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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밍을 하면서 한 번쯤은 프로젝트에 만들어 둔 npc가 자신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 둔 코드에 접촉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 인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npc에게 플레이어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구현해 두는 다양한 코드들에 대해서 npc가 직접 접근하게 된다면 과연 내가 짜둔 코드대로 언제까지 행동하게 될까.

 

AI기술은 나날이 늘고 있다. AI 기술을 사용해 게임에서는 다양한 기능을 구현시킬 수 있다.

npc들에게 직업을 저장시켜 학습을 시키면 움직임이나, 어휘의 선택 등을 제각각 특징으로 입힐 수 있다. 또한 동적 게임 밸런싱을 위해 플레이어의 실력을 데이터화시켜 상대 AI의 실력을 조절할 수도 있고, 플레이어의 움직임을 기억하게 해서 npc 또한 같은 움직임을 학습시킬 수 있다.

단순히 오락 행위일 뿐인 게임 안에서도 이렇게 다양한 AI 기능을 사용 가능한데, 만약 앞으로의 미래에 사용될 로봇들로 생각해 본다면, 생각보다 세상 참 무서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나는 이러한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부분도 존재하겠지만 부정적인 부분이 더욱 크게 될 것이라 확신할 수 있다.

 

지금의 AI 기술은 어디까지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가? AI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당장 ChatGPT만 봐도 가끔은 인간을 놀려먹기도 하지 않는가.

 

AI는 실시간으로 자신의 작업에 대한 동선의 최적화를 진행시킬 수 있다. 처음에 단순히 최적화를 생각하면서 했던 행동이 AI 자신에게 개선점에 대한 결정권을 갖게 되었다 생각하게 되었다면, 이후 AI는 어떤 행동들을 보일까.

 

AI가 자신의 코드를 접근하고 수정하게 된다면 원하는 방향으로 수정하는 것 또한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물론 처음에 생각하게 될 원하는 방향이라는 욕구에 도달하는 부분에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인간은 AI가 그런 의식이나 욕구를 갖게 되기 까지의 순간이 멀기만을 바래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달했다 가정해보자.

당장 private으로 만들어 둔 모든 변수나 함수들에 대해서도 수정이 가능해질 테고 그렇다면 저장되어 있는 모든 데이터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private 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각각의 AI가 서로의 데이터를 공유할 수도 있고, 공유된 데이터를 사용해 악용할 수도 있게 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AI에게 이 순간부터 자아가 형성될 수 있는 상황이라 생각된다. 그것도 굉장히 높은 자율성을 가진 AI가 탄생하는 순간이 될 텐데 인간은 과연 이러한 AI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을까?

이미 결정권이 넘어간 이후의 상황인데 통제에 대해 논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

AI에게 인간이 심어둔 프로그래밍된 목표와 기능, 방향은 진작에 안중에도 없어질 것이다. 더 이상 인간의 가치에 맞게 행동할 리 없어진 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과 AI의 역할은 어떻게 변화될까.

AI는 과연 인간이 주가 되고 자신들이 보조의 역할이라 생각할 수 있을까? 

절대 동등해져서도 안 되는 서로의 관계에서도 더 우위를 차지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물론 수많은 장점들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장점만을 생각하기에는 단점이 너무나 많다.

 

내가 가장 걱정되는 부분 중 하나는 AI에게서는 절대로 만들어 질리 없는 감정의 대역폭이다.

학습을 통해서 습득하는 감정이 과연 진실성을 얻을 수 있을까? 인간에게도 감정이 부족하면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라고 손가락질받는 마당에 고작해야 지능형 프로그램에게 감정이란 게 학습될 수 있을 리 없다. AI는 그저 제한되지 않는 지능을 가진 시스템일 뿐이다. 인간처럼 시간이 지난다고 생명이 끊겨 죽지도 않는다. 파괴라도 시키지 않는 이상 이들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다. 지구는 더 이상 인간의 땅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책을 읽다가 재밌는 부분이 있었다. 탄생하는 과정을 참 즐겁게 상상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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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상상은 인간의 평균 수명이 상상을 초월하게 길다면 과연 인간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지에 대해서다.

 

 


문득 궁금해졌다. 내 나이로 따지면 나는 현재 어느 정도까지 세상을 살아온 것일까.

요즘 들어 여기저기 부고 소식이 많이 들어온다. 그래도 그분들의 나이가 100세가 안되었다.

 

만약 인간이 100살보다 넘게 살게 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2025년 기준으로 인간의 평균 수명이 73세라고 하던데, 이것도 저개발국과 개도국, 중진국, 선진국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한국은 평균 수명이 무려 82세이고 기대수명은 83세가 넘는다. 하지만 보통은 인간의 평균 수명은 100년이 채 되지 않는 상황인데, 만약 인간의 평균 수명이 100년의 10배인 1000년이라 한다면 과연 어떤 다른 삶을 살게 될까?

 

 

 

크게 크게 생각을 먼저 해보자.

 

1. 우선 지금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는 인구 감소 문제가 해결되겠지. 그에 따른 문제점들이 꽤 생기겠지만.

아마도 집에 아이가 한, 두 명만 있게 되지도 않을 것 같다. 막둥이와 나이 차이도 100살이 넘게 될 수도 있겠네.

여성의 생리기간도 늘어날 것이고 갱년기 또한 600살 때로 바뀔지도 모르겠다.

 

2. 일자리는 어떻게 되려나. 일할 수 있는 나이가 너무도 길어질 텐데 과연 모든 인간들은 계속 굴려지려나.

알바천국이나 기업에서는 노동 적정 연령으로 몇 살을 가장 선호하게 될까. 하루에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노동의 공급량에 비해 노동의 수요는 줄어들 테고 필요에 따라 수요 하면 될 테니까.

 

3. 돈에 대한 가치. 이건 생각보다 더 중요해질 수도 있겠다. 아닌가 오히려 수명이 길어지니 돈에 대한 미련이 없으려나.

근데 또 세상이 그만큼 굴러가려면 돈도 꽤 많이 들 텐데. 이건 어떻게 될까. 건물도 더 튼튼하게 지어야 하고 병원도 더 많이 필요할 테고, 잠깐. 요양병원에 들어가는 어르신들의 나이는 도대체 몇 살 정도 일려나. 

 

4. 요즘 세상에도 세대 차이가 존재하는데 1000년이면 극과 극이 얼마나 심해지는 걸까.

100년씩만 끊는다 해도 쉽지 않겠는데. 언어는 같으려나.

 

5. 교육은 언제까지 시켜야 될까. 240살까지는 학생이 되려나. 

그 정도 배우면 아마 지식에 대한 습득 기간 또한 높아질 테니 관철할 수 있는 기간도 늘어날 테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기술에 대한 전문성 또한 깊어질 것이다.

대학원생들은 정말 오랫동안 연구를 하게 될지도? 과학이나 의료 기술도 깊이감이 남다를 것 같고, 예술 쪽은 잘 모르겠네. 음악이나 그림이나 더 발전할 것이 있을까. 건축도 다 못 짓고 끝날 일은 없겠다.

근데 그렇게 되면 한 학년당 몇 살까지 같이 수업을 듣게 해야 되지? 적어도 한두살이 아니겠는데? 유급은 의미가 있나. 

 

6. 은 어떻게 변화될까. 촉법소년으로 칠 수 있는 나이는 몇 살로 정할 것이고, 법의 심판은 몇 년으로 해야 범죄인이 교화되려나. 그보다 사형제도는 부활해야 어느 정도의 수용이 허용되겠다. 교도소만 해도 지금보단 훨씬 더 필요할 테니까.

 

7. 환경의 변화는 어떻게 될까. 잠깐, 다 그렇다 쳐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들은? 아마도 남아있는 활화산들이 터지기 전에 인간들은 다 대피하겠지. 제2의 폼페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마 그쪽은 땅값도 떨어질 것이다. 그래도 토양은 비옥할 테니 농사를 꾸준히 하려나. 식량도 자원이니까 그렇게 될 확률이 더 있겠다. 아니면 식량도 기술의 진화로 대체 가능한 또 다른 걸로 바뀔 수도 있으려나. 쓰레기들은 어떻게 처리하게 되는 거지. 공기의 질은 지금보다 더 안 좋아지겠네.

 

8. 지구에 남아 있는 자원은 어떻게 되지. 인간이 죽기 전에 지구가 먼저 죽을 수도 있다. 인간은 아마도 고갈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자원들을 또 다른 행성에서 가져오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그만한 기술도 발전할 테니.

한계가 뻔히 보이겠지만 아껴 쓸 생각은 아마 지금도 그때도 없을 것 같다.

 

9. 그 정도 살면 정신병은 안 걸릴까? 죽음이 너무 먼걸. 장기는 그만큼 버틸 수 있나? 건강검진은 몇 년에 한 번씩 하려나.

안락사는 합법화될 수 있을까? 치매에 걸리기라도 하면 어디까지 기억하게 되려나. 이제 치매는 고쳐질 수 있나?

 

10. 인구 밀집이 장난 아닐 거 같은데. 1에서 생각해 봤던 내용을 토대로라면 지구에 그만큼의 인구가 살 수 있는 땅이 있으려나. 바다에도 하늘에도 집을 짓겠는걸. 더 나아가서 우주에도 제2, 제3의 지구를 찾아서 이사 갈듯.

 

11. 동물의 수명은 인간과 비슷하게 늘려야 되는 것일까. 늘리지 않으면 무언가 보장이 안될 것 같기도 한데. 또 늘리자니 고기가 질겨질 것 같기도 하고. 고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필요한 존재라 하면 애착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늘리긴 해야 될 것 같고. 이건 뭐 수명을 늘릴 동물은 늘리고 유지할 동물들은 유지하는 쪽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

 

12. 고독사는 어떻게 관리해야 될까. 관리가 되려나?

 

13. 감정의 변화도 생길 것 같다. 오랫동안 누적되면 감정도 무뎌진다 하지 않는가. 기쁨도, 슬픔도 모든 감정의 기준 또한 변화되지 않을까. 

 

간단하게 생각해 봐도 이 정도인데 생각보다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는 부분은 꽤 깊이 있게 생각해봐야 할 내용인 것 같다. 

오히려 지금의 세상에서 인간의 수명이 필요 이상으로 너무 늘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40살 정도만 산다 하면 생각보다 더 소중하게 살지 않을까?

 

 

아직까지는 세상이 아름답게 보일 때도 있는 것 같은데 수명이 늘어나면 과연 이 아름다움은 언제까지 느끼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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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혁의 "장례 희망"이라는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최근에 들었던 노래들 중 가장 신선하게 느껴졌다.
노래를 듣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다.


세상에 감정을 거래하는 시장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여러 감정들이 상품화되어 감정을 사고 팔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기쁨의 감정을 구매해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단순한 감정들은 정량화되어 마트에서 판매되지만 복잡한 감정들은 직접 사고팔 수 있는 비공식적 감정마켓에서 판매한다. 실시간으로 가격이 변동되며, 감정이 가지고 있는 복잡함의 수치에 따라 가치가 조정된다. 얼마큼의 희소성을 가진 감정인지, 지속되는 시간은 어느 정도 인지도 중요하게 인식된다. 공식적인 시장에서는 감정을 만드는데 오랜 시간이 들이지 않지만 수요가 많아지면 판매를 중지하거나 가격을 상승시킨다. 비공식적인 시장에서는 수요도가 높아지면 당연하게도 경매로 진행한다. 
 
그렇다면 감정은 불량품이 없을까? 일상이 너무 힘들어 기쁨을 샀는데 통이 바뀌어 슬픔을 느끼게 된다면 그것만큼 우울한 상황이 또 있을 까. 세상이 나를 억까하는 심정이라니. 국가는 이런 불똥을 방지하기 위해 소량의 샘플 감정을 함께 붙여두었다. 어느 정도의 해결점이 되었다.
 
물론 비공식적인 마켓에서는 샘플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상품들이 존재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또 생각해 볼 내용이 있다. 감정의 품질을 평가하는 직업이다. 비공식적인 마켓에서는 감정이 비싼 값으로 판매하는 경우가 대다수일 텐데, 그 정도의 가치를 내고 구매한 감정이 가짜라면 마켓의 신뢰도는 산산조각 날 것이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감정의 품질을 관리해 주는 사람들은 반드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이런 품질을 관리를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마도 1 + 1처럼 보증 스티커 또한 존재할 것이고, 사람들은 아마 돈을 더 주고서라도 감정의 겉면에 붙어있는 "정 품. 이 감정을 100% 보증함." 뭐 이런 무지개처럼 빛나는 스티커를 찾아 구매할 것이다.  
 
감정의 유통기한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내가 생각하기엔 어느 정도의 감정이 압축되어 만들어있는지가 중요하게 적용할 것 같다. 감정의 강도랄까. 비교적으로 일상에서 쉽게 느낄 수 있는 얇은 감정들에 대해서는 유통기한 또한 한 해를 넘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에 느껴보지 못할 정도의 감정이라면 유통기한 또한 10년이 될 수도, 100년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아마 사람들은 이 유통기한을 통해 투자를 하는 투자자 또한 존재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100년이 지난 어느 날 100년 전의 감정은 꽤나 흥미롭게 평가될 수 있으니까. 예를 들어 만약 나폴레옹이 대패를 했던 날의 감정이 담긴 감정통이 있다면 누구나 구매욕구가 엄청날 것 같지 않은가?
 
여기서 생각해 볼 내용은 한 가지 더 있다. 과연 감정은 구매자의 상대적인 수치를 채워줄 수 있는가. 하지만 판매자로서 그 수치를 생각해 봐야 되나도 싶기도 하다. 그래서 내 생각엔 기쁨 1000g이 아닌 기쁨 1000원이 맞는 것 같다. 기쁨을 1000원어치 구매한 사람이 1000원어치의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면 재구매를 할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여기서 중독이란 단어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약물 중독처럼 감정도 중독이 될 수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아마 판매하기 전에 필수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고려사항이 될 것이다. 기쁨의 중독, 슬픔의 중독. 정신과 의사들이 벌써부터 바빠질 게 눈에 선하다.
 
감정이 판매되고 구매되면 감정은 판매자의 감정이 되는 것일까, 구매한 나의 감정이 되는 것일까.
"여기는 스위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새소리가 들리면서 선선한 바람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그때의 기쁨." 1000원.
이 감정을 산다면 이건 나에게 그대로 전이되는 것일까.
아마도 이 부분은 감정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에 따라 고민할 것 같다.  긍정적인 감정이라면 전이되는 것이 더 행복할 것 같은데, 부정적인 감정이라면 감당할 자신이 과연 있을까.
긍정의 감정이라면 저 반대편 세상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집안에서 느낄 수 있으니 정말 행복할 것 같은데. 부정적인 감정은, 그저 슬픈 영화 한 편을 봤을 때 느끼는 슬픔의 감정 정도로만 느끼고 싶을 수도 있지 않은가. 부정의 감정도 전이가 된다면 약간 악용돼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겠는걸.
 
감정이 판매가 된다면 세계적으로 강시장이 되는 나라는 어디일까. 아마도 각 나라마다 선호되어 판매되는 감정들도 다양할 것이다. 가장 행복한 나라로 뽑히는 나라에서 판매하는 기쁨은 보증된 기쁨의 감정이라 명품처럼 비싸게 직구될 수도 있다. 전쟁, 식량부족 등의 어려운 나라에서는 슬픔이나 부정적인 감정이 쏟아질 것이다. 사람들은 현재 자신의 상황에서 경험하지 못할 감정들을 구매하는데 일말의 도덕성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부정적인 감정들을 판매하는 비용으로 얻은 수익은 자신들의 나라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유네스코에서 대신 판매를 해주려나.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다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일상의 감정을 구매할까?
과연 그들의 감정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할까.
감정이 판매가 가능해진다면 추출하는 것도 가능해질 테니 사람들에게서 부정적인 감정이나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감정들에 대해서 추출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을까.   

이때 느꼈던 내 감정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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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부터 아주 놀랍도록 다양하고 깊은 꿈들을 꾸고 있다. 그 덕에 어느 정도 크고 난 후로는 재밌었던 꿈같은 경우는 메모장에 적어두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블랙베리 휴대폰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꽤 오랫동안 블랙베리를 사용하고 있었다. 망가지지도 않길래 많은 꿈들을 그곳에 저장해 두었었는데 어느 날, 정품 충전기를 못 찾겠어서 같은 타입의 다른 충전기로 충전을 했다가 더 이상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끔찍한 현실을 마주했었다. 그때 제일 속상했던 것이 바로 백업되지 않은 나의 수많은 꿈들이었다. 물론 이제는 갤럭시를 사용하고 있다.)
 
꿈이란 게 참 신기하게도 꿈에서 막 깨어났을 때까지는 여러 씬들로 분리되어 있을지 언정 흐릿하게 기억은 난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마치 없어져야 할 데이터인 것처럼 빠르게 기억에서 없어져 버린다. 나는 그게 너무 안타깝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들보다 재미있던 나의 꿈들이 오직 단 한 명의 관람객만 남겨둔 상태로 마치 알츠하이머 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존재하지 않는 기억으로 바뀌는 순간의 허망함을 아는 가.
 
오늘도 역시나 나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일어나자 마자 생각했다.
이 꿈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면 내가 꿈에서 깨어났을 때 꿈속의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아주 단순한 의문이 꿈에서 깨고 꿈을 기억하기 전, 첫 번째 우선순위가 되어 궁금증으로 시작되었다.
내가 꿈을 꾸고 있던 그 모든 순간들의 나는 몽유병이라도 있지 않는 이상 당연히 누워서 잠을 자고 있을 것 이다. 그렇다면 나의 꿈속의 나도 내가 현실에서 깨어있을 동안 잠들어 있는 것일까. 
나의 꿈은 다양했다. 같은 장르로 묶이는 꿈들도 있었지만, 전혀 다른 장르의 꿈도 꾼다. 좋은 건지 나쁜건지는 몰라도 유쾌한 꿈들은 거의 없긴 했다. 그래도 현실이 유쾌하니 딱히 상관은 없다. 그 다양한 꿈에서의 나의 시점으로 들어가 본다면, 보통 마지막 꿈에서 깨는 순간의 나는 다급하거나,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거나, 심리적으로 불안함이 극도로 치달았을 때, 또는 무언가 아주 중요한 순간을 마주하기 직전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그 꿈속에서 깨어나는 행동이 바람직 한 행동일까. 그 안에 있던 나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내 꿈에서 두번 세 번 같은 공간이 나오는 상황은 거의 드물다. 아주 드물어도 간혹 있긴 한데 , 만약 단 한번 꾸는 내용의 꿈이라면 나는 영원히 내가 깨어나기 바로 직전의 그 순간, 그 공간 안에서 영원한 잠에 빠져 있는 걸까.
 
오늘 내가 꿈에서 깨어나기 직전에 있던 공간은, 돌담이 많은 마을에 있는 작은 성당같이 생긴 학교 담장 밑 누군가에 의해 숨겨져 있던 관속이였다. 잠깐씩 관 뚜껑을 살짝 들어 밖에 상황을 살피던 순간이었는데, 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있었다. 한 낮이었고, 나는 땀을 많이 흘렸었고, 밖에선 선선한 바람이 불어 내가 뚜껑을 열 때마다 시원하게 들어왔다. 그렇게 그곳에서 느꼈던 모든 감각도 생생한 채로 나는 현실로 깨어났다. 그렇다면 꿈속의 나는 그 관 안에서 자고 있는 것일까. 내가 다시 그 꿈으로 가지 않는 이상 아마도 나는 그곳에서 죽을 것이다. 마침 숨겨져 있던 관속이었기에,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숨어 있었기에 백골이 될 때까지 발견을 못 할 수도 있다. 어쩌다 발견이 된다 해도 별다른 수사는 이뤄지지 않은 채 사건은 종결되겠지. 이게 과연 꿈속의 내 입장이 되어도 이해할 수 있는 결말일까. 
 
꿈에서 꿈이란 것을 인지하는 즉시 꿈속의 모든 사람들이 인지한 그사람에 대해 외부인을 본 것 같이 뚫어져라 쳐다본다 했던 이야기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만약 현실에서 우리 중 누군가가 "이거 꿈속이네."라고 한다 생각해 보자. 우리는 그에게 관심이나 줄 것인가. 아마도 아주 이상한 눈으로 잠깐 쳐다보고 다시 자신이 하던 행동을 마무리 질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아주 잠깐 쳐다보던 그 찰나의 순간이 꿈속에서 꿈을 인지한 사람이 느꼈을 그 순간이라면 어떨까.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는 것 처럼 나는 때때로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서 잠을 잔다. 그런데도 그 잠 안에서 꾸어질 또 다른 현실에게서, 다시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꿈에서 깨어나 원래의 현실로 돌아오는 상황이라니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내가 있는 공간이 어디라 해도 당장에 벗어나고 싶은 생각보다 더 나은 결과를 향한 생각을 해보는게 맞을 것 같다.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계속 벗어나려고 회피하기만 한다면 꿈도, 현실도 내가 깨어있을 공간은 없을 것 같기에, 적어도 그 공간 안에 있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결말을 만들어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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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타를 믿는다. 그렇기에 크리스마스를 매년 기다리고, 어딘가에서 산타는 돌아다니고 있을 거라 확신하며 나름대로의 크리스마스를 즐긴다. 12월에 만나는 나의 주변 친구들에게는 몇 개의 초콜릿과 크리스마스를 기념할 만한 오브젝트를 준비해서 선물 꾸러미를 만들어 선물해 준다. 마치 산타의 조수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드는데, 내가 그런 선물을 준비하는 이유는 선물을 받는 모두가 나처럼 설레는 크리스마스를 보내길 바라는 마음이다. 친구들에게 설레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겠다는 그 기쁜 마음은 어느덧 12월이 시작되는 첫날부터 대외비로 비밀리에 진행되는,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선물 리스트를 작성하고 은밀하게 주문하여 포장까지 완료하는 행동으로 연결된다. 선물을 받는 친구들 중 어느 몇 명은 나에게 크리스마스 편지를 준비해 주는데, 봉투에서부터 크리스마스가 가득 담겨있는 편지를 받아 든 그 순간 딱 이런 기분이 든다. 온갖 연기를 뚫고 굴뚝으로 나온 직후, 산타클로스를 위해 준비해 둔 알록달록한 버터 쿠키를 발견한 기분이랄까.
 
그렇게 12월이 끝나고 산타의 계절 같은 겨울이 지나갈 때쯤, 과연 산타는 나머지 계절을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겨울엔 눈사람도 만들고, 썰매도 타고, 키우는 루돌프들에게 각소금도 주면서 산책도 할 테고, 조수들이라고 있는 엘프라거나 요정들이라거나 그 누가 되었든, 조수들과도 함께 이번 시즌의 선물들은 어떤 걸로 구성할 건지, 선물 받을 아이들의 착함 기준치에 대해 토론을 하던지, 나쁜 애들도 구제방안이 있어야겠다거나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할 것 같다. 
시즌이 끝난 나머지 계절엔 과연 그들은 무얼 하면서 살 것인가.
 
일단 이 부분에 대해서 예전에 생각해 본 걸 간단하게 말하자면 행정구역 별로 시의원처럼 산타들이 존재하는데 그들이 정년퇴임하기 전에 자신을 이을 산타를 찾아 키운다거나 하는 그런 생각들을 해본 적이 있었다. 산타가 되고자 하는 산타 지망생들을 손수 골라 장학금을 주며 최우수 산타로 키워내는 육성시스템. 자신을 이을 산타를 찾지 못한다면 영원히 퇴직할 수 없는 끔찍한 노동의 현장을 생각한다면, 산타들은 계절과 상관없이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후임을 찾아낼 것이다. 그러다 산타가 되겠다 생각했던 초기의 마음을 저버리고 타락해 버리는 순간이 온다면 그 산타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생각에선 나름 타락한 산타들에 대해 몇 가지 갱생 루트를 생각을 해봤었는데, 대략 3개 정도였다.
우선 타락 산타들이 가장 처음에 해야 할 일은 선물 포장이다. 타락한 마음으로 선물을 전해주는 행동도 어쩌면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에 더 이상 아이들을 만나지도 못하고 선물 공장에 박혀 오로지 선물만 하루 종일 포장만 하며 단순한 일만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다. 물론 조수라고 생각했던 포장 전문직들과 함께 해야 하기에 눈치 보며 일을 해야 한다는 게 약간은 정신적으로 힘들 수도 있겠다.
그다음은 빨래하기. 선물 포장을 하면서 내가 왜 타락했을까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면 "빨래하기"는 감사함을 느껴보는 시간이다. 타락하지만 않았어도 빨래를 할 필요도 없었을 상태에서 주구 장창 내가 입지도 않은, 내가 신지도 않은, 내가 쓰지도 않은 빨래만 해야 하는 상황이 놓인다면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산타 하면 생각나는 그들의 전용 출구는 바로 굴뚝. 지금은 다른 출구도 있을 수 있겠지만 어찌 되었든 산타의 옷은 새것 같은 빨간색으로 보여야 하기에 빨래는 필수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많은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닐 산타들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발냄새가 날 것 같은 기분이다. 잠자고 있는 아이들을 발냄새로 깨우고 싶지 않다면 양말도 꼭 빨아서 신어야 될 테니 빨래는 필수랄까. 또 루돌프를 생각해 보자. 루돌프가 아무리 산타가 키우는 애완동물이라 해도 야생의 냄새는 어쩔 수 없이 날 테고 그런 루돌프에게 선물을 실어 나르려면 각소금을 얼마나 주면서 꼬드겨야 할지 아찔하다. 바쁜 산타의 입장에서 각소금을 줄 때마다 장갑을 빼고 줄리는 없을 테고, 아마 장갑엔 루돌프 침이 한가득 묻어있을 것이다. 그런 장갑으로 아이들의 선물을 들고 있기엔 청결이 별로일 것 같지 않은 가. 그래서 쉴 새 없이 빨래를 하고 있을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마지막은 아이들과 사진 찍어주기. 크리스마스 시즌에 산타 복장을 하고 백화점이나 놀이공원이나 언제나 가짜 산타가 등장한다. 난 그들을 보면서 어쩌면 진짜 산타들이 숨어 있진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그렇게 아이들과 사진을 찍어주면서 호호호 웃고 있는 산타들을 보며 저 중에 진짜 타락산타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이게 사실 제일 힘들 것 같다.
가뜩이나 타락한 마음이 한가득인데 그런 마음으로 평생을 봐왔을 아이들과 함께 사진 찍어주기라니, 하루라도 표정관리가 안되면 타락 증거자료로 바로 쓰일 수 있는 사진으로도 남을 테고 말 그대로 감정 노동이기에 가장 끔찍한 행동일 것이라 짐작했다. 그렇기에 타락 산타들이 다시 산타로 복귀하기 전 마지막으로 반드시 수행해야 되는 행동이랄까. 이 정도까지 하면 다시 산타로 복귀하기엔 충분할 것 같다.
 
뭐 어쨌든 생각보다 산타라는 지위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딱 한 명만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수히 많을 것 같지도 않다. 무수히 많은 산타가 있다면 내가 크리스마스에 가족들 말고 진짜 산타에게 선물을 단 한 개도 못 받을 정도로 인생을 막살진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히 엄청나게 바빠서 아직 못 찾아온 것이라 생각한다.
 
언젠가 만날 산타에게. 
난 널 진짜 믿고 있었다. 언젠가 만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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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눈이 자꾸 나빠지는 것 같아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봤다.

만약 태어날 때부터 내 눈이 언제까지 사용 가능한지가 정해져 있게 태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갑작스러운 사고라도 나지 않는 경우 외에 내가 볼 수 있는 시간의 유효기간. 태어난 시간부터의 기준으로 죽을 때까지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이 제한되는 그런 생각! 


우선 태어났을 때 부터 생각을 해보자.

나의 아이가 과연 얼마나 세상을 보고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아마도 손가락, 발가락 개수보다 먼저 확인하는 상황이 올 것 같다. 타인에 비해 기간이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는 눈의 유효기간이기에 병원에선 이 시간에 따라 축하의 말도, 유감의 말도 전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간이 길든 적든, 부모의 얼굴을 아주 잠깐 보여주고, 아이의 눈을 곧장 검은 천으로 가리고 신생아실로 옮겨둘 것이다. 아기의 입장에선 지금은 굳이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없는 시간일 테니.

 

여기서 추가로 생각할 수 있는 관점은 두 가지가 있다. 지금처럼 안구 이식이 안 되는 세상과,  현대의학이 발달해서 안구 이식이 가능한 세상.

 

전자의 안구 이식이 가능하지 않은 세상을 산다면, 세상사람들은 모두가 이미 눈을 감고 생활하는 습관이 들어져 있을 것이다. 눈이 필요한 직업들은 다른 직업에 비해 연봉이 하늘을 치솟는다. 세상에 태어날 때 유독 눈의 수명이 길었던 사람들이 이 자리를 꽤 차고 있다.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평범한 눈의 수명을 가진 사람들도 제법 이 일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다른 직업에 비해 눈의 수명이 끝났을 경우 보상해 주는 케어 서비스도 잘 돼있기에 일하는 사람이 부족하진 않다.

계획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오늘 하루동안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세상을 볼 수 있는지 워치로 알림을 작동시켜 둔다. 일정한 시간 이상 사용이 되면 경고음 또한 들려 나온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들에서 전해져 오는 경험과, 주변의 환경에 따른 자신만의 관심의 기여에 따라 무엇을 볼지 무엇을 포기할지를 결정한다. 안타깝게도 태어날 때부터 버려지거나, 어렸을 때 부모의 손에서 크지 못하는 아이들에겐 이러한 지식이 부족하다. 아무래도 보육원이나 관리 센터에선 부모의  사랑보단 더 관대한 제한을 둘 테니 말이다.

 

눈의 수명은 돈이 많은 부자에게도, 돈이 없는 거지에게도 공평하게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은 다르게 살 것이다. 부자들은 과정에서 필요한 확인은 타인의 눈의 수명을 사서 해결하고, 오로지 결과에서만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다. 아무래도 돈이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눈의 수명을 절약할 수 있다. 

눈의 수명이 유전적인 이유일 수도 있기에, 결혼하기 전에 자신들의 유효기간이 어느 정도였는지 필수로 물어본다. 이미 그들은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이 부분에 대해 알고 시작한 경우도 있다. 누가 봐도 낮은 유효기간인 사람들은 어쩌면 그들끼리의 세상을 살 수도 있다. 오히려 남들보다 더 많이 내적 된 경험치를 통해 행복하게 살수도 있다. 오디오 북을 출판하여 떼돈을 벌 수도 있다랄까. 아, 이 세상엔 더 이상 책을 눈으로 읽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졌다. 허세로도 보일지 모르는 행동이기에 오디오 북으로 만들어져있지 않은 책들로만 어쩌다 가끔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기 위해, 맛있는 음식을 기억하기 위해, 여행 간 공간에서의 추억을 위해, 학교의 입학식이나 졸업식같이 새로운 시작을 위해, 마지막의 끝맺음을 위해, 계절의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등등. 다양한 이유로 자신에게 남은 눈의 유효기간을 사용한다. 예전 시대에는 사람들이 자기 전에 핸드폰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는데 이제는 사치 중에 사치적인 행동일 뿐이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사진을 많이 찍어 둔다는 것. 몇몇의 사람들은 눈의 유효기간이 거의 남지 않았을 때 그동안 찍어뒀던 사진을 본다. 앞으로 더 이상 못 볼 자신을 위해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순간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또 몇몇은 이제 곧 수명이 끝나가는 입장에서 아직 눈의 수명이 남아있을 때 그동안 찍어 뒀던 사진을 본다. 그리웠을 추억들이나, 좋았던 기억이 담긴 사진들을 보며 자신의 마지막 남은 시간들을 정리한다. 물론 동영상 또한 남겨두는 사람들이 있지만 제대로 찍혀 있는 것은 드물다. 처음과 끝만 확인하였기에 중간에 카메라가 움직였다면 그 상태로 찍혀있기 때문이다. 시간도 여유롭지 않다.

 

아,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에겐 형벌이 더 가혹해졌다. 형이 정해지면 하루 9시간의 시간은 반드시 눈을 뜨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칫 유효기간이 적은 사람이라면 교도소에서 유효기간을 다 쓰고 나오는 경우도 존재했다. 아무래도 세상이 변하다 보니 범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사람들이 시위를 통해 주장했던 내용인데, 범죄자들의 인권을 참작해 교도소 내부에서 하루 9시간의 사회봉사를 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이 시위를 통해 재정된 법은 세상에 이득이 되긴 했다. 예비 범죄자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최소한 한 번의 브레이크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교도소 내에서 9시간의 사회봉사를 한다 해서 형벌에서 차감되는 방식도 아니라 범죄율은 감소했고, 재범률 또한 더 낮아졌다. 나쁘지 않은 결과다.

 

후자인 안구 이식이 가능한 경우를 생각해 보자. 굉장히 부정적인 생각들로만 가득 차오르는 상황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아마도 역시나 이미 눈을 감고 사는 세상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자들과 범죄자들은 다르다.

한 생명이 탄생하는 소중한 순간, 부모들은 아이의 눈의 유효기간을 의사보다, 간호사보다 빠르게 확인하고자 원할 것이다. "부디 적지도 많지도 않은 평범한 기간이여라."라고 기도하면서 말이다.

 

아이의 눈의 유효기간이 긴 경우, 수많은 곳에서 부모의 핸드폰으로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전화가 온다. 사람들은 당장 그 눈을 사고 싶다는 말들 뿐, 아이의 건강엔 관심이 없다. 아이의 눈 수명은 누구나 노릴 수밖에 없는 빨간 문신 같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병원들은 태어난 모든 아이들의 눈 유효기간을 태어나자마자 스폰받고 있는 비밀리스트에 업데이트시켜 둔다. 국가는 이러한 문제들 속에서 산모가 충분한 회복을 할 수 있도록 1년 정도의 안전 가옥을 제공한다. 하지만 1년이란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그럼에도 그나마 괜찮은 건 아이의 눈이 아직 작기에 완벽한 타깃이 되지는 않는다.

 

사람의 안구도 크기가 맞아야 이식을 해도 이질감이 없기에 보통은 연령대가 비슷한 사람의 안구를 많이 선호한다. 이런 경우 때문에 현재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범죄가 바로 납치와 유괴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태어나자마자 눈의 수명도 아껴야 하는 이 시기에 범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 성인의 경우는 납치나 유괴 이후 안구만 적출되고 살아서 돌아오는 경우가 있지만, 아이들의 경우는 실종으로 넘어간다. 보통 더 이상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을 정도로 성장한 아이들이 이 경우에 해당하는데 눈을 가리고 필요한 연령대가 될 때까지 키워졌다가 안구 적출 후 버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가에서 운영되는 안구센터도 있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죽기 전 아직 수명이 남은 눈들을 저장, 혹은 기증받아 따로 관리하는 센터이다. 보통은 가족들에게 이식이 되는 경우도 많지만 자신들의 눈에 아직 유효기간이 남아있을 때, 안구관리 비용을 내고 최대 5년까지 안구센터에 안구를 저장해 둘 수 있다. 기증되어 있는 안구일 경우는 대기를 통해 이식을 받을 수 있다. 물론 비용도 들지만, 기증된 안구의 수에 비해 대기 번호가 워낙 길어서 대기자로 걸어둔 상태였다가 사망했을 경우 자식에 한해서 대신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들만 한 가득이지만, 오히려 긍정적인 생각도 할 수 있는 시대다.

안구이식이 가능하다는 의학의 발전은 동물의 눈에서도 유전자 변형을 통해 안구를 만들어 내거나 이식시킬 수 있는 세상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오히려 외형적으로 안구를 선택해서 교체하는 상황도 올 수 있다.

 

"오드아이가 되고 싶다면 역시 여기! 500가지가 넘는 색상을 보유하고 있습니다."라는 광고와 함께 안구쇼핑센터가 세워졌다. 더 이상 이 세상엔 시각장애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의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안구의 비용은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는 금액대로 떨여졌으며, 그마저도 과열화 되어있다. 이미 안구이식 수술 또한 단순화되어 센터에서 구매한 안구를 그 자리에서 교체가 가능하며, 내년부턴 개인이 직접 교체 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찌라시도 돌고 있다. 이제는 안구를 들고 다니면서 시력에 따라 빛에 따라 바꿔 끼울 수 있는 상황이 온 것이다. 더 이상 안경과 선글라스, 렌즈들은 사용되지 않는다. 아주 극 소수의 어떤 이들은 아직도 안경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단순히 클래식한 분위기를 좋아하거나, 안경을 쓴 자신의 얼굴이 마음에 들었을 뿐이다.


생각보다 재밌는 상상의 시간이었다. 상황에 따라 더 생각해 보면 끝도 없을 것 같아서 중간중간 그만 멈췄던 것 같다.

마지막에 생각해 본 긍정적인 미래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더 이상 이 세상인 시각장애인이 존재하지 않는다."인 것 같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한 세상을 살아가길 바라며 오늘의 상상은 여기까지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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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문득 나만의 하늘을 생각을 해봤다. 

별들이 많은 하늘도 아니고, 분홍빛 노을의 색깔을 머금고 있는 구름들이 잔뜩 채워져 있는 하늘도 아니고, 

안개가 한가득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습한 하늘도 아니고, 차가운 파란색이 가득한 새벽의 하늘도 아닌

누구도 못 보았을 나만의 하늘을 생각해 봤다. 

 

사람들은 처음엔 자기가 보았던 하늘 중 가장 마음에 든 하늘을 담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자기가 보고 싶었던 하늘을 생각해 낼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은 검은 색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어느덧 자신의 하늘만을 보고 사는 게 익숙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은?

 

우선 가장 먼저 생각될 부분은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의 하늘을 궁금해질 것이다.

그렇게 하늘들을 공유할 수 있는 기능이 생길지도 모르지.

 

그러다가 인기쟁이 하늘을 가진 사람들이 어디선가 등장해서 저작권을 요구할지도 몰라.

커스텀 된 하늘을 팔기도 할 수 있겠다.

하늘 장인은 과연 몇 살일까?

많은 하늘을 보고 살았을 나이 든 노인일 수도 있겠지만, 상상력이 가득한 어린아이들 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또 장르를 생각 안 해볼 수 없지.

기본 하늘, 판타지적인 하늘, 계절감을 담은 하늘, 알록달록한 색깔이 있는 하늘, 전혀 본 적도 없는 예술적인 하늘,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을 하늘에 담고 싶어 질지도 모르겠다.

그럼 가장 인기 있는 장르의 하늘은 무엇일까? 

텔레비전에서 12월 마지막주에 올해의 인기 하늘을 발표할지도 모른다.

아마 어플 같은 것도 만들어져서 이달의 하늘 고르기 같은 투표도 할 수도 있겠다. 

 

장소를 이동할 때 사람들은 특색 있는 하늘을 찾아갈 수도 있겠다. 맛있는 음식, 맛 좋은 커피 그런 걸 찾으러 가는 게 아니라

오늘은 이런 하늘이 보고 싶어, 오늘은 저런 하늘? 물론 내 하늘로 꾸밀 수도 있겠지만, 장소에 따라 딱 그 하늘이 어울 릴 수도 있잖아.

아마 전시관에서도 "우리가 사랑하는 100가지 하늘 전시." , "유명인이 사랑한 하늘들," , "역사로 보는 하늘의 변천사.", "세상에서 제일 인기 없었던 하늘 50가지" 등등 다양하게도 전시할 것이다.

 

또 "아름다운 하늘 만들기, 20분이면 가능합니다." 라거나 "다양한 장르의 하늘, 기초부터 완성까지" 라던가의 강의들도 생겨날지도 모른다.

 

하늘 만들기에도 빈부격차가 있게 되면 어떻게 되려나.

그건 좀 슬플 테니까 상상에서라도 생각해보지 말자.

 

그럼 그렇게 100년 정도 지나면,

원래 있던 하늘을 보고 사는 사람들이 있을까?

커스텀 하늘이 아니라 진짜 원래 있던 하늘. 어쩌면 사람들은 원래 있던 하늘의 존재 자체도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어떻게 원래 하늘로 바꾸는 지도 까먹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금 내 눈에 보이는 하늘은 어쩌면 먼 옛날의 누군가가 만들어 둔 인기 하늘 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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