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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던 봄날을 느끼며, 평소와 다름없이 밤 산책을 하고 있던 어제였다.

나의 하루 루틴 중 하나인 밤 산책은 아파트 단지 3개를 지나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는 하천가 산책로에서 이루어지는데,

사건은 두 번째 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졌다. 

 

분명 가는 길에 개똥을 발견했다.

개똥이 3개나 있었는데 제일 큰 건 진짜 커서 특히나 누군가 밟겠구나 싶었다. (말한 놈이 걸리는 건 불변의 법칙인가.)

분명 나는 개똥을 인지하고 피했다.

분명 돌아오는 길에도 개똥을 피해야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분명 그랬는데...

유독 어두웠던 시간 대였던 게 문제였을 까.

가장 큰 걸 밟는 순간, 아 개똥.

찰나에 잊었던 아까 그 큰 개똥이 내 발밑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살다 보면 개똥도 밟고 그러는 거지.

운동화가 왜 두꺼운가.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마음으로 동네 놀이터 가서 사정없이 발을 쓸었다.

질질 끌고 있을 때쯤. 아무래도 나무 가지 하나를 주워 이 딱 붙어 있는 왕건이를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단히도 밟혔는지 떨어트리는데도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 생각해 보니 이러고 있는 것도 오랜만이구나 생각하며 마저 개똥을 제거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발을 질질 끌며 아주 작은 개똥도 내 운동화 밑창에 남아있을 수 없게 최선을 다했다.

물론 결과는 아주 만족할 정도로 밟기 전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해프닝이었다.

 

그리고 오늘, 마찬가지로 오늘도 나의 루틴을 지키기 위하여 준비를 하고 밤산책을 출발했다.

오늘따라 유독 특별한 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산책로가 아닌 산책로 옆 풀 숲을 걸어 다녔다.

이게 문제였던 걸까.

만보를 채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때까지만 해도 난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아주 작은 느낌. 정말 아주 작게 발밑에 약간 두꺼운 게 있는 느낌적인 기분이 있긴 했었는데.

그게 똥이었던 거지.

 

아무렇지 않게 오늘도 잘 갔다 왔다는 마음으로

아무렇지 않게 집문을 열고 그저 전실에서 신발을 벗기 위해 허리를 숙였을 뿐이었는데.

나는 또 똥을 목격했다. 

내 운동화에 완전 밀착한 그 똥을.

학 씨. 진짜.

어제보다 더 질은 그 똥은, 진짜 대형견의 똥이 아니면 사람 똥인가 의심이 들정도로 많이 컸다.

왜냐면 내 운동화 양옆으로 튀어나와 붙어있었거든... 솔잎들과 함께.

 

왜, 이런 일이 나한테 생기는 것인가.

조용히 다시 뒤를 돌아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리고 집 뒤에 있는 놀이터로 향했다. 

어제보다 질었던 그 똥은 발을 끈다고 떨어지지 않더라.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시소에 앉아 찰흙 떼는 기분으로 똥을 떨어트렸다.

 

이게 연속으로 밟을 수도 있는 건가 싶다가 

내가 밟은 거니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가도

어떤 견주 놈이 이 똥을 안 치우고 튀튀를 한 건지 

분노를 느꼈다가도 이 상황이 어이가 없어 진정됐다.

도대체 어디서 밟은 건지 느껴지지도 못한 게 날 더 어이없게 만들었다.

운동화 밑창을 이렇게 끌어본 것도 일생에 없었던 것 같다.

 

 

내일 로또 사야지.

 

 

 

견주 가만안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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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도 올해도 봄이 오는 걸 보면 시간은 여전히도 흘러가고 있나 보다.
벚꽃은 떨어진다, 떨어진다 해도 아직까지 굳세게 매달려있는 애들도 있고, 이미 꽃비로 흩날린 애들도 있다.
오늘도 저녁 산책을 하면서 꽃비를 꽤 맞았다.
날씨도 웃긴 게 어제는 4월이 아닌 10월 같다가도 오늘은 영락없는 4월의 어느 날이더라.
바람이 따뜻해서 살랑살랑 기억도 안나는 어느 하루의 추억이 생각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늘은 또 알고 지내던 지인이 연락이 왔다. 날씨가 좋아졌다며 하루 만나자는 연락이었는데 반갑다가도 꼼질거리는 그 어떤 느낌에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이가 먹긴 먹었는지 이제는 길을 가다가 햇살이 닿아 빛을 내고 있는 풀잎들이 있으면 잠깐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왜 그렇게 어른들의 사진첩에는 꽃 사진, 나무 사진 등등 자연 사진이 한가득한가 했던 날들이 있었는데 ㅎㅎ 이제는 내가 그러고 있네.

또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요즘 들어 그렇게 학생들이 예뻐 보인다.
얼굴이나 외적으로 미의 기준이 낮아졌다기 보단 그냥 그 젊음이 주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된 게 맞지 않나 싶다. 내가 대학생 때만 해도 그저 말 못 하는 아기들만 귀여워했었는데 이제는 대학생들도 그렇게 사랑스럽고 귀엽게 보인달까.
친구들을 만나러 종로나 홍대, 이태원 정도 가면 젊은 친구들이 한가득 보이는데 그때마다 정말 귀엽고 예뻐 보인다.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또 그렇다고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데. 참 알 수 없다.

눈이 자꾸 안 보여서 이제는 진짜 안경을 써야 된다. 안경을 쓰면 뭔가 인상이 더 차가워지는 것 같아서 안 썼었는데 이제는 안 쓰면 얼굴이 안 보인다.
흐릿흐릿해서 초점이 나가 있달까.
근데 또 그게 장점이 될 때도 있다. 길을 걷거나 자세히 볼 필요 없을 때는 오히려 좋다. 집중해도 안 보여서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 얼굴도 안 보인다.
예전에는 시선이 의식돼서 불편했는데 이제는 모두가 배경이다.
블러처리된 배경이라 가끔 주인공들인 친구들 얼굴도 못 봐서 붙잡힐 때가 있지만 그게 뭐 중요할까.

공허하다는 기분이 자꾸 든다.
봄을 타나? 내가 그럴 리 없는데, 이것도 나이가 들어서 더해지는 감정일까.
시간의 흐름이 가끔은 너무 빠르게, 가끔은 너무 느리게 느껴진다.
빠르지 않았으면 좋겠는 그 시간에는 빠르게 가고, 빠르게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또 어떤 시간에는 고정이라도 된 것 같이 멈춰있고.
가끔 보면 시간이 참 무정하달까. 그렇기에 태연히 지금도 흘러가고 있는 거겠지.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며, 오늘은 좋은 꿈을 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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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기독교 집안이라 12월 31일이 되면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러 가는데 사실 난 예배보다 집 가기 전 뽑는 올해의 말씀카드에 기대가 더 크다. 한해의 말씀 카드를 뽑고 난 후엔 우리 가족은 무려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단골인 우동집을 간다. 
엄마는 야식 먹는걸 안 좋아하시지만 이날만큼은 예외다. 아마도 이 루틴의 첫 시작은 큰 이모부가 데려가 주신 가락국수집이 시작이었을 것이다. 너무 어렸을 때는 교회에 가도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모님은 이모네 집에 데려다 두고 교회에 가셨다. 깜깜한 밤길을 지나 그 새벽에 왜 장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를 혼자만 불 켜진 우동집에서 먹었던 우동의 맛이란.  
 
우리가 가는 우동집은 아주 아주 작은 우동집이다. 테이블이 기껏해야 4개 정도. 그래서 빠르게 가야 한다. 까딱하다가 줄을 서서 기다려야 되기 때문이다. 맛은 사실 그렇게 어마어마한  맛집은 아니다. 아마도 모두가 추억을 먹으러 오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그 조그만 우동집의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면 언제나 그곳에 계신 아주머니를 만날 수 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외치면 아주머니는 내가 문을 열어재낀 것 보다도 더 활짝 웃어주신다. 자리에 앉으면 그때 부터 마치 올해가 이제부터 시작되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느껴지는데 난 그 기분이 좋다. 자연스럽게 우동 4개를 시키고 이내 우리 뒤로 줄줄이 손님들이 가득 차는 상황을 본다. 빨리 먹고 빨리 빠져 줘야 하는 것도 이곳의 매력. 12월 31일이 갓 지난 1월 1일 새벽에, 바로 나온 우동 4개와 단무지를 함께 먹고 있으면 마치 산 정상에서 먹는 라면보다 맛있게 느껴진다. 다 먹고 난 뒤 빠르게 뒷정리를 하고 나오면서 다시 한번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외치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온다. 지금보다 조금 더 젊었을 때 이 길로 바다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죽는 줄 알았다. 식곤증과 피로가 마취총에 맞은 것처럼 핑핑 돌게 만들더라. 졸음 쉼터가 왜 있는지 그때 알았다. 물론 도착해서 봤던 바다의 풍경은 장관이었지만.ㅋㅋㅋ 다시는 그러지 않는 게 좋겠단 생각을 4명이 동시에 느꼈다.
 
이걸 왜 쓰고 있냐면 내가 먹은 우동을 자랑하고 싶어서랄까. 아니면 sns에서 떠도는 1월 1일 루틴 중에 엄청나게 빡센 루틴을 가진 집(무려 낮잠 자기가 루틴에 포함되어 있던 집.)을 봐서 그런가. 그냥 써본다. 
 
그리고 우동집 아주머니가 돈 많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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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여러 연말 약속을 지나 어느덧 2024년의 마지막 하루가 되었다.

2024년이 되었을 때도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 발만 내딛으면 2025년이 된다니.

2024년에는 꽤 많은 비극적인 사건들이 있었다. 러시아 전쟁에 참전한 북한 병사의 이야기들이나, 며칠 전 일어난 항공기 추락 사고라던지. 공평하게 흘러가고 있을 시간에서도 공평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들이 지나갔다. 어렸을 때는 이런 사고 소식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왜 잊혀질 때쯤 하나씩 참사의 소식이 전해지는 것일까 의문이 든다.

내가 어렸을 때는 이만큼의 뉴스를 보지 않아서 였을까. 철렁거리는 마음이 익숙하지 않다.

 

나이가 든다는 게 어떤 면에서 보면 축복이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해지는 감정으로 와닿는다. 아마도 이기심이 불러오는 감정일 것이라 생각한다.

 

어렸을 때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경계선이 뚜렷했다. 봄에는 벚꽃을 보러 가고 여름에는 물놀이를 하러 계곡이나, 빠지, 워터파크, 그것도 다 할 때쯤 바다로 여행을 갔다. 가을에는 한강으로 피크닉도 가고, 날씨가 좋으니 친구들과 어디든 여행을 다녔고, 겨울엔 스키장으로 여행 계획을 짰었다. 이빨이 딱딱 부딪힐 정도로 추운 한파에도 친구들이랑 털모자를 눌러쓰며 즐거웠던 시간을 보냈었다.

20대가 지나 30대가 돼 보니 이제 친구들도, 나도 너무 바쁘다. 20대에는 공부만 하면 나머지는 다 놀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30대에는 놀 시간을 만들기 위해 꽤나 노력이 필요했다. 더 이상의 계절에 따른 감성은 내 인생에서 사라지고 있다. 옛말에 젊을 때 더 많이 놀아야 된다는 말이 이제는 퍽 무슨 뜻이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다.

 

어렸을 적에 해 질 녘까지 친구들과 신나게 놀이터에서 놀다가 배고파질 때쯤 집으로 들어갈 때의 기분을 기억하는 가. 나의 10대와 20대는 아마도 놀이터에서 놀던 그때의 꼬마였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가족이 있는 집으로 들어온 기분이다. 친구들과의 시간이 줄었다면,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은 늘었다. 어쩌면 엄마, 아빠는 내가 친구들과 다 놀다 오길 기다려 준 것 같다.

부모님과 대화하는 시간이 꽤 즐겁다. 나이에 따른 충고도 가끔 들을 기회가 있는데 최근에는 살짝 무서운 말을 들었다.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시간은 아무렇지 않지만 30대에서 40대로 넘어가는 시간은 꽤나 힘들다는 것을. 아직 시간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뭐가 어떻게 다르다는 건지 알지 못하니, 사실 두렵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간이 흐르기에 나이가 드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고, 그렇기에 나 또한 늙어가는 게 당연한 건데 피터팬 증후군이라도 걸린 것인지 요즘 들어 참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감정이라는 것은 참 무섭다. 비옥한 토양이 쌓이면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숲이 되고, 땅에 있는 수분이 다 뺏기면 아무것도 살지 않는 사막이 될 수 있듯이 감정이 쌓이면 그게 나의 얼굴이 된다. 내 얼굴에는 내가 쌓아 뒀던 감정을 머금고 있다. 가끔 거울을 본다. 내 무표정에 인색함이 있지 않은 지, 내가 웃을 때는 어떤 얼굴인지 관찰한다. 주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체크해봐야 한다. 무관심 또한 조절할 필요성이 있다. 사실상 조금이라도 귀찮아진다 싶으면 무관심해지는 게 더 심해졌달까. 내가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무관심이 당연해진다면 나 또한 그들의 기억 속에 무의 상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나의 감정에 모든 것들을 품을 수 있지 않더라도, 적어도 생명체가 숨 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 장점 중 하나로 오래 걷기가 있다. 2만 보도 걸으니 걷는 건 자신이 있었다. 물론 믿는 구석이 있었다. 표지판. 표지판만 보면 어디서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기에 난 새로운 길에서도 내 체력만 되면 그냥 걷는 것을 좋아했다.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누군가가 만들어 둔 표지판이 있지만 인생에는 그 표지판을 내가 만들어야 한다.

어디인지도 모른 채로 익숙하게 너무 많이 걸은 것이 문제였을까. 길이 안 보인다.

어렸을 때와, 나이가 들어 길을 잃는 게 다른 것 같다. 뭐 랄까. 어두움의 깊이가 다른 것 같달까. 검정에도 다 같은 검정이 아니듯 내가 걸어온 길이만큼 더 깊고 더 진해진다. 어쩌면 사실 표지판이 있는데 내가 있는 곳이 너무 어두운 것일까도 생각해 봤었다. 근데 그렇게만 생각하면 너무 슬프기만 하니까 그만두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왜 어둠도 시간이 지나면 눈이 적응을 한다 하지 않는가. 슬슬 보일 때가 된 것 같다. 그래서 내년엔 더 좋은 일들이 생길 것 같다.

그런 거 보면 엄마, 아빠는 얼마 큼의 어두움에 적응한 것일 까?   

 

2025년에는 올해보다, 지금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자. 더 많은 감정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세상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제 진짜 곧 지나갈 2024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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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낮 10시 반에 엄마와 함께 영화를 보고 왔다.

엄마는 유독 로마가 배경인 영화들을 좋아한다.

가족여행으로 다녀왔던 로마 여행에서도 제일 설레 보였던 것은 아마도 엄마 아빠 젊었을 적 보았던 영화들의 이유가 크지 않을 까를 생각한다. 특히나 콜로세움 앞에서의 부모님의 얼굴은 그때의 여행에서 통틀어 제일 행복해 보였던 순간으로 기억된다. 사담이지만 부모님과 로마여행을 간다면 벤츠투어를 추천한다. 다리도 안아프고 곳곳을 둘러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혹시나 부모님이 음식이 입에 안 맞아하신다면 길거리에서 파는 군밤과 생과일 컵을 보일 때마다 사두는 것도 추천한다. 안 맛있을 수가 없다.

 

요즘 나와있는 영화들이 엄청나게 다양한데, 그 많은 영화들 사이에서 콕 찝어 이 영화를 보고 싶다 하신 것도 참 귀여웠다.

잔인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엄마가 이 영화를 선택한 부분에서 난 조금 놀라웠다. 

하지만 더 놀라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ㅎㅎㅎ

이상하게 누군가가 칼에 베일 때마다 엄마가 과자를 먹는 게 아닌가. 나중에 물어보니 피가 나오는 게 너무 싫어서 아래를 보다가, 그저 아래에 있던 과자를 보고 손이 간 것이었다. 그게 계속되니 그 타이밍 때마다 과자를 드신 것인데 전후 사정을 모르는 내 입장에선 약간 무서웠다.ㅋㅋ

영화가 3시간이라 하길래 혹시나 입이 구준할까 싶어 가져갔던 과자에서 나홀로 오싹함을 느껴버린 것이다.

 

그렇게 오싹 오싹거리고 있는데 옆에서 자꾸 밝은 핸드폰 화면이 빛을 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영화를 선택한 연령층들은 대체적으로 엄마 아빠 나이 때였는데 우리 바로 옆에 앉아 계신 분들은 무려 3시간을 내내 핸드폰을 켜두었다. 나중엔 무얼 하는지 궁금해서 봤다가 엄마와 나는 그냥 영화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유는 바로 게임을 하시고 계셨기 때문인데. ㅎㅎ 그 옆에 분은 화면이 너무 밝아서 도저히 뭘 하고 계신 건지도 못 봤다. 우리 동네 영화관은 전부다 리클라이너관으로 바뀌어서 이제는 앞사람이 핸드폰해도 상관없겠다 싶었는데 오늘로써 옆사람은 해결이 안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모든 일들이 있었지만 영화가 생각보다 너무 재밌어서 다행히 그 모든  상황을 뒤로 하고 영화에 몰입돼서 보고 나왔다. 정말 별생각 없이 봤는데 내가 제일 재밌게 본 것 같았다. 엄마는 1편이 더 재밌다면서 나중에 한번 봐보라 하셨다.

아마도 난 1편도 찾아 볼 것 같다. 어쩌면 로마에 대해서도 흥미가 좀 생긴 것 같다. 영화를 다 보고 나오니 아빠가 생각났다. 아빠도 아마 엄청 좋아할 텐데 이제 거의 막을 내리고 있는지 예매할 시간대가 좀처럼 맞지 않았다.

퓨리라도 재개봉한다 해서 아쉽지만 그거라도 예매해둘까 싶다. 

 

내가 엄마, 아빠 나이가 되었을 때, 나의 젊었을 때를 생각하며 기억할 영화들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지금의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은 나 홀로 집에 시리즈, 해리포터 시리즈, 폴라익스프레스 같은 산타가 나오는 영화들인데 먼 훗날 아직까지는 존재의 유무도 확인할 수 없는 나의 아이들에게 이 영화들을 추천해 준다면 과연 오늘날 내가 엄마, 아빠한테 추천을 받았을 때 느꼈던 "멋"을 보일 수 있을까.

결부터가 다르니 난 아무래도 초등학생 때쯤 같이 보는 걸로 노선을 선택해야겠다. 그때라면 과연 최고의 선택일 듯하다.

 

고전 영화들은 대체로 나에겐 흑백 영화들로 기억된다. 어렸을 적에 학교 음악시간에 틀어주던 고전 영화들을 기억하는가. 그때 당시 수업이 끝난 후 자투리 시간에 보여주던 거라 짧으면 10분, 길면 20분쯤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별로 재미도 없었을 내용들이 더욱 재밌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감칠맛 같은 흑백 영화들이었다. 그때 이후로는 다시 찾아보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고전 영화들을 찾아서 봐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재밌는 고전영화 하나 찾아서 나중에 내 아이에게 소개해주는 것도 꽤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달까. 왜인지 "멋"에 집착하는 나일까 싶기도 했다.

이렇게 집착하는 모습에서 보았을 때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더도 말고 우리 부모님 같은 부모가 되고 싶다. 그렇게 되면 내 자식들도 꽤나 행복하게 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더 열심히 살아야지. 그래서 우리 가족이 더, 더 행복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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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왔다. 그제 밤부터 하늘이 흐리기 시작하더니 어제 아침이 되자 온 세상이 눈 속에 덮여 하얀 세상이 되어있었다. 나무에는 눈꽃이 피었고, 땅과 건물들에는 추위에도 녹지 않는 눈이불이 덮였다. 말 그대로 세상이 눈 속에 있었는데 첫눈이 이렇게 커다랗게 온건 정말 오랜만이라 보고만 있어도 참 행복했다. 

이제 슬슬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구나라는 느낌이 날 더 즐겁게 만들었다. 수정볼안에 들어있는 것처럼 어느새 밖에는 또다시 눈이 내렸다.

 

"역시 눈이 내리는 날엔 핫초코지."라는 생각으로 지난번 이마트에서 사둔 미떼를 꺼냈다. 뜨거운 물에 미떼를 녹여주고 우유를 넣고 다시 저어서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주면 맛 좋은 핫초코가 탄생한다. 이렇게 탄 핫초코를 들고 베란다에 나가 첫눈의 흔적과 함께 계속해서 오고 있는 눈송이들을 한동안 구경했다. 여기에 이불이라도 하나 들고 오면 딱일 텐데라는 생각을 하던 중 이전에 내가 베란다에서 자보겠다고 도전했던 날이 생각이 났다.

 

그런 날들이 있다. 계절마다 해볼 수 있는 삶의 체험 현장.

유독 겨울을 좋아해서 그런지 나는 겨울에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든다. 삶의 체험 현장이라 해서 웅장한 것이 아니다. 가령 한겨울에 황토 맨발 걷기 하기나 베란다에서 자보기 같은 1박 2일에서 나올 법한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황토 맨발걷기를 할 수 있는 공원들에서 한겨울에 사람들이 걷지 않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왤 까"란 생각으로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걸어봤다. 우리 가족들은 그런 나를 보고 "그래, 해봐라"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공원 옆에 있는 그네에 앉았다. 처음엔 양말을 벗고 얼어있는 땅에 발이 닿으니 약간의 한기가 느껴졌다. 황토가 얼어있었다. 걸어봤다. 발바닥이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순식간에 내 따뜻했던 발바닥이 냉골의 상태가 되었다. 그래도 이렇게 시작을 해봤으니 한 바퀴는 돌아봐야 지란 생각을 가지고 빠른 스피드로 빠른 걷기를 시작했다. 다 걷고 난 다음 발을 물로 씻어야 됐는데 엄두가 나지 않아서 양말을 신고 집에 와서 따뜻한 물로 발을 씻었다. 집에 돌아오던 길 내내 우리 가족들은 나를 걱정하면서도 도대체 그걸 왜 해봐야 아냐고 타박을 했지만 나름 재미있었다. 그 후로 나는 겨울이 되거나 좀 추워질 때 공원을 산책하는 순간이 오면 그때의 내가 생각난다. 사람들도 아마 어쩌면 해봤다가 이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일 지도 모른다. 

 

베란다에서 자보기를 한 날은 유독 뉴스에서 한파 주의를 외치던 날이었다.

겨울중에서도 가장 추운 겨울에 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지라 뉴스에서 속보같이 떠있는 한파주의 단어를 보자마자 "오늘이다!"를 생각했다. 엄마, 아빠께 오늘은 밖에서 자볼 것이라 이야기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이전에 나의 형제는 고등학교 때 자신의 선교부 선배의 수능을 응원하기 위해 선배가 수능을 보는 학교 앞에서 강제로 강 추위 속에서 노숙을 한 경험이 있다. 그는 나를 보며 왜 사서 고생을 하냐는 눈빛을 보냈다. 엄마, 아빠는 그때도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냉장고 박스와 신문지, 침낭을 챙겨 나의 형제에게 집을 만들어 주었던 경력이 있다. 그때의 그 사건은 사실 학교 선배들의 강압적 태도 안에서 이뤄진 거라 자발적인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더 추위를 느꼈던 것 같았었다. 내 일이 아닌 해프닝이었기에 나 또한 얼마나 추운지 궁금했었던 마음이 컸다.

엄마, 아빠는 그날도 여기서 침낭 깔고 자다가는 얼굴이 돌아간다며 몇 가지만 해줄 테니 그 위에서 자라하셨다. 난 뭐 얼마나 달라질까를 생각했지만 부모의 사랑은 위대했다. 어째서인지 베란다 창문과 문에 김서림이 끼기 시작했다. 난 베란다에 누워 창문 밖 별을 보고자 했던 것인데 왜 저렇게 하얀 베란다가 되어있을까 싶어 나가 봤다. 바닥엔 우리 집에 있었는지도 모를 두꺼운 돗자리부터 시작해서 이불 요 매트 + 이불 + 침낭 + 파쉬 물주머니 여러 개. 원래라면 베란다에 가면 코가 시린데 그때는 집안보다 베란다가 더 따뜻했다. 뭔가 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잠자리였지만 그래도 베란다에서 자보기가 주 포인트였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자보려 침낭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바닥이 많이 깔려있는 것인지 내 침대만큼 폭신했다. 이게 바로 가족의 사랑인가 싶었는데 가족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었다.

잠을 자다 너무 더워서 뒤척이다 눈이 떠졌는데 누군가가 날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정말 화들짝 놀라서 일어나 보니 엄마와 아빠가 베란다 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밖에서 자겠다는 나를 말리기엔 내 행동이 너무 완강했고, 그렇게 내버려 두자니 내가 얼어 죽을까 봐 걱정이 되셨던 것이었다. 그 새벽에 우리는 서로 놀랐지만 그만큼 웃었다. 다음날 아침 여전히 뽀얀 창문들을 보며 잠에서 깼다. 역시나 나름 재밌었던 기억이다.

 

어제는 엄마와 밤 산책을 갔었는데, 엄마가 나무들마다 한가득 눈이 쌓여있는 걸 보고 "눈이 많이 쌓여있으면 나무들이 무거울꺼야"라는 말과 함께 어디서 찾아왔는지 모를 긴 나뭇가지로 나무들을 털어주었다. 키가 닿지 않는 곳엔 점프를 하면서 털어주었는데 그 모습이 참 귀여웠다. 슬쩍 내 뒤에 와서 나에게 눈벼락을 맞게 하기 전까지 난 엄마의 따스함에 감동하고 있었다. 그렇게 눈도 맞고, 밟으면서 뽀독 뽀독 소리도 들으며 산책을 하니 슬슬 생각나는 게 있지 뭔가. 

 

한겨울에 붕어빵은 못참지.

붕어빵 파는 아줌마를 찾아 이리저리 다니다 드디어 찾아서 팥붕어빵 4개를 샀다. 아주머니께서 갓 만든 거라 아마 한입 먹으면 잊지 못할 거라 하시길래 두근거림은 배가 되었다. 무엇보다 여기 붕어빵은 아직 2개에 1000원이었다. 감사합니다의 인사와 함께 가장 맛있게 생긴 붕어빵을 엄마한테 주고 나도 하나 꺼내 먹었다. 엄마와 동시에 눈이 마주쳤고 우린 다시 왔던 길을 돌아 붕어빵 두 개를 더 사 왔다. 그 사이 붕어빵아주머니는 줄이 길게 늘어나있었다. 모두가 한마음이었던 것이다. 사실 우리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다 들리도록 너무 크게 맛있다를 외쳤던 것 같기도 하다. 

역대급으로 만족했던 붕어빵을 먹으면서 신나게 집으로 향했다. 겨울의 시작이 아주 좋다!

붕어빵은 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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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1월이 되었다. 이제 올해가 가기 전까지 단 두 달만을 남겨둔 상황이다.
나는 과연 올해에 어떤 삶을 살았는가.
최선을 다해 바쁘게 살았을 까.
결과적으로 나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바쁘게 살지 않았다 해서 여유를 가지고 나를 위해 살았나 생각해 봐도 나는 이도저도 선택하지 못한 한 해였던 것 같다.

차라리 완벽하게 편안한 쉼을 선택한 것도 아니라는 부분이 아쉽다. 왜 그랬을 까.

나이가 먹을수록 1년의 단위가 참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체감 상 거의 버스 정류장 지나가듯 한 달, 두 달 그렇게 지나가는 기분이 든다.
그 사이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잠시라도 눈을 떼면 이미 손에서는 멀어져 원래 내려야 할 정류장이 아닌 그다음 정류장으로 가고 있는 상황이다. 처음엔 그 상황이 당황스러웠는데, 이제는 더 늦기 전에 그다음 정류장에서라도 내려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친구 관계도 그렇다. 나도 모르게 멀어져 버린 내 친구들이 올해도 존재한다. 어렸을 때는 친구를 사귀는 게 참 쉬웠던 것 같은데 이제는 친구를 잃는 것 역시 참 쉬워진 것 같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 수 없듯이 모두가 다른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기에, 그 사이에서 오는 아쉬움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 어쩌면 이유가 되는 것 같다. 
어렸을 땐 같은 시간 속에서 다른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현실이 새롭고 흥미롭게 다가왔는데 어느 정도 성장한 지금의 상태로 보면 흥미롭게만 생각할 수 없는 것 같다. 아마도 나 또한 변해버린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일 뿐이겠지.

 

나는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생각이 쌓이고 그 쌓인 생각 위로 또 다른 생각이 쌓이는 것이 나는 참 좋았다.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마도 나이가 들면서 얻을 수 있는 큰 장점이라 생각했었다. 간과했었다. 생각에는 좋은 감정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렸을 때는 기쁨의 기준치가 낮았던 것 같다. 풀밭을 걸어가도 신이 났고, 모든 게 궁금했고, 그래서 모든 시간들이 추억이 되었다.

하지만 커가면서 기쁨이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기쁨보단 슬픔이라는 감정에 대해 더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모든 것에 무뎌진 감정을 갖게 되었다. 맞다. 나는 어쩌면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던 슬픔에 대해 배워가고 있는 것 같다. 감정은 다양하기에 이 시간이 지나면 나는 또 다른 감정에 대해 배우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인간이라는 기준치에 맞는 감정들을 가지게 될 테니 지금의 이 생각도, 익숙해지자.

아! 그래도 자격증을 두 개나 땄다. 새로운 환경에서 경험도 해보았다. 잘 되지 않은 결과라 할지라도 꽤 여러 곳에 발을 넣어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올해의 나에게 부족하다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던 이유는 아마도 세상 모두가 나보다 더 바쁘게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인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오늘, 내일을 더 열심히 생각하고 살아가기로 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이 어느 정도 일지 몰라도 열심히 살고 싶다. 오늘 같이 또 후회되는 시간을 갖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년엔 더욱 발전한 나를 만나길 바라고 바란다. 힘내보자!

 

 

 

 

그대가 자신의 별을 따라가는 한, 영광스러운 항구에 실패 없이 도달할 수 있으리라. - 단테의 신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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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들을 많이 꾼다. 영화같이 긴 내용의 꿈들도 꾸기 때문에 꿈을 꾼 날에는 기분이 극명하게 갈린다.
흥미진진한 내용의 꿈들을 꾸면 꿈에서 깨기 싫어진다. 도망을 치거나 무언가 사건의 목격자가 된 꿈들에서는 깨고는 싶지만 결말까지 보고 싶은 아이러니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달콤한 상상의 꿈들에선 꾸고 난 후 나의 일상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기분 좋은 스타트가 되지만 불쾌할 정도로 찝찝한 꿈들에서는 하루 종일 꿈에 대해 되새겨 보다가 그날 하루가 끝나기도 한다.
 
내 꿈에서는 시점들이 계속해서 변화된다. 지난번 어떤 꿈에서는 피해자, 가해자, 목격자의 모두의 시점을 볼 수 있었다.
역시나 오늘의 꿈에서도 나의 시점은 계속해서 변했다. 
 
오늘 꾼 꿈은 약 40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꾼 꿈이었다.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길래 적어본다.


 
< 꿈속의 시점 변화 > 
1. 의사들.
2. 실험체로 추정되는 두 분류로 나뉜 사람들.
3. 특이한 형태의 괴물들.
4.곳곳에 설치된 CCTV
 
< 꿈속에서의 등장인물 형태 >
1. 의사 - 공통 오브젝트 : 의사 가운. 가운 외에는 캐주얼하게 입거나,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2. 사람들 - 병원 환자 복을 입고 있기도 했고, 일반 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환자복이 70%, 일반복이 30%
3. 괴물 - 검은 봉지를 얼굴에 쓰고 있어서 눈이 보이지 않았다. 얼굴, 몸 전부 살이 있을 곳엔 검은 물감이 묻어 있다. 입고 있는 것도 밭에서 사용한 비닐 멀칭처럼 모래가 묻은 낡고 찢어진 검은 비닐이었다. 공사장 같은 데서 보이는 기다란 검은 비닐들로 온몸이 감아져 있었다.
4. 스프레이 -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세모난 삼각원뿔형태의 스프레이.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으며 투명한 것도 있고 뿌연 파란색도 있지만 내부의 액체는 보인다.
5. 주사기 - 얇은 주사기. 의사들은 주사기를 들고 있을 때 모두 흰색 손장갑을 꼈다.
 
< 환경 >
1. 밤이였다. 
2. 건물 위층에서 아래를 보면 나무들이 빼곡하게 많아 온통 검은 숲들로 둘러쌓져 있다. 
3. 달의 빛이 은은하게 건물을 비추고 있다.
4. 건물의 내부에 어느 벽들은 힘을 주면 슬라임처럼 벽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5. 건물 내부 : 통유리로 되어 있는 창문이 깨져있으며 꽤 오랫동안 방치되어 이끼가 끼어있는 층들이 있는가 하면 어제까지도 사용했던 것 같이 모든 오브젝트들이 깔끔하게 들어가 있는 층들도 있다. 
6. 의사들이 시체를 옮기고 있던 곳엔 화장터처럼 네모난 직육면체 공간이 길게 뚫려 있는 벽이 있었다.
7. 복도 곳곳에 나무로 만들어진 파티션들이 벽 쪽에 세워져 있었다.
8. 이불이 있는 방의 이불들과 위에 달려있는 스프링 클러는 이전에도 사용했던 것 같이 사용 흔적이 남아있었다.
9. 의사들이 연구하는 연구실에는 파란색 불이 희미하게 있고 중간중간 책상에 LED 조명이 켜져 있었다.
10. 형광물질이 사람의 몸에 닿을 때는 형광색 물감이 물풍선에서 터지듯 묻은 것처럼 보였다.  
 
커다란 건물 두개가 쌍둥이처럼 붙어있었으며 가운데 연결된 통로로 넘어갈 수 있게 생긴 구조였다. 통유리의 창문을 통해 반대쪽 건물에서의 움직임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
나는 실험체에 포함되는 인물 1이었는데, 시간 안에 살아남은 후, 다시 불특정한 쉬는 시간을 가지고 반복하는 형태였던 것 같다. 
 
내가 있는 쪽 건물에서는 눈이 안보이는 괴물들이 스프레이를 들고 뿌리면서 사람들을 찾고 있었다. 
스프레이 속에는 형광 물질이 들어있는지 사람한테 뿌리면 형광이 반응하였다. 벽이나 물건들에 뿌렸을 때는 형광이 발현되지 않았던 걸로 보아 아무래도 체온이라거나 사람에게만 있는 반응에 반응하는 것 같았다. 형광 물질이 몸에 묻은 사람들은 스프레이 뿌리는 괴물 뒤에 있던 괴물들에게 끌려갔다. 형광물질이 몸에 묻어 있어도 괴물들의 눈을 피해 도망을 친다면, 불이 꺼질 때까지 쉴 수 있는 이불이 있는 방에서 옷을 갈아입거나 묻은 옷을 벗고 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워낙 건물 내부의 빛들이 없었기 때문에 형광의 색들은 눈에 너무 잘 띄었다. 사람들 또한 그들과 같이 있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이유는 당연하게도 형광물질이 닿아 몸에 묻거나 같이 있다가 표적이 되어 스프레이에 맞을 확률이 커지기 때문이었다. 극한의 이기심들이 눈앞에서 일어났지만 딱히 서로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일정 시간동안 괴물들을 피해 스프레이를 맞지 않고 피하면서 건물에서 불이 켜져 있는 이불들이 펼쳐진 방으로 들어가면 불이 켜져 있을 때까지 잠시 동안은 쉴 수 있었다. 물론 불이 꺼지면 다시 도망쳐야 되는 상황이었다. 
건물 내부는 거의 모든 곳이 불이 꺼져 있기 때문에 불이 켜져 있는 공간은 반대쪽 건물에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팀을 나눠 반대쪽 건물과, 본 건물에서 서로에게 불빛이 있는 공간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도망치던 사이에 반대쪽 건물에서 의사들이 사람을 죽이고 유기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목이 잘린 시신의 목에는 붕대로 돌돌 말아져 있었다. 의사들이 시신의 팔다리를 들어 어딘가로 이동하던 중 도망치던 또 다른 사람들과 마주쳐서 시체를 바닥에 두고 그 사람들을 쫓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거기 있던 의사들은 괴물들이 데려간 사람들을 데리고 임상 시험을 하고 있는 중이었던 것 같다.
 
반대쪽 건물에는 두 종류의 의사들이 있었다.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의사와 몰래 형광 물질에 대한 백신을 만들고 있는 의사.
 
CCTV의 시점으로 보게 된 기억은 이렇다.
< 복도의 CCTV - 소리 녹음 X >
엘리베이터의 문안으로 숨어 들어가 숨죽이고 있던 사람들에게 의사들이 무언가를 이야기하면서 다급하게 접근했다. 이후 파란 물질이 들어가 있는 주사기를 그들의 팔에 주사하는 것을 보았다.
< 연구실의 CCTV - 소리 녹음 O >
의사들끼리도 의견이 다른지 주사를 맞겠다고 싸우는 의사들이 생겨났다. 어떤 의사는 자신한테도 주사를 놔달라며 옆의 의사의 멱살을 잡으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데 뒤에 있던 다른 의사가 와서 파란색 약물이 들어있는 주사기로 주사를 놓는 척하다가 주황색의 약물이 들어있는 주사기로 바꿔 치기 해서 주사하는 것을 보았다.
어떤 영향을 받는 건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투약할 양이 인원수대로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
< 불이 켜져있는 이불이 펼쳐진 방 >
여기에는 이불들이 수련회에 갔을 때처럼 바닥 전체에 침구가 깔려있다. 침대가 있거나, 바닥에 이불이 깔려 있거나, 또 이불이 작거나 크거나, 침낭이거나 했는데, 방을 찾아 간신히 살아 들어온 후에도 내부에서 다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웠어야 됐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이 5명이라 5명의 자리를 맡아 둔 거라면서 이불을 움켜쥐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4명 정도의 인원이 들어갈 수 있는 대형 침대에서 혼자만 쓸 것이라면서 소리 지르는 아저씨도 볼 수 있었다. 문 앞에서는 사람들이 자리를 찾기 위해 이동을 했고, 문 바로 앞에 있는 이불들에서는 쟁탈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아무래도 문 앞자리인 만큼 사람들 사이에서 뺏고 뺏는 싸움이 일어났었다. 그 사이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리옆에 사람 한 명 더 들어올 수 있다면서 자리를 뺏기고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들을 불러 데려가기도 했다.
 
< 이불이 켜져 있는 방의 규칙 >
1. 괴물들이 방 근처를 걸어갈 때 방의 불이 꺼지면서 방에 있는 모두가 이불속으로 들어가야 됐다.
2. 만약 누군가가 이불 밖을 나와있다면 천장에 있던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면서 형광물질이 비처럼 나오게 된다.
3. 그 사이 괴물들은 형광물질을 맞은 사람을 데려가고 형광물질을 피해 이불속에 있던 사람들은 괴물이 지나간 후 방에서 나와 다시 도망가야 됐다.
4. 스프링 쿨러가 작동된 방은 더 이상 불이 켜지지 않게 되며 괴물에게서 안전하지 않게 된다.
5. 만약 모두가 이불속에 있어서 스프링 클러가 작동되지 않았다면 불이 다시 켜지며 안전한 공간으로 남는다. 
 


결과를 못보고 꿈에서 깼기 때문에 그 후로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꿈꾸고 난 후 시간이 꽤 지나고도 기억되기에 적어둔다.
지난번엔 파만 먹는 게스트 하우스에 가서 아침밥으로 익은 파를 통째로 썰어 먹고 있었던 게 오래 기억됐었는데 이번 꿈으로 갱신한 것 같다. 아, 참고로 다른 손님들은 파로 샌드위치를 해 먹거나, 파를 갈아 우유쉐이크를 해 먹거나, 파를 먹는 척하고 그릇에 두고 신문만 읽거나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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