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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와 복싱은 확실히 다르다.

 

헬스를 하고 돌아오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운동 시간이 부족해서인가 싶었다.

1시간을 2시간으로, 다시 2시간 반으로 늘려가던 즈음, 저녁 걷기까지 합치면 하루 운동 시간이 4시간에 이르렀다.

그날 깨달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복싱을 하고 나면 개운했으면 개운했지, 찝찝하거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운동이 잘 안 된 날에도 그랬다. 그렇다면 이 알 수 없는 찝찝함은 무엇일까.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무릎에 염증이 생겨 하체 운동을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상체만 운동을 해서일까. 이것저것 생각하다 결국 답에 도달했다.

 

“때리지 못해서 구나.”

 

헬스에서는 무언가를 치지 않는다.

거기서 뭔가를 쳤다 하면 그거대로 문제일 터.

복싱에 익숙해진 내 몸은 헬스를 시작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공격성을 풀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아직 삼 개월이나 남았는데, 이걸 어쩌나. 그렇다고 같이 하자니 하루 종일 운동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복싱에서 헬스로 바꾸고 나름 장점도 있다. 근육별로 운동을 하니 근육들이 예쁘게 자리 잡고 있다.

전체적으로 몸이 예뻐진달까. 처음엔 우락부락 커지고 있는 내 모습에 잠깐 놀랐었다.

아무래도 식단도 조절해야 하는 건가 싶어 계란을 먹을 때쯤 몸이 안정을 찾았다.

이제 핏이 깔끔해졌다. 바지가 허리 안 맞는 이슈가 생기긴 했어도, 뚱뚱해진 것보단 낫지 않은가.

 

여러모로 복싱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헬스장이 리뉴얼되었다.

못 보던 헬스 기구들이 하루 사이에 등장했다.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그날은 운동만 2시간 48분을 하고 돌아온 날이 되었다.

인간의 몸에 있는 근육들을 어떻게 이렇게 세부적으로 나눠서 사용할 수 있도록 이토록 많은 기구들을 만들었을까.

인간은 위대하다.

단순히 아령 하나만 놓고 봐도 그렇게 많은 동작들이 있음에도, 새삼 이런 기구들을 눈앞에서 목격하니 신기하다.

새로운 기구들 덕에 돌아섰던 마음이 살짝 돌아왔다.

이렇게 된 거, 몸이나 예쁘게 만들고 복싱장으로 돌아가야겠다.

 

 

++

상체 운동만 하다 보니 오른쪽 어깨가 살짝 나간 것 같다.

오른쪽 무릎도 문제였는데, 왜 다 오른쪽만 이럴까.

물론 내가 왼손잡이라 왼쪽에 힘이 더 강할 수 있다 하더라도, 얘들도 좀 강해졌으면 좋겠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조금씩 조절하면서 운동하고 있으니 괜찮아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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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를 좋아한다. 그렇기에 카프카의 소설 대부분을 읽어보았다.
이 책은 잠언과 미완성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는 말에 골라 든 책이다.

카프카의 ‘꿈같은 삶의 기록’. 나는 이 책을 도서관에서 정독했다.
책 내용은 흥미로운 글들과, 흥미 없는 글들이 섞여 있고, 같은 내용에 설명이 더해지거나 표현만 달리한 글들도 반복해 적혀 있다.
나는 미완성의 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뭐랄까. 김이 빠진다 해야 하나. 열린 결말과는 또 다른 감정을 가져다준다.
작가가 마무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상상하는 게 결말이 될 수 없는 게 싫다. 작가가 살아 있다면 질문이라도 할 수 있겠다만 대체적으로 내가 읽는 책들의 작가들은 살아 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은 꽤나 기분 좋게 읽었다.
미완성이라 할지라도 카프카가 카프카답게 쓴 글들이라는 게 독자인 내게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내가 유독 재밌게 읽었던 글들에 대한 독후감을 남긴다.
단편 글 중 몇몇 개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 이게 카프카의 친구 막스 브로트가 적어 둔 제목인지, 카프카가 적어 둔 제목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
아버지에게 무려 100쪽 가량의 편지를 적었다. 여러 편지를 모은 게 아니라 그냥 하나의 편지가 100쪽인 것이다.
‘사랑하는 아버님께’로 시작하는 첫 구절에서 이 둘의 사이를 다정한 부자 사이일 것이라고 속을 뻔 했다.
이 책에서만으로 따져도 35장이 되는 이 편지는 거의 모든 내용이 아버지의 잘못을 논리적으로 따지는 비난문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처음부터 존재하긴 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인데, 어찌 보면 사랑하는 감정이 있기에 이런 장문의 편지도 쓸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아버지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는 주석을 보고 처음엔 다행이네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후의 생각은 좀 달라졌다.
100쪽에 달하는 이 내용들 속에는 어쩌면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본질적인 대화를 해보고 싶던 카프카의 마음이 담겨 있지 않았을까.
연구자들은 카프카 자신도 이 편지가 정말로 전달되길 바랐는지 확실하지 않다 한다. 연구자들은 설득을 하기 위한 편지보단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쓴 글이라 해석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글이 단순히 자기 분석적인 글이었다면 굳이 편지의 형식으로 적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굳이 어머니에게 편지를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점에서도, 자기 분석만을 위한 글이었다면 그녀를 과정에 끌어들였을 이유가 전혀 없다.
이 편지를 여동생과 어머니에게 전달해 주기를 바랐던 것은 어쩌면 자신이 편지에도 남겼듯 아버지와 자신 사이에서 한 번쯤은 자신을 선택해 주길 바란 아들의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는 역시나 달라지진 않았지만.
어른이 된 자신이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들고 대화를 시작해보려 했던 첫 순간이 아니었을까. 담담하면서도 촘촘히 적혀 내려간 그의 글에서 눌러 적힌 화가 보이기 때문이다.

< 조타수 >
짧은 내용의 이 단편은 짧지만 매력 있다.
직위를 무력으로 차지한 자와, 직위로 기억되는 자, 직위에 반응하는 선원들이 나온다.
“내가 조타수 아니던가”
키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조타수 일까, 모두의 기억 속에 조타수라는 기억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조타수인가.
선원들은 이상하게도 두 사람을 완전히 별개의 존재로 바라보지 않고, 오히려 그 둘을 하나로 보고 있다. 어쩌면 기억과 몸을 분리시키지 않고 본다.
그러니까, 두 명의 사람일지언정 하나의 '조타수'로 중첩해서 바라본다.
기억된 자는 말한다. “무슨 사람들이 저 모양이람! 저들도 사고를 하기는 하는 걸까. 아니면 무의미하게 땅 위를 질질 끌며 걸을 뿐인 걸까.”
여기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이것은 기억된 자의 분노일까. 현실에 대한 분노일까.
확실한 건, 키 앞에 서 있던 사람은 무슨 일에서인지 처음부터 화가 많아 보였다는 것이다. 

< 독수리 >
역시나 짧은 단편. 독수리 한 마리와, 독수리에게 쪼이는 남자, 그리고 남자에게 독수리를 끝장내 줄 수 있다면서 총을 가져온다는 신사가 등장한다.
독수리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남자의 입을 향해 돌진해 부리를 깊숙이 찔러 넣었다.
남자는 뒤로 넘어지면서 해방감을 느끼고 독수리는 남자의 넘쳐흐르는 핏속에서 헤어날 길 없이 빠져 죽었다.
이 이야기에서 나의 포커스는 '과연 마지막까지 제일 재밌었을 존재는 누구일까'였다.
셋 중 어느 하나를 우위에 둘 수 없다. 유일하게 목숨이 붙어 있는 신사라 하기엔 처음부터 신사의 목숨은 죽음에 가깝지 않았기에 가산점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남자의 목숨을 가져간 독수리일까.
둘의 대화를 듣던 독수리는 자신의 목숨이 일각에 달려 있다는 사실에 빠르게 결승점을 향해 내리꽂았다. 도착은 먼저 했으니 이긴 재미를 보았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죽음이 결승선에
휘감겨 다가올 줄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죽게 한 독수리의 죽음을 가져간 남자일까. 독수리의 죽음에 대한 도파민보다 자신의 죽음이 먼저 다가왔을 듯하여 재미가 반감되었을 것이다.
역시나 총을 들고 온 신사일까.
하지만 총을 들고 오는 길에 독수리의 어디를 쏠지 기대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에게 눈앞에 펼쳐진 두 개의 죽음은 즐거움보다 허무가 먼저 찾아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글에서 가장 큰 재미를 얻은 존재는 카프카였을 것이다. 이 황당한 죽음을 연쇄로 지켜보았을 그야말로 이 상황을 가장 오랫동안 바라봤을 존재였을 테니까. 물론 이 글을 읽는 독자 또한 카프카와 동일한 감정을 느낄지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겠지.

< 어느 단식 광대 >
흥미로운 이야기. 단식 광대가 좋아할 맛있는 음식은 뭐가 될 수 있었을까?
이미 묻힌 그가 뭘 할 수 있을까.
광대 대신 젊은 표범을 우리에 넣었다. 동일한 공간에서 둘의 상황은 꽤 많은 것이 달랐다.
나는 이 이야기를 두고 나의 혈육과 대화를 해보았다. 물론 그는 이 내용을 읽지 않았기에 내가 짧게나마 설명을 해줬는데 뜻밖에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대답이 나와 나의 흥미를 이끌었다. 
"단식 광대가 마지막에 한 말은 어쩌면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허세를 부린 것은 아닌가?" 
나는 이 부분에 대해 한 번도 이렇게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죽어가는 예술가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었던 자기 방어.
모두에게 잊힌 존재가 우리를 정리하러 온 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 그 말에 아주 슬픈 자존심 1% 첨가되어 있었다고 생각하면, 결말이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꽤나 아프다. 그게 그의 유언이 된 것도.
역시 글을 함께 읽고 대화를 하는 건 새로운 생각을 발견할 수 있는 기쁜 일이다.

< 부부 >
이게 제일 기억에 남는다. K와 K의 부인, K의 아들, 경쟁 대리업자, 화자가 나온다.
처음에는 다 읽고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 다시 읽어보았다.
병든 아들의 방에 왜 다 모였는가. 그리로 왔으면 했다 하여 정말 그곳에 가는 것도 이해가 안됐는데 이미 경쟁 대리업자는 거기 앉아있다.
그리고 시작되는 사업 이야기. 병든 아들은 무슨 죄인가. 갑자기 침대에서 일어나 주먹질은 하는데도 다 이해가 간다.
그 뒤에 갑자기 K가 숨을 쉬지 않는다. 놀라기엔 이르다.
부인이 돌아와서 한다는 말이 ‘그이가 잠들었군요.’다. 이게 무슨 코미디인가 싶다. K의 손에 손키스를 하는 와중에 혹여나 영면했다는 말을 한 건가 싶던 순간 K가 살아난다.
이게 무슨 왕자와 공주 이야기도 아니고 키스에 살아난 것이다. 화자는 이후 말들에서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앞서 일어났던 일 이후에 더 이상 별로 특별한 일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겠지. 이보다 더 특별할게 무어가 있겠는가. 이러한 상황에 대리업자는 보상을 요구하고, 그래도 화자는 눈치껏 나왔다.
대기실에서 부인을 만나서 하는 말에서 화자가 그다지 눈치가 많지는 않다는 것을 느꼈는데, 상대는 관심도 없을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부인에게 하는 것이었다. 부인은 이런 이야기엔 관심도 없다는 듯 자신의 남편 상태만을 묻는다.
화자와 대리업자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 둘을 헷갈려하기까지 한다. 갑과 을의 위치가 이런 느낌일까. 처음부터 이들에 대해 부부는 관심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배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두 이야기가 연결은 되나 싶었다.
오랜 항해로부터 쉬고 싶다느니, 육지를 너무 오래 떠나 있었다느니 말들이 나오며 자신의 부인과 막내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간다.
연결되는 이야기라면 이건 화자의 하루가 고되었으니 자신의 휴식지로 이동해 일을 쉬고 싶다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한참 뒤에 다시 이 단편이 나오는데 이때에는 뒤에 있던 배 이야기가 사라져 있다.
이 책에는 이런 내용들이 많다. 내가 분명 읽은 내용이 뒤에서 아무렇지 않게 처음 적힌 듯하게 적혀있다. 어떤 것은 더 설명이 추가된 채로, 어떤 것은 더 잘 읽히도록.
미완성의 글들이기에 그 당시의 카프카의 시간이 담겨 있다. 
그런 부분에서 난 이 책이 좋다. 
어쩌면 이런 게 미완성이 보여줄 수 있는 장점에 속하지 않을까. 완성된 작품에서는 읽을 수 없었던, 글을 고쳐 나가던 카프카의 배려가 이곳엔 남아 있다.

 

아래는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따로 적어둔 문구들이다.
 

문구


>> 그러나 나는 너무 겁이 많아서 인사도 없이 떠나진 못한다.

>>(요약) 행복한 자는 무정하다.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보려는 행복한 자들의 기질.
>> 기분이 내키기라도 한다면 거리의 살인자처럼 나를 때려죽일 수도 있다.

>>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괴이쩍다는 생각이 든 때문이었다.

>> 침대에 홀로 잠을 잘 때 얼마나 행복한 생각들을 이불로 질식시키는 지를. 또한 얼마나 불행한 생각을 이불로 따뜻하게 해 주는지 말이에요.

>>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잠을 자지 않는대. / 그건 또 왜? / 그들은 피곤하지 않으니까. / 그건 또 왜 그렇지? / 그들은 바보니까. / 바보들은 피곤해지지도 않는다고? / 바보들이 어떻게 피곤해질 수 있겠니?

>> 악은 한 번 받아들여지고 나면, 더 이상 사람들에게 자신을 믿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 악은 선에 대해 알지만, 선은 악에 대해 모른다.

>> 선은 어떤 의미에서는 절망적이다.

>> 악을 분할로 갚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그것을 시도한다.

>>(요약) 발언이란 확신의 부족을 뜻한다.

>> 전에는 내가 왜 나의 질문에 대답을 얻지 못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오늘날에는 질문할 수 있다고 어떻게 믿을 수 있었는지 알지 못하겠다. 그러나 나는 실로 전혀 믿지 않았고, 다만 질문했을 뿐이었다.

>> 단지 우리의 시간 개념이 우리로 하여금 최후의 심판을 그렇게 부르게 했다. 원래 그것은 하나의 즉결 심판이다.

>> 악은 선의 별이 총총한 하늘이다.

>> ‘존재한다’는 말은 독일어로 두 가지 뜻이 있다. 즉 ‘현존’과 ‘그것에 속해있다’는 것이다.

>> 사람들은 가능한 한 거짓말을 적게 할 때만, 가능한 한 거짓말을 적게 하는 것이지, 거짓말을 할 기회가 적다고 해서 거짓말을 적게 하는 것은 아니다.

>> 그녀가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저 말예요. 제 관을 보여드리겠어요.’ 나는 그 말에 놀랐다. ‘너는 죽지 않았잖아.’ 하고 나는 말했다. ‘아니에요. 죽었어요.’ 하고 처녀가 말했다.

>>(요약) 왜들 놀라느냐? 잘 되지 않는 것보다 잘 되는 것이 이상하지 않느냐? 자러들 가거라. 내가 이제 좀 더 해보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침) 이것 봐라. 아직도 안 되었단다. 참 어렵구나.

>> 난파한 배에서 떨어져 나온 어떤 물건이 신선하고 아름답게 바닷물에 침수된 채 아무런 저항 없이 떠돌다 마침내는 해체되어 버렸다.

>> 너는 왜 남의 침묵을 비난하면서도 자신의 침묵을 지키고 있는가? / 그것은 내가 개이기 때문이다.

>> ‘너는 너대로 내 동류가 아닌가? 모두 다 실패했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필요가 있는가? 괜찮다네. 나도 마찬가지라네. 나는 혼자만 되면 그 일에 대해서 자꾸 짖어댄다네. 이리 오게. 둘이 있는 게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않겠나.’ 나는 곧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상대편의 얼굴을 응시한다.

>> 죽을 준비를 한 사람들, 그들은 땅에 누워있었다. 그들은 가구에 기대어, 이빨을 덜덜 떨면서, 그 장소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벽을 더듬었다.

>> 꿈을 꾸는 듯이 꽃이 높다란 줄기에 달려있다. 석양이 그 꽃을 감싸고 있다.

>> 문학이란 주먹으로 뒤통수를 때리는 것이어야 하고, 얼어붙은 바다 위를 내리치는 도끼와 같은 것이어야 한다.


 
 
 

카프카 "포기하라." 길을 잃은 그에게 경찰관이 포기하라 한다. 인생을 누구 처럼 살아야 할까.

 
 
 
 
 
 



이책을 처음 빌려봤을 때, 역시나 책의 두께 탓인지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 덕에 같이 빌렸던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의 ‘계속되는 무’라는 책을 3번 정독할 수 있었다.
‘계속되는 무’를 3번이나 읽게 된 이유가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다. 책 중에는 그런 책이 있다. 이상하게 계속 손이 가는 책.
분명 다 읽었는데 어느 부분을 생각하다 보니 다시 읽어보고 싶은 충동을 주는 책.
다음에 시간이 될 때 '오늘의 독후감'에 정리해 둘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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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도 벌써 1/3이 가고 있다. 시간은 참 잘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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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이 벌써 1/2가 가고 있다. 이정도 속도라면 일주일 뒤에 8월, 다시 일주일 뒤에 9월, 또 일주일 뒤엔 12월이 올 것이다.
 
++
정말 일주일 뒤가 8월인 날이 왔다. 날씨는 덥고 시간은 금방 흐르는 구나. 책들을 읽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영원히 책만을 읽으면서 사는 삶을 꿈꾼다. 어려운걸까.
 

제목글쓴이 / 옮긴이(번역)_출판사
아메리카(실종자)프란츠 카프카 원작 / 레알 고부 그림 / 양혜진_이숲 
지난번 읽었던 프란츠 카프카의 실종자 책을 만화책 버전으로 만들어 둔 책.
만화로 보니 더 답답하다. 실종자라는 제목이 결국은 마지막 결말을 유추할 수 있게 만드는 내용이라 아이러니한 감정이 끝도 없이 쏟아진다. 
창백한 불꽃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김윤하_문학동네
시가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그렇게 높지 않다. 책의 2/3가 주석으로 채워져 있는데 풀이라고 의존하기에는 신뢰할 수 없다. 하지만 책에서 시 외에 다른 기댈 곳은 없기에 주석은 그 존재를 가지고 있다. 시의 마지막 부분에 "인간의 삶이란 난해한 미완성 시에 붙인 주석 같은 것" 이라 적혀있다. 아마도 이 책은 마지막 부분에 적혀있는 이 문장으로 전체를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보코프는 두명의 저자를 만들어 실제처럼 보이게 만들었는데 이게 전부 하나의 소설이라 읽는 것 자체도 재미를 준다. 결국 둘 다 가상의 인물들이니, 이건 소설이라 봐야 할까, 시집이라 봐야 할까, 그도 아니라면 인간의 삶이라 봐야 하는게 옳을 지도 모른다.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 / 권세호_서문당
전자책으로 읽다가 종이책으로 읽고 싶어서 빌려온 책.
9시에서 9시 사이레오 페루츠 / 신동화_열린책들
9시에서 9시 사이라는 책 제목을 보고 찰나의 순간을 이야기한걸까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책 내용은 술술 읽힐 정도로 재미있다. 글에서 오는 속도감도 좋고 불안한 분위기 또한 즐겁다. 그토록 원하던 자유 앞에서 그는 더이상 살아있는 눈을 가질 수 없다. 
찰나의 순간일 것이라 생각했던 첫 인상이 어쩌면 그에게 더 안식이 될 수 있었던 결말 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입장에서 9시에서 9시 사이는 너무도 길지는 않았을까.
게걸음으로귄터 그라스 / 장희창_민음사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 아글라야 퍼터라니 / 배수아_워크룸프레스 
한 번쯤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 나는 재밌게 보았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마일리스 드 케랑갈 /정혜용_열린책들
빌 게이츠가 필독서라 말했다는데 그다지 뭐가 놀라운 건지 모르겠다. 죽은 자를 사용하여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는게 놀라울 일인가.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이 나온 다는 것.
죽은 자에게의 예의보다는, 부품으로 보는 것 같은 시선이 등장한다. 현실은 시몽이 느꼈을 바닷속보다 차갑다. 죽음이 또 다른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공간이라 하더라도 나는 나의 죽음으로 살아있는 자를 수선해주기 위한 부품이 되는 것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 책을 읽으며 밑줄 친 곳들. >
- 세포의 죽음을 통해 변모가 일어나는 공간. 침묵이 소리를, 어둠이 빛을, 정이 동을 만들어 내듯 죽음이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공간.
- 내가 더 이상 사고하지 못한다면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 어떻게 해야 할까, 니콜라이? 죽은 자들은 땅에 묻고 살아 있는 자들은 고쳐야지
- 이제부터 하나의 물체처럼 그곳에 홀로 남게 된 시몽에게서 흘러나오는 고독이다. 그는 이제 인간의 몫을 벗어던진 것만 같다. 더는 공동체와 결부되지 않고 의도와 감정의 그물망으로 연결되지 않고 절대적 사물로 변해 떠돌고 있는 것만 같다. 시몽은 죽었다.
 슈틸러 막스 프리슈 / 김인순_문학동네
 
사뮈엘 베케트의 말 없는 삶나탈리 레제 / 김예령_워크룸프레스
"고도를 기다리며" 작가 베케트의 전기. 그의 책을 읽다보면 베케트라는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
베케트가 내 눈 앞에서, 내 옆에서 숨쉬고 있는 기분이다.
베케트의 책을 읽다가 베케트에 대해 알고 싶어서 찾아 보게 된 책. 누군가의 삶을 요밀 조밀하게 찾아서 적어둔 이책은 꽤나 마음에 든다. 누군가의 삶을 영수증으로 출력해서 뜯어보는 기쁨이 있다. 

"조이스는 손발이 작았지." 담담한 그의 말에 있는 그대로의 그가 담겨있다.
사형을 언도받은 자/ 외줄타기 곡예사장주네 / 조재룡_워크룸프레스
무슨 내용일까. 책의 반을 읽어봐도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나랑 안 맞는다. 쓸데없이 불쾌한 느낌이 드는데 이게 작가가 의도한 것일까. 끝없이 그 단어가 등장하고 묘사하고 난리다. 마치 이 내용을 안 쓰면 내용이 안 끝나기라도 하는 것 마냥. 뭐랄까. 그냥 추천하지 않는다. 이 책을 읽기엔 더 좋은 내용의 책들이 세상에 너무 많고, 시간도 부족하다.
저 아래조리스카를 위스망스 / 장진영_워크룸프레스
 
계속되는 무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 / 엄지영_워크룸 프레스
재미는 있는데, 굳이 사고 싶지는 않은 책.

몇 개의 문장이 끌리게 만든다.
- 행복과 고독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속에 그 두 가지가 없는 것이다.
- 누구든 아래로 떨어지면 바닥이 반갑게 맞아주기 바닥은 어디든 있으니까. 때문에 그때만큼은 따로 친구가 필요 없다.
- 도둑놈 보따리 속 마네킹 p95
- 방구석에 혼자 남겨진 후식은 무척이나 심심했다.

코시모의 이야기를 보면 그래도 사야되나 싶기도 한 책. 짧은 내용이 제법 묵직하게 남는다.
깊이에의 강요파트라크 쥐스킨트 / 김인순_열린책들
 재미 있는 에피소드 3 +1. 근데 책 가격이 의문이다.
이렇게 얇은 책이 이 가격이 맞나?
그럼에도 책의 내용은 좋다. 제목 그대로 깊이를 강요하는 사람들과 그 속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
꿈 같은 삶의 기록프란츠 카프카 / 이주동_솔
책의 두께가 예사롭지 않다. 저걸로 사람을 치면 죽진 않겠지만, 아니 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카프카 전집 제 2권이다.

395p 아무것도 아닌 것, 아무것도 아닌 것.

몇개의 이야기들은 반복적으로 적혀있다. 설명이 추가되었거나 앞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꼬리로 달고 다시 등장한다. 미완의 내용이지만 꽤나 재미있다.
재미 없는 내용 또한 있기에 이 책의 두께가 설명된다.

아버지께 편지를 쓴 내용이 35장에 달한다.
주로 아버지에 대해 논리적으로 문제점을 적어둔 내용인데 안타깝게도 아버지에게 전해지지는 못했다. 이정도의 양이면 그당시 편지 봉투의 두께는 어땠을까. 카프가도 참 대단한 성격이다. 첫 시작은 사랑하는 아버님으로 시작되지만, 만약 이 편지를 아버지가 읽었더라면 아무래도 고혈압으로 쓰러지지 않았을까 한다.
 성 프란츠 카프카 / 이주동_솔
 카프카 전집 제 5권.
 변신 프란츠 카프카 /이주동_솔
 카프카 전집 제 1권으로 제목인 변신 이외에도 단편 소설들이 묶여 수록되어 있다. 꿈 같은 삶의 기록을 읽다 주석으로 전집 제1권에 수록되어 있으나 다시 번역했다는 글들이 너무 많아 읽어보게 된 책. 그렇게 엄청나게 달라지지도 않았는데 굳이 이후에 다시 번역한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그만큼 옮긴이가 진심을 담아 완성 시킨 전집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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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Obsidian을 사용하고 있는데 Git과 연결해서 사용하는 게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에 연동해 두었다. 

정리하는 김에 겸사 겸사 적어두는 연동 방법.
 

Git 설치

 
우선 Git이 없다면 Git을 설치해주자.
https://git-scm.com/install/windows

Git - Install for Windows

Click here to download the latest (2.55.0(3)) x64 version of Git for Windows. This is the most recent maintained build. It was released on 2026-07-14. Other Git for Windows downloads Standalone Installer Git for Windows/x64 Setup. Git for Windows/ARM64 Set

git-scm.com

 

 
설치할 때는 그냥 기본 설정되어 있는 것들로 선택하고 넘어가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Obsidian에서 Git 플러그인 설치

 
우선, 설정에서 커뮤니티 플러그인을 눌러 탐색 버튼을 눌러준다.

 
 
Git 플러그인을 찾아준다. 많은 것들이 나오지만 제일 많이 다운 받은 걸로 보이는 아이를 선택해주자.

 
 
 
설치가 끝나면 커뮤니티 플러그인에 들어와 있는 Git을 눌러 아래로 쭉 내려준다.
Custom base path (Git repository path)가 보일 텐데 그곳에 자신의 깃 주소를 넣어 주면 된다는 참고 글을 보았다.
나는 주소를 넣어 두지 않아도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잘못된 정보였다. 
일반적으로는 비워두어도 되며, Git 저장소(.git)가 Vault 루트가 아닌 하위 폴더에 있을 경우에만 해당 폴더의 상대 경로를 입력하면 된다.

 
 

Custom base path (Git repository path)
현재 Obsidian Vault를 기준으로,
.git 폴더가 들어 있는 Git 저장소의 상대 경로를 입력하는 설정이다.

1. Vault 폴더에서 git init을 실행한 경우
→ .git 폴더가 Vault 바로 아래에 생성됨
→ Custom base path는 빈칸으로 둔다.

2. Vault 안의 특정 하위 폴더에서 git init을 실행한 경우
→ 해당 하위 폴더의 상대 경로를 입력한다.


ex)

MyVault/.git
→ 빈칸

MyVault/Memo/.git
→ Memo

MyVault/Projects/Memo/.git
→ Projects/Memo

GitHub Repository 주소는 이곳에 넣지 않고,
git remote add origin 명령어를 사용할 때 입력한다.

 
 
 
그다음, 컴퓨터에 Obsidian 폴더가 있는 곳으로 가서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눌러 Open Git Bash here을 눌러주자.

 
 
 
Git Bash 창이 열리면 아래 명령어를 적어주자. 
확인하는 명령어들은 확인하고 싶을 때만 하면 된다.

// 현재 폴더를 Git 저장소로 초기화 (최초 1회)
git init 

// Git 커밋 작성자 정보 등록
// 이 컴퓨터에서 생성하는 커밋에 기록될 이름과 이메일. PC당 최초 1회만 적어두면 됨. 
git config --global user.name "작성자 이름"
git config --global user.email "작성자 이메일"

// 정보 등록 확인 (등록한 정보를 확인하고 싶다면. 굳이 할 필요는 없음)
git config --global --list

// 현재 브랜치 이름을 main으로 변경
git branch -M main

// GitHub 원격 저장소(origin) 등록 (최초 1회)
git remote add origin https://github.com/자신의 깃 아이디/자신이 만든 저장소 이름.git

// 저장소 확인 (역시나 굳이 할 필요는 없음.)
git remote -v

// 업로드할 파일 선택 -현재 폴더의 변경 사항들을 commit할 준비 상태로 만들기.
git add .

// 첫 커밋 생성 & GitHub로 푸시
git commit -m "Initial commit"
git push -u origin main

 
 
 
확인하는 명령어들을 적어둔 이유는 혹시나 자신의 저장소가 Obsidian에 아래처럼 연결되지 않았다고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근데 보통은 명령어를 입력하고 난 뒤 Obsidian을 껐다가 다시 켜주면 해결된다.

 
 
 
그럼에도 "Git is not ready"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자신의 저장소가 제대로 연결되었는지 확인해주어야 한다.

// 현재 내가 있는 폴더 출력 Print Working Directory
pwd

// 현재 폴더가 Git 저장소인지 확인
git status

// .git 폴더 존재 여부 확인
ls -la

// windows가 Git 실행 파일을 찾는지 확인
where.exe git

// Git 버전 확인
git --version

 
 
확인해보고 제대로 연결이 되어 있다면 다시 옵시디언 재실행을 해보자. 
 
그래도 Git is not ready가 계속 표시된다면 다음을 확인한다.
>> Obsidian에서 열어둔 Vault와 git init을 실행한 폴더가 같은지
>> Custom base path에 잘못된 값이 입력되어 있지 않은지
>> Custom Git binary path에 잘못된 경로가 지정되어 있지 않은지
>> Git 플러그인이 활성화되어 있는지
 
 
 
Obsidian에 제대로 Git이 연결되면 설정 부분에서 Automatic이 나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후 Obsidian에서 아래 아이콘을 눌러 Git source control을 켜준다.

 
 

Git 플러그인과 버튼

 
우측 패널에 Git 플러그인과 버튼들이 뜰 것이다. 그 아래에 수정하거나 추가한 것들이 나온다.

 
 
 
버튼들에 마우스를 올려보면 각각의 버튼의 이름들이 뜬다. 
vault backup: {{date}} 이라고 적혀 있는 곳이 커밋 메시지 쓰는 곳이다. 수정하거나 추가한 부분에 대해 적어 주고 커밋 버튼을 눌러주면 된다.
 
옵시디언을 혼자 사용한다면,
모든 변경 사항을 한 번에 올리는 경우 : 파일 수정 > 커밋 메시지를 작성한 뒤 Commit and Sync
원하는 파일만 골라서 올리는 경우 : 파일 수정 > 원하는 파일 Stage > Commit > Push
 
workspace같은 건 ignore 시켜주자. 굳이 동기화시킬 필요 없다. (가장 아래 부분에 ignore 하는 방법 적어둠.)
 
 
 
버튼에 대해 설명하자면,

Commit and Sync : Commit 후 GitHub와 동기화하기(한번에 업로드)
(필요하면 Pull 후 Push)

Stage All :  모든 변경 사항을 한번에 Commit할 준비하기 
>> git add . 와 같은 동작

Unstage : Stage한 파일을 다시 Stage 취소하기 
>> git restore --staged 파일명 과 같은 동작.

Commit : Stage된 변경 사항을 하나의 버전(커밋)으로 저장하기
>> git commit -m "메시지"와 같은 동작

Push : Commit한 내용을 GitHub의 원격 저장소(origin)에 업로드 
>> git push와 같은 동작

Pull : GitHub의 최신 내용을 내 컴퓨터로 가져오기 
>> git pull과 같은 동작

 
 
 
작업 순서는, 

Git 작업 순서
1. 파일 수정
2. Stage All (git add .)
3. Commit (git commit -m "메시지")
4. Push (git push)


Obsidian 작업 순서 (작업 하는 사람이 혼자라면)
1. 파일 수정
2. Stage All
3. Commit and Sync (Commit, Push를 한 번에 처리)


Obsidian 작업 순서 (여러 명이 함께 작업하는 경우)
1. Pull (최신 내용 가져오기)
2. 파일 수정
3. Stage All
4. Commit
5. Push


>> 여러 명이 함께 작업하거나 여러 컴퓨터에서 같은 저장소를 사용한다면,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Pull하여 원격 저장소의 최신 내용을 가져오는 것이 좋다.

그 후 파일 수정 → Stage → Commit → Push 순서로 진행한다.

Commit and Sync도 사용할 수 있지만,
충돌이 생겼을 때 Pull과 Push 과정이 한꺼번에 진행되어
원인을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각 단계를 따로 실행하는 편이 이해하기 쉽다.

 
 
 
아래처럼 staged changes에 수정이나 추가를 했지만 Git에 올리고 싶지 않다면 - 버튼을 눌러서 Unstage 해주고,
반대로 changes에 있는 수정이나 추가된 것 중 stage에 올리고 싶다면  +를 눌러 추가해준 뒤,
vault backup: {{date}} 부분에 원하는 메시지를 적어 commit and sync 버튼을 눌러주면 된다.
 

 
 
 
 

만약 파일 중 삭제할 것이 있다면 Git Bash 창에서 없애주자

 

// 1-1. 내 컴퓨터의 실제 파일은 남기고 Git 추적 대상에서 제거하기
// 이후 Commit과 Push를 하면 GitHub 저장소에서도 제거됨
// 파일명에 띄어쓰기가 되어 있다면 ""로 묶어 감싸주자. git rm --cached "파일명"
git rm --cached 파일명

// 1-2. 내 컴퓨터의 파일을 삭제하고 Git에도 삭제 사실을 기록하기
// 이후 Commit과 Push를 하면 GitHub 저장소에서도 제거됨
git rm 파일명

// 2. 삭제 했다는 커밋 
git commit -m "Remove file"

// 3. 푸시
git push

// 현재 상태 확인
git status

// 원격 저장소 확인
git remote -v

// 커밋 기록 확인
git log --oneline

 
 
 

알아두면 편한 Git 약어

 

-u = --set-upstream (앞으로 이 브랜치와 원격 브랜치를 연결 - 현재 로컬 브랜치와 원격 브랜치의 추적 관계를 설정)

--global = 전역 설정

-m = message

pwd = Print Working Directory (현재 작업 폴더 출력)

cd = Change Directory (폴더 이동)

ls = List (파일 목록 보기)

mkdir = Make Directory (폴더 만들기)

rm = Remove (삭제)

mv = Move (파일 이동/이름 변경)  // 이건 출발지 > 목적지 지정하는 명령.
형식 :
git mv 원래위치(파일) 새위치(파일 또는 폴더)
ex) 
// 이름만 변경
git mv 기존이름.txt 변경이름.txt
// 폴더로 이동 (예: docs폴더)
git mv 기존이름.txt docs/
// 폴더 이동 + 이름 변경
git mv 기존이름.txt docs/변경이름.txt

git init = Initialize

git status = Status

git log = Log

git remote = Remote repository

 
 
 

workspace.json을 ignore하는 방법

 
Obsidian의 workspace.json에는 현재 열려 있는 탭과 패널 배치 등 개인 작업 환경 정보가 저장된다.
작업할 때마다 자주 변경되고, 컴퓨터마다 내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하지 않다면 Git의 추적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
 
 
우선 .gitignore 파일이 없다면 Vault 최상위 폴더에 만들어주자. 나는 Git Bash에서 만들어 줄 거다. 
Vault 최상위 폴더는 .git과 .obsidian 폴더가 들어 있으며, 앞에서 git init을 실행했던 위치다.
 
 
Git Bash를 켜준 뒤 touch .gitignore 명령어를 입력하고, notepad .gitignore 입력해서 메모장을 열어주자.

touch : 
원래 의미는 파일의 시간을 갱신한다는 건데 여기서는 빈 파일 하나 생성하기로 사용.
파일이 없으면 새 파일을 만들어 주기 때문.

notepad : 
메모장 켜주는 건데 notepad .파일이름 하면 메모장으로 그 파일을 여는 것.


그래서 touch는 사실 안 써도 됨.
notepad .gitignore 라고 입력하면 메모장에 .gitignore 파일 켜달라는 의미라 
메모장이 파일이 없으면 새로 만들꺼냐 물어봄. 그때 Y 누르면 파일이 만들어짐.

 
 
 
메모장에 아래 내용을 입력해 주고 저장해주자.

//메모장에 아래 내용만 입력하면 된다.
//모바일에서 obsidian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mobile은 빼자.

.obsidian/workspace.json
.obsidian/workspace-mobile.json

 
 
 
이제 Git Bash에서 Git에게 기존 추적을 중단하라고 알려주자.
>> 이 명령은 workspace.json이 이미 Git에서 관리되고 있을 때만 실행하면 된다.
>> 추적 여부 확인 명령어 : git ls-files ".obsidian/workspace.json" 결과로 경로가 출력되면 Git이 추적 중인 것. 

git rm --cached ".obsidian/workspace.json"

>> --cached : 위에서 적어둔 대로 컴퓨터에 있는 실제 파일은 그대로 두고 Git의 추적 대상에서만 제거하기.
 
혹시나 모바일에서도 Obsidian을 사용한다면 

git rm --cached ".obsidian/workspace-mobile.json"

 
 
 
이제 커밋하고 Push하자.

git add .gitignore
git commit -m "Ignore Obsidian workspace files"
git push

 
 

 
 
 
 
GitHub에서도 .gitignore 파일이 추가되고, workspace.json이 저장소에서 제거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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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 레노버 ThinkPad X1 Carbon
 
 
사람이 이상하게 찝찝한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그날이 그랬다. 
 
 
평화롭게 노트북으로 작업을 마치고 종료하려던 순간,
 
<업데이트 후 종료하기>
 
이상하게 누르고 싶지 않은데.
그럼에도 내게 무슨 선택권이 있는가.
전원을 끄기 위해 다른 방도가 없는 것을.
 
 
그리고 다음 날.
전원을 켜보니 나를 반기는 Boot Menu.
 
 
Boot Menu에서 윈도우로 넘어가지 않는다.
Boot Manager를 눌러도 깜빡하고 다시 Boot Menu로 돌아왔다.
Boot Manager 밑에 SSD도 잘 인식되어 보이는데 어떤 버튼을 눌러도 되돌아왔다.
 
 
아.
레노버.
 
 
우선 노트북 뒷면을 풀어 SSD를 뽑고 다시 꼽았다.
레노버 뒤 이쑤시개 하나 들어갈 크기의 리셋 구멍 점을 콕 찔러도 봤다.
가장 쉽게 해결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역시나 동일한 증상.
 
 
그래, 쉽게 가는 쪽은 그동안에도 나와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
바라지도 않지.
 
 
설마 내 SSD가 죽은 걸까 싶어 데스크탑에 외장 케이스로 연결시켜 확인해봤다.
결과는, 너무 멀쩡했다.
그럼 문제는 뭘까.
 
 
ChatGPT와 함께 명령 프롬프트로 한참을 찾아 헤맨 결과. 
놀랍게도 확인되지 않았다.
오히려 AI와 사이만 서먹해졌다.
저렇게 모를 줄 몰랐지.
 
 
울며 겨자 먹기로 SSD에 있는 중요 데이터를 백업시킨 후, USB 하나를 사서 Windows 복구 USB를 만들었다.
윈도우 설치 화면으로 잘 넘어가는 것 같았으나, 복구하기 버튼을 누르면 설치하기 화면으로 돌아오는 게 아닌가.
 
 
하. 도대체 무슨 문제지.
왜 자꾸 돌아가지. 도르마무도 아니고.
다시 그 화면이 눈앞에 있다.
Boot Menu와 BIOS.
f1과 f12에서 나갈 수 없다.
검은 화면과 파란 화면.
정말 발도 대기 싫은 loop에 빠졌다.
 
 
시간이 지체되는 것 같아, 그냥 SSD를 포기하고 Windows 설치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마저도 되지 않았다. 
오류는 왜 생긴 건데. 왜 설치조차 할 수 없다는 건데.
내가 뭐 많은 걸 바랐나.  
뭔데 도대체.
 
 
한동안 Boot Menu만 바라봤다.
어딜 눌러도 다시 돌아오는 Boot menu.
 
"도르마무, 거래를 하러 왔다"
 
 
하루 아침, 나는 나의 레노버를 잃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졸지에 외장 케이스 하나 구매한 사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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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sidian ) Obsidian과 Git을 연동해보자.  (0) 202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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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병원이 많다. 

그래서 종종 사이렌 소리가 오랫동안 들린다. 

나는 그럴 때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저기 저 소리의 근원은 다친 사람일까, 아픈 사람일까. 그도 아니라면 빈 것일까.

어쩌면 단순하고 간단할지도 모르는 이야기이다.

병원에 가야하는 인간. 

 

막상 병원에 가면 이렇게 단순하고 간단할까.

아니. 그곳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려우며 너그럽지도 않고 일정하지도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많은 것들이 살고 있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것들은 저마다 같은 크기의 공간을 허락받는가. 

그게 과연 인류에도 동일한 조건문이 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넓게 본다면 동일하고 좁게 본다면 수많은 예외를 만들어야 하는 불편한 존재들이다.

 

그런 예외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찾아가는 곳이 바로 병원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원하지 않아도 만나야 하는 병원 안 그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병원 안에는 무엇이 있지.

의자들. 간간이 보이는 거울들. 카페가 있어도 병원 내 어딘가 구석에 하나씩은 있는 커피 자판기.

그럼 이들을 놓고 상상을 해보자.

 

내가 만약 병원 로비에 있는 의자라면 나는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허리가 아프군. 너무 90도인가."

"어머나. 세상에. 내 피부를 누가 찢었어. 이러다 내가 설 곳이 사라질지도 몰라. 살을 모아보자."

"난 이제 너무 늙었어. 잠깐씩 느껴지는 저 문 밖 공기를 맡고 싶어. 지난달 눈 떠보니 사라졌던 내 옆 친구도 보고 싶다고."

 

"대략 이 사람은 아마도, 아무래도 3번 진료실을 가겠군."

"이 사람의 온도. 조만간 쓰러지게 될지도 몰라. 내 왼쪽 다리를 뒤로 빼서 사람들이 더 넓게 이용하게 움직여둬야겠어."

"이 사람 냄새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간이 문제가 있겠는걸."

"이 사람은 살을 좀 빼야겠어. 너무 무거워."

 

그럼 만약 의자에게 하루의 자유 시간이 주어진 다면 의자는 병원 밖을 나갈까?

의자도 병원을 찾아가야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아니면 누군가를 만나러 리퍼브 매장이라도 갈 수 있겠지.

 

내가 만약 병원에 있는 거울이라면 나는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아, 언제쯤 내 오른쪽 모서리 위쪽에 생긴 비누가 섞인 물방울 세 개를 닦아줄까. 흘러내리면 더 더러워질 텐데."

"걸레질할 때 좀 부드러운 수건이 필요해. 얼굴에 스크래치 난 거 봐. 이 주근깨들은 언제 제거해줄까."

 

"이 사람, 얼굴이 안 좋았다가 다시 돌아오니 웃고 있군. 크게 아프지 않다는 소식을 들은 걸까."

"꽤 오랫동안 마주하는 군. 이제 당신은 티슈 두장을 뽑아 이마의 땀을 닦겠지."

"안돼. 그러지 마. 밥 먹고 몇 분 안 됐단 말이야. 내게 그 더러운 치아를 보이지 마."

"오, 며칠 동안 집에 다녀오지 못한 겁니까. 의사 선생님. 수고가 많으십니다. 여기 이쪽, 이쪽이 더 잘 보일 겁니다. 닦은 지 얼마 안 됐거든요."

 

그럼 만약 거울에게 하루의 자유 시간이 주어진 다면 거울은 병원 밖을 나갈까?

세상엔 나무도 있고, 꽃도 있고, 그곳에서 못 보는 다양한 것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거울이 병원으로 돌아올지는 미지수다.

 

내가 만약 병원에 있는 커피 자판기라면 나는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원두를 바꿨는데 이게 맛이 좋을지 모르겠네. 먹어볼 수도 없고."

"이게 뭐야. 종이컵에 꽃이 그려져 있잖아? 난 스마일이 좋았는데!"

"오늘은 만들 기분이 아니야. 자체 폐업이다. 버튼에 x를 띄우자."

 

"자, 오늘은 커피 2 설탕 1 프림 3이라네. 입에는 맞는가."

"당신 얼굴이 너무 안 좋잖아. 특별히 설탕 5 넣어 준비해 보겠어."

"몇 번을 말해. 여기 오면 안 된다고. 지난번에도 커피 마셨다가 혼났으면서. 뜨거운 물이나 마셔라."

"이 사람은 아침부터 왔네. 양을 좀 더 줘야겠다."

 

그럼 만약 커피 자판기에게 하루의 자유 시간이 주어진 다면 커피 자판기는 병원 밖을 나갈까?

잠깐, 우리는 이 아이만큼은 밖으로 내보내지 말아야 된다. 생각보다 세상은 병원 안에서만큼 커피자판기를 우대해주지 않잖아.

 

병원은 참 신기한 곳이다.

아픈 환자들이 아프지 않기 위해 찾아가는 곳. 

그럼에도 그곳에 가면 이상하게 어딘가 더 아파지는 기분이다.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보여서일까.

활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곳에서 딱 한 곳. 사람들의 눈에 총명함이 빛이 날 때.

돈 내는 곳 키오스크.

그곳 앞에서는 모두가 원하지 않는 집중도를 얻게 된다.

물론 여기서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키오스크 화면에서는 바코드에 찍힌 내가 계산되어 현실로 나온다.

 

 

이제 진짜 이 상상의 중심으로 가보자.

병원. 그 안은 어떠한가.

 

복도는 길고 좁고 촘촘히 연결된 혈관 같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흘러간다. 자신이 필요로 한 곳으로.

걷고 뛰고 멈추고, 그들의 몸은 긴장한다. 

병원 안에서는 사이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오는 이상 신호.

이미 들어오는 문이 정해져 있다. 급하거나 느려도 거기에는 통증이 있다.

나는 의자에 앉아있다.

어쩌면 내가 아닌 이 공간이 우리를 관찰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곳의 모든 것이 밖으로 빠져나간다 해도,

이 공간은 조용할 것이다. 

아침이면 다시 팽창하듯 채워질 것을 알고 있는 침묵.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공간을 채울 것이다.

 

 

사이렌 소리가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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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라는 빈대떡 신사 노래를 아는가. 나는 안다.

오징어 김치전이 먹고 싶은 오늘 같은 날, 7월의 첫 번째 일기를 쓴다.

 

 

비가 무수히도 많이 내리는 오늘 같은 날. 하늘을 올려다보면 저것이 구름인지 하늘인지 모를 흰색의 바탕이 존재한다.

거기서도 구름의 크기를 줄이려 애쓰는 것인지 위에서는 한참의 물방울이 계속해서 쏟아진다.

가끔가다 들려오는 천둥소리는 마치 저 뒤에 있을 누군가가 경계에 있을 표면에 고함을 지르는 느낌이니.

 

 

어렸을 적 내 기억엔, 이렇게 비가 잔뜩 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요란법석한 천둥이 쳤다.

천둥. 그것은 단순히 소리로만 우리를 찾아오는 게 아니다.

마치 자신은 이곳에 있던 존재가 아니라는 듯한 번쩍임. 그의 행태는 어린이였던 내게 꽤나 큰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다.

엄마, 아빠는 내가 천둥소리에 놀랄 때마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그렇게 놀라냐 했지만.

그래. 사실 난 그때도 가슴 한편에 몰래 했던 나쁜 짓들이 마음에 걸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천둥을 바라보는 나의 시점이 달라졌다.

삐쩍 마른 모습으로 찰나에 세상을 눈에 다 담고자 하는 것인지 가져온 그 빛으로 닿지 않을 깊고 깊은 어둠까지 손을 뻗는다.

그건 호기심일까. 집념일까. 이 공간을 차지하고자 하는 욕망일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아주 잠깐 가끔씩 오는 저들을 위해 하늘은 자리를 마련해주고 있지 않은지.

합리적인 의심이긴 하다. 보통 천둥은 구름이 이동해도 지형적으로 치던 자리 근처에서 자주 치니까.

 

 

여기서 다시 생각을 해본다.

비가 오는 날 세상의 주인은 우리일까. 그들일까.

위와 아래. 하늘과 땅. 누구의 시선이 선택받을 수 있나.

어쩌면 우리의 움직임이 그들에게 놀랄 만큼의 공포를 줄지도 모른다.

우리의 우산 끝이 그들에게 빛을 반사시킨다면, 촘촘히 작은 점묘법의 그림이 되어 그들의 하늘에 찰나의 움직임으로 보인다면. 

어린 천둥 하나가 재빠르게 그의 부모 품으로 안길지도 모른다.

 

 

거울의 반대편 마냥 이곳의 이것과, 그곳의 그것이. 동일한 듯 다르게, 다른 듯 동일하게 움직인다면,

세상은 어느쪽이 진짜 본모습이라 선택할까. 세상의 기준에서 어느 쪽이 살아있는 공간이 될까.

젖어있는 땅 위에 반사되어 있는 하늘과, 그 땅을 걷고 있는 내 발 중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가. 그것이 과연 지금의 내 생각에 답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답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생각한 그 시점부터 우리의 세상은 경계가 모호해졌을 테니까.

비는 내리고, 천둥은 계속해서 치고, 나는 여기서 바라보고 있다.

 

 

우리의 사이에서 공간의 주인이 없다면,

이 또한 하나의 공간의 결론이지 않을까 싶다.

 

 

경계가 무너지는 곳에는 피로감이 부서진 천둥의 모양처럼 서있다.

피로감. 빗물이 스며들듯 요즘 내게 흠뻑 묻어있는 것이 그것들이다.

이것들이 내게 아무런 존재 가치가 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찰나에 사라지는 천둥의 빛처럼.

 

 

어쩌면 나의 단정이 내 앞에 또 다른 이미지를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 내 앞에 커다란 소리를 내며 하늘을 찢고 있는 저 이미지는 현실의 존재일까, 나의 생각일까.

요즘 들어 가끔 나의 하늘은 밝아도 어두워 보일 때가 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곳에 나의 자리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그곳이 영원한 내 것이 되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7월에 찍은 사진은 아니지만 7월이 느껴지는 공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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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를 등록하고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무릎 이슈로 한동안 못 가다가 이대로 있다가는 나의 근육들이 다 빠져나갈 것 같아서, 상체 운동이라도 하겠다는 마음으로 나간 지 일주일이 되었다.

나란 자식. 하체 운동은 못하니까, 상체 운동만 집중적으로 했더니 글쎄 상체에 담이 걸렸다.

자다가 옆으로 누우려고 시도했다가 몸이 굳어버렸다.

다시 일자로 눕지도 못하고 옆으로 돌아 누울 수도 없는 어정쩡한 자세로 힘겹게 버티다 일어났다. 

뭐 얼마나 했나고 몸이 받아 주질 않는걸까.

나약한 몸뚱이.

복싱하다 무릎 나가, 헬스 하다 상체 나가. 운동을 하면 할수록 아파진다.

이제 내 몸에 건강한 곳은 없다.

아니, 주인인 내가 운동을 한다 하면 몸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운동을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게 어렵나.

어쩔 때는 나보다 포기를 먼저 하는 것 같다.

파스를 붙여뒀다. 한방 파스. 시원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조금씩 산책도 해보고 있는데 아직은 아픈 걸 보면 염증이란 게 생각보다 잘 안 없어지나 보다.

다시 복싱이나 하고 싶은데, 그래도 될지 모르겠다.

의사 선생님이 말한 6주. 설마 정말 그동안 계속 아프려나.

 

비 오기 전 시켜뒀던 브라운 치즈와, 팝타임 팝콘, 수황 복숭아, 신비 복숭아가 차례대로 배송되었다. 

다행히 맛이 좋다.

이거나 먹으면서 위안을 삼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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