뒤에 와서 나에게 눈벼락을 맞게 하기 전까지 난 엄마의 따스함에 감동하고 있었다. 그렇게 눈도 맞고, 밟으면서 뽀독 뽀독 소리도 들으며 산책을 하니 슬슬 생각나는 게 있지 뭔가.
한겨울에 붕어빵은 못참지.
붕어빵 파는 아줌마를 찾아 이리저리 다니다 드디어 찾아서 팥붕어빵 4개를 샀다. 아주머니께서 갓 만든 거라 아마 한입 먹으면 잊지 못할 거라 하시길래 두근거림은 배가 되었다. 무엇보다 여기 붕어빵은 아직 2개에 1000원이었다. 감사합니다의 인사와 함께 가장 맛있게 생긴 붕어빵을 엄마한테 주고 나도 하나 꺼내 먹었다. 엄마와 동시에 눈이 마주쳤고 우린 다시 왔던 길을 돌아 붕어빵 두 개를 더 사 왔다. 그 사이 붕어빵아주머니는 줄이 길게 늘어나있었다. 모두가 한마음이었던 것이다. 사실 우리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다 들리도록 너무 크게 맛있다를 외쳤던 것 같기도 하다.
역대급으로 만족했던 붕어빵을 먹으면서 신나게 집으로 향했다. 겨울의 시작이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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