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꽃시장을 자주 간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그때가 대학생 때부터인가.
꽃 향기가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는 공간. 활력이 넘치는 그 공간 안으로 들어간다.
처음 꽃시장에 갔던 날, 나는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시작은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맞이해서 꽃을 선물하기 위함이었다.
꽃다발 하나 가격에 말도 안 되는 양의 꽃들을 구매할 수 있다는 어떤 블로그를 보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꽃도 사본 사람이 산다고, 낯선 공간에 덩그러니 있는 감정, 낯설었다.
전날 꽃시장에 관한 블로그는 20개도 넘게 보고 갔던지라 현금을 준비하면 되고 단 단위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아둔 상태였다.
블로그들의 정보는 경험만큼의 가치는 되지 않았으니, 역시 직접 경험이 필요했다.
내가 모르던 사실이 있다면, 우선 길이라고 해야 할까. 꽃시장 안에 있는 꽃집들을 둘러보기 위해 터져 있는 공간은 좁다. 그 사이에 꽃을 나르는 사람들과, 이미 한가득 꽃을 사가는 사람들, 꽃을 사려고 멈춰 있는 사람들, 예약된 꽃을 가져가려는 사람들 모두가 엉겨있다.
마치 흐르는 물처럼 그 사이 길에 있는 사람들은 익숙하게 피하고 익숙하게 지나간다.
처음 만난 물결이 낯선 건 아마도 내가 그 물결을 처음 느껴본 것이라 그러겠지.
얼타다가 한소리 들었다. 예민하고 날카로운 목소리.
이런 건 블로그에 안 써있었는데. 살짝 무서웠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때 잠깐 후회한 것 같다. 오지 말걸 그랬나.
그래도 눈앞에 있는 꽃들을 보고 그냥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슬쩍 옆에 있는 사람들을 따라다녔다. 웃기게도 내성적인 내 성격에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처음 따라갔던 사람들이 사장님께 꽃이름을 대면서 얼마인지 가격을 물어보면, 나도 그들과 함께 가격을 들었다. 전날 보던 블로그에는 대충의 가격들을 알려주던 블로그들도 있었다. 진짜 이 가격일까 싶었던 가격들. (그때는 한단에 3000원이면 살 수 있었다. 그러니 놀랄 수밖에.)
비싼 꽃들이라 해도 8000원 정도면 구매가 가능하고, 대체적으로 3000원, 5000원 하는 꽃들.
나는 그때 5만 원을 가져갔었는데 집에 돌아올 때는 모두들 내가 꽃집을 운영하고 있는 줄 알 정도로 내 품에 한가득 꽃을 사 올 수 있었다. 꽃시장에서 나중에는 싸게 줄 테니 영수증은 안 써준다는 소리도 들었었다. 내게 영수증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너무도 기쁜 소식일 뿐이었다. 꽃다발 하나 가격에 이토록 많고 다양한 꽃을 살 수 있다니. 그동안 왜 안 와봤을까 싶은 기분이었다.
그날을 우리 엄마는 살면서 꽃을 그렇게 많이 본 적은 처음이라고 기억한다.
처음 사보니 꽃대가 부러지는 건 아닐지, 어디 부딪히지는 않을지 긴장감 속에 들고 왔기에 팔이 부러질 것 같은 아픔과 함께 왔다. 그래도 결과만 보면 얼마나 즐거운가. 내 두 팔이 다 부러져도 이토록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병원 다녀오지 뭐. (생각보다 꽃은 무겁다. 잎이나 줄기가 다듬어져있지도 않고, 어떤 건 물도 머금고 있다.)
그날을 지나, 나도 그곳의 물결에 익숙해졌다. 꽃들도 시간이 지나니 이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더라. 그리고 이름 몰라도 상관없다는 걸 생각보다 빠르게 깨달았다. 그냥 '이거 얼마예요.' 하면 다 알려주신다.
생각해 보면 내가 구매자이고 그들은 판매자이니 쫄 건 없었던 건데 어려서 그랬나, 그때는 왜 그렇게 눈치를 보았을까 싶다.
봄이 오면 프리지아를 사야 한다. 노란 프리지아.
보라색, 흰색, 주황색, 분홍색의 프리지아도 있다는 것을 아는가? 노란색보다 향이 더 진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기본 중의 기본은 노란색. 개나리와 동일한 색깔의 노란 프리지아는 개화되기 시작하면서 존재감을 확실히 알려주는 향이 깊은 꽃이다. 노란색을 보고 있으면 마치 봄날의 햇살을 머금고 있는 기분이랄까.
가격도 싸다. 향이 이렇게 좋은데 가격도 싸다니. 그래서 나는 프리지아를 만나면 언제나 데려온다.
꽃들을 그렇게 사다 나르니 이제 집안에서 각자가 좋아하는 꽃들이 생겼다. 취향이 생긴 것이다. 예전엔 부모님께서 나에게 취향을 만들어 주셨다면, 이제는 나도 선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좋다.
나에게 프리지아는 이태원 트럭을 기억하게 하는 꽃이다. 기억 속에 유독 영화같이 기억되는 추억들이 있다.
햇살이 가득했던 날, 따뜻한 바람이 기분 좋게 스칠 때쯤 이태원 골목에 정차한 트럭에서 판매하던 한 가득의 프리지아.
얼마나 많은지 그 작은 트럭을 전부 채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많은 프리지아를 아저씨는 다 팔고 가셨을까. 만개했었는데. 아저씨 덕에 그 골목을 지나가기만 해도 꽃 향기가 꽃시장보다 더 가득했다.
약속을 마무리하고 집에 갈 때 한 다발 사갔던 프리지아. 6000원 밖에 안 했다. 6000원에 산 봄이었다.
그때부터 내가 꽃에 관심을 생겼던 것 같다. 계절을 살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니까.
아저씨는 그날 내게 6000원을 받고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판매했다.
꽃이란 게 참 신기하다. 졸업식날에 당연하게 하나씩 받는 꽃다발. 그렇기에 특별한 날에 받는 선물이라고 기억하면서 막상 구매는 안 하게 되는 희한한 기억. 이상하게 비쌀 것 같고, 이상하게 돈낭비하는 기분이 든 달까. 죽으면 버려야 되는 일회용 쓰레기일 뿐이니까.
그럼에도 한 번 이렇게 꽃을 알게 되면 그렇게 비싸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커피 한잔과 비교를 해보면 오히려 꽃이 더 메리트 있달까.
이제는 꽃시장보다 더 싸게 구매할 수 있는 곳도 찾았다. 꽃시장으로 넘어오기 전 납품하는 꽃 농장에서도 인터넷으로 판매를 한다. 택배비만 내면 집으로 바로 온다. 그래서 한 번에 많이 살 필요도 없어졌다. 좋은 세상이다.
최근에 구매한 꽃들 중에 뽀삐라고 하는 꽃도 있었는데 이름이 너무 귀엽지 않은가.
뽀삐. 누구 집 개 이름 같은 뽀삐가 우리 집에 왔던 날. 아주 싱싱했기에 전혀 개화되지 않은 상태로 왔는데 너무 놀랬다. 이름은 뽀삐인데 형체는 털이 있는 아빠 다리 같은 느낌. '뭘까, 이 아이는' 이라는 생각을 그 아이가 개화되고 나서 접었다.
너무 예뻤다. 왜 이름이 뽀삐인지 알 것 같은 꽃. 이래서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개화된 그날 뽀삐는 우리 가족 모두의 취향에 포함되었다.
프리지아 향이 생각나는 봄날이 왔다. 50개가 묶여있는 5단에 만오천 원 정도면 살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향기.
봄을 느껴보자. 행복은 생각보다 싸게 판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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