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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부터 아주 놀랍도록 다양하고 깊은 꿈들을 꾸고 있다. 그 덕에 어느 정도 크고 난 후로는 재밌었던 꿈같은 경우는 메모장에 적어두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블랙베리 휴대폰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꽤 오랫동안 블랙베리를 사용하고 있었다. 망가지지도 않길래 많은 꿈들을 그곳에 저장해 두었었는데 어느 날, 정품 충전기를 못 찾겠어서 같은 타입의 다른 충전기로 충전을 했다가 더 이상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끔찍한 현실을 마주했었다. 그때 제일 속상했던 것이 바로 백업되지 않은 나의 수많은 꿈들이었다. 물론 이제는 갤럭시를 사용하고 있다.)
 
꿈이란 게 참 신기하게도 꿈에서 막 깨어났을 때까지는 여러 씬들로 분리되어 있을지 언정 흐릿하게 기억은 난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마치 없어져야 할 데이터인 것처럼 빠르게 기억에서 없어져 버린다. 나는 그게 너무 안타깝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들보다 재미있던 나의 꿈들이 오직 단 한 명의 관람객만 남겨둔 상태로 마치 알츠하이머 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존재하지 않는 기억으로 바뀌는 순간의 허망함을 아는 가.
 
오늘도 역시나 나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일어나자 마자 생각했다.
이 꿈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면 내가 꿈에서 깨어났을 때 꿈속의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아주 단순한 의문이 꿈에서 깨고 꿈을 기억하기 전, 첫 번째 우선순위가 되어 궁금증으로 시작되었다.
내가 꿈을 꾸고 있던 그 모든 순간들의 나는 몽유병이라도 있지 않는 이상 당연히 누워서 잠을 자고 있을 것 이다. 그렇다면 나의 꿈속의 나도 내가 현실에서 깨어있을 동안 잠들어 있는 것일까. 
나의 꿈은 다양했다. 같은 장르로 묶이는 꿈들도 있었지만, 전혀 다른 장르의 꿈도 꾼다. 좋은 건지 나쁜건지는 몰라도 유쾌한 꿈들은 거의 없긴 했다. 그래도 현실이 유쾌하니 딱히 상관은 없다. 그 다양한 꿈에서의 나의 시점으로 들어가 본다면, 보통 마지막 꿈에서 깨는 순간의 나는 다급하거나,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거나, 심리적으로 불안함이 극도로 치달았을 때, 또는 무언가 아주 중요한 순간을 마주하기 직전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그 꿈속에서 깨어나는 행동이 바람직 한 행동일까. 그 안에 있던 나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내 꿈에서 두번 세 번 같은 공간이 나오는 상황은 거의 드물다. 아주 드물어도 간혹 있긴 한데 , 만약 단 한번 꾸는 내용의 꿈이라면 나는 영원히 내가 깨어나기 바로 직전의 그 순간, 그 공간 안에서 영원한 잠에 빠져 있는 걸까.
 
오늘 내가 꿈에서 깨어나기 직전에 있던 공간은, 돌담이 많은 마을에 있는 작은 성당같이 생긴 학교 담장 밑 누군가에 의해 숨겨져 있던 관속이였다. 잠깐씩 관 뚜껑을 살짝 들어 밖에 상황을 살피던 순간이었는데, 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있었다. 한 낮이었고, 나는 땀을 많이 흘렸었고, 밖에선 선선한 바람이 불어 내가 뚜껑을 열 때마다 시원하게 들어왔다. 그렇게 그곳에서 느꼈던 모든 감각도 생생한 채로 나는 현실로 깨어났다. 그렇다면 꿈속의 나는 그 관 안에서 자고 있는 것일까. 내가 다시 그 꿈으로 가지 않는 이상 아마도 나는 그곳에서 죽을 것이다. 마침 숨겨져 있던 관속이었기에,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숨어 있었기에 백골이 될 때까지 발견을 못 할 수도 있다. 어쩌다 발견이 된다 해도 별다른 수사는 이뤄지지 않은 채 사건은 종결되겠지. 이게 과연 꿈속의 내 입장이 되어도 이해할 수 있는 결말일까. 
 
꿈에서 꿈이란 것을 인지하는 즉시 꿈속의 모든 사람들이 인지한 그사람에 대해 외부인을 본 것 같이 뚫어져라 쳐다본다 했던 이야기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만약 현실에서 우리 중 누군가가 "이거 꿈속이네."라고 한다 생각해 보자. 우리는 그에게 관심이나 줄 것인가. 아마도 아주 이상한 눈으로 잠깐 쳐다보고 다시 자신이 하던 행동을 마무리 질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아주 잠깐 쳐다보던 그 찰나의 순간이 꿈속에서 꿈을 인지한 사람이 느꼈을 그 순간이라면 어떨까.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는 것 처럼 나는 때때로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서 잠을 잔다. 그런데도 그 잠 안에서 꾸어질 또 다른 현실에게서, 다시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꿈에서 깨어나 원래의 현실로 돌아오는 상황이라니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내가 있는 공간이 어디라 해도 당장에 벗어나고 싶은 생각보다 더 나은 결과를 향한 생각을 해보는게 맞을 것 같다.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계속 벗어나려고 회피하기만 한다면 꿈도, 현실도 내가 깨어있을 공간은 없을 것 같기에, 적어도 그 공간 안에 있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결말을 만들어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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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타를 믿는다. 그렇기에 크리스마스를 매년 기다리고, 어딘가에서 산타는 돌아다니고 있을 거라 확신하며 나름대로의 크리스마스를 즐긴다. 12월에 만나는 나의 주변 친구들에게는 몇 개의 초콜릿과 크리스마스를 기념할 만한 오브젝트를 준비해서 선물 꾸러미를 만들어 선물해 준다. 마치 산타의 조수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드는데, 내가 그런 선물을 준비하는 이유는 선물을 받는 모두가 나처럼 설레는 크리스마스를 보내길 바라는 마음이다. 친구들에게 설레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겠다는 그 기쁜 마음은 어느덧 12월이 시작되는 첫날부터 대외비로 비밀리에 진행되는,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선물 리스트를 작성하고 은밀하게 주문하여 포장까지 완료하는 행동으로 연결된다. 선물을 받는 친구들 중 어느 몇 명은 나에게 크리스마스 편지를 준비해 주는데, 봉투에서부터 크리스마스가 가득 담겨있는 편지를 받아 든 그 순간 딱 이런 기분이 든다. 온갖 연기를 뚫고 굴뚝으로 나온 직후, 산타클로스를 위해 준비해 둔 알록달록한 버터 쿠키를 발견한 기분이랄까.
 
그렇게 12월이 끝나고 산타의 계절 같은 겨울이 지나갈 때쯤, 과연 산타는 나머지 계절을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겨울엔 눈사람도 만들고, 썰매도 타고, 키우는 루돌프들에게 각소금도 주면서 산책도 할 테고, 조수들이라고 있는 엘프라거나 요정들이라거나 그 누가 되었든, 조수들과도 함께 이번 시즌의 선물들은 어떤 걸로 구성할 건지, 선물 받을 아이들의 착함 기준치에 대해 토론을 하던지, 나쁜 애들도 구제방안이 있어야겠다거나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할 것 같다. 
시즌이 끝난 나머지 계절엔 과연 그들은 무얼 하면서 살 것인가.
 
일단 이 부분에 대해서 예전에 생각해 본 걸 간단하게 말하자면 행정구역 별로 시의원처럼 산타들이 존재하는데 그들이 정년퇴임하기 전에 자신을 이을 산타를 찾아 키운다거나 하는 그런 생각들을 해본 적이 있었다. 산타가 되고자 하는 산타 지망생들을 손수 골라 장학금을 주며 최우수 산타로 키워내는 육성시스템. 자신을 이을 산타를 찾지 못한다면 영원히 퇴직할 수 없는 끔찍한 노동의 현장을 생각한다면, 산타들은 계절과 상관없이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후임을 찾아낼 것이다. 그러다 산타가 되겠다 생각했던 초기의 마음을 저버리고 타락해 버리는 순간이 온다면 그 산타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생각에선 나름 타락한 산타들에 대해 몇 가지 갱생 루트를 생각을 해봤었는데, 대략 3개 정도였다.
우선 타락 산타들이 가장 처음에 해야 할 일은 선물 포장이다. 타락한 마음으로 선물을 전해주는 행동도 어쩌면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에 더 이상 아이들을 만나지도 못하고 선물 공장에 박혀 오로지 선물만 하루 종일 포장만 하며 단순한 일만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다. 물론 조수라고 생각했던 포장 전문직들과 함께 해야 하기에 눈치 보며 일을 해야 한다는 게 약간은 정신적으로 힘들 수도 있겠다.
그다음은 빨래하기. 선물 포장을 하면서 내가 왜 타락했을까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면 "빨래하기"는 감사함을 느껴보는 시간이다. 타락하지만 않았어도 빨래를 할 필요도 없었을 상태에서 주구 장창 내가 입지도 않은, 내가 신지도 않은, 내가 쓰지도 않은 빨래만 해야 하는 상황이 놓인다면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산타 하면 생각나는 그들의 전용 출구는 바로 굴뚝. 지금은 다른 출구도 있을 수 있겠지만 어찌 되었든 산타의 옷은 새것 같은 빨간색으로 보여야 하기에 빨래는 필수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많은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닐 산타들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발냄새가 날 것 같은 기분이다. 잠자고 있는 아이들을 발냄새로 깨우고 싶지 않다면 양말도 꼭 빨아서 신어야 될 테니 빨래는 필수랄까. 또 루돌프를 생각해 보자. 루돌프가 아무리 산타가 키우는 애완동물이라 해도 야생의 냄새는 어쩔 수 없이 날 테고 그런 루돌프에게 선물을 실어 나르려면 각소금을 얼마나 주면서 꼬드겨야 할지 아찔하다. 바쁜 산타의 입장에서 각소금을 줄 때마다 장갑을 빼고 줄리는 없을 테고, 아마 장갑엔 루돌프 침이 한가득 묻어있을 것이다. 그런 장갑으로 아이들의 선물을 들고 있기엔 청결이 별로일 것 같지 않은 가. 그래서 쉴 새 없이 빨래를 하고 있을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마지막은 아이들과 사진 찍어주기. 크리스마스 시즌에 산타 복장을 하고 백화점이나 놀이공원이나 언제나 가짜 산타가 등장한다. 난 그들을 보면서 어쩌면 진짜 산타들이 숨어 있진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그렇게 아이들과 사진을 찍어주면서 호호호 웃고 있는 산타들을 보며 저 중에 진짜 타락산타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이게 사실 제일 힘들 것 같다.
가뜩이나 타락한 마음이 한가득인데 그런 마음으로 평생을 봐왔을 아이들과 함께 사진 찍어주기라니, 하루라도 표정관리가 안되면 타락 증거자료로 바로 쓰일 수 있는 사진으로도 남을 테고 말 그대로 감정 노동이기에 가장 끔찍한 행동일 것이라 짐작했다. 그렇기에 타락 산타들이 다시 산타로 복귀하기 전 마지막으로 반드시 수행해야 되는 행동이랄까. 이 정도까지 하면 다시 산타로 복귀하기엔 충분할 것 같다.
 
뭐 어쨌든 생각보다 산타라는 지위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딱 한 명만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수히 많을 것 같지도 않다. 무수히 많은 산타가 있다면 내가 크리스마스에 가족들 말고 진짜 산타에게 선물을 단 한 개도 못 받을 정도로 인생을 막살진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히 엄청나게 바빠서 아직 못 찾아온 것이라 생각한다.
 
언젠가 만날 산타에게. 
난 널 진짜 믿고 있었다. 언젠가 만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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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된 지 어느덧 20일이 넘어간다. 계절은 참 신기하다.

겨울에서 봄이 되는 그 순간들이 뭐라고 사람들은 봄을 기다린다.

추웠던 온도에 웅크리고 있던 몸이 내 감정보다 먼저 봄을 느끼는지 자연스럽게 입는 옷이 얇아졌다.

 

입춘의 뜻이 봄이 서다는 의미란 걸 알고 있는가?

봄이 서다.

난 봄이 섰다는 생각을 하면서 문득 그런 상상을 하게 됐다.

서있는 봄 곁에 마치 "딱 지금이야!" 하는 것처럼 꽃이 피고 건조했던 모든 식물들이 싹을 피우면서 초록초록해지는 세상.

그걸 바라보고 있는 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실 봄의 생각도 궁금하지만 가장 궁금한 건 겨울의 생각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이다.

크리스마스가 있으며,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창문을 볼 수 있다는 그 기쁨이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아직 산타를 믿고 있다는 사실이, 겨울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겨울의 입장에선 봄이 서있는 그 시간은 삶에서 유일하게 외롭단 생각을 하는 시간이 아닐까?

모두가 자신이 지나가길 바라는 시간이 될까 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만약 내가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그 길에 서있는 모두가 내가 빨리 지나가길 바란다면 아마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져서 빠르게 뛰어가지 않을까.

처음 보는 사이도 아닌데 그럼에도 모두가 날 외면 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F4처럼 사계절 중 하나라는 중대한 입장에서도 더 이상 계절임을 포기하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겨울이란 계절은 다른 모든 계절들보다 멘탈이 강하지 않을까.

어쩌면 그 길에서 변덕이 생겨서 꽃샘추위라거나 뜬금없는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내리는 광경을 보게 되는 게 아닐까 싶은데, 만약 이유가 그런 거라면 그런 겨울의 모습은 본받을 만한 것 같다.

 

벚꽃이 가득 피고, 싱그러운 바람들이 잔뜩 부는 봄이 된다 해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겨울을 다시 기다릴 것 같다.

겨울이 내 마음을 알아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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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눈이 자꾸 나빠지는 것 같아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봤다.

만약 태어날 때부터 내 눈이 언제까지 사용 가능한지가 정해져 있게 태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갑작스러운 사고라도 나지 않는 경우 외에 내가 볼 수 있는 시간의 유효기간. 태어난 시간부터의 기준으로 죽을 때까지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이 제한되는 그런 생각! 


우선 태어났을 때 부터 생각을 해보자.

나의 아이가 과연 얼마나 세상을 보고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아마도 손가락, 발가락 개수보다 먼저 확인하는 상황이 올 것 같다. 타인에 비해 기간이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는 눈의 유효기간이기에 병원에선 이 시간에 따라 축하의 말도, 유감의 말도 전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간이 길든 적든, 부모의 얼굴을 아주 잠깐 보여주고, 아이의 눈을 곧장 검은 천으로 가리고 신생아실로 옮겨둘 것이다. 아기의 입장에선 지금은 굳이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없는 시간일 테니.

 

여기서 추가로 생각할 수 있는 관점은 두 가지가 있다. 지금처럼 안구 이식이 안 되는 세상과,  현대의학이 발달해서 안구 이식이 가능한 세상.

 

전자의 안구 이식이 가능하지 않은 세상을 산다면, 세상사람들은 모두가 이미 눈을 감고 생활하는 습관이 들어져 있을 것이다. 눈이 필요한 직업들은 다른 직업에 비해 연봉이 하늘을 치솟는다. 세상에 태어날 때 유독 눈의 수명이 길었던 사람들이 이 자리를 꽤 차고 있다.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평범한 눈의 수명을 가진 사람들도 제법 이 일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다른 직업에 비해 눈의 수명이 끝났을 경우 보상해 주는 케어 서비스도 잘 돼있기에 일하는 사람이 부족하진 않다.

계획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오늘 하루동안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세상을 볼 수 있는지 워치로 알림을 작동시켜 둔다. 일정한 시간 이상 사용이 되면 경고음 또한 들려 나온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들에서 전해져 오는 경험과, 주변의 환경에 따른 자신만의 관심의 기여에 따라 무엇을 볼지 무엇을 포기할지를 결정한다. 안타깝게도 태어날 때부터 버려지거나, 어렸을 때 부모의 손에서 크지 못하는 아이들에겐 이러한 지식이 부족하다. 아무래도 보육원이나 관리 센터에선 부모의  사랑보단 더 관대한 제한을 둘 테니 말이다.

 

눈의 수명은 돈이 많은 부자에게도, 돈이 없는 거지에게도 공평하게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은 다르게 살 것이다. 부자들은 과정에서 필요한 확인은 타인의 눈의 수명을 사서 해결하고, 오로지 결과에서만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다. 아무래도 돈이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눈의 수명을 절약할 수 있다. 

눈의 수명이 유전적인 이유일 수도 있기에, 결혼하기 전에 자신들의 유효기간이 어느 정도였는지 필수로 물어본다. 이미 그들은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이 부분에 대해 알고 시작한 경우도 있다. 누가 봐도 낮은 유효기간인 사람들은 어쩌면 그들끼리의 세상을 살 수도 있다. 오히려 남들보다 더 많이 내적 된 경험치를 통해 행복하게 살수도 있다. 오디오 북을 출판하여 떼돈을 벌 수도 있다랄까. 아, 이 세상엔 더 이상 책을 눈으로 읽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졌다. 허세로도 보일지 모르는 행동이기에 오디오 북으로 만들어져있지 않은 책들로만 어쩌다 가끔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기 위해, 맛있는 음식을 기억하기 위해, 여행 간 공간에서의 추억을 위해, 학교의 입학식이나 졸업식같이 새로운 시작을 위해, 마지막의 끝맺음을 위해, 계절의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등등. 다양한 이유로 자신에게 남은 눈의 유효기간을 사용한다. 예전 시대에는 사람들이 자기 전에 핸드폰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는데 이제는 사치 중에 사치적인 행동일 뿐이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사진을 많이 찍어 둔다는 것. 몇몇의 사람들은 눈의 유효기간이 거의 남지 않았을 때 그동안 찍어뒀던 사진을 본다. 앞으로 더 이상 못 볼 자신을 위해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순간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또 몇몇은 이제 곧 수명이 끝나가는 입장에서 아직 눈의 수명이 남아있을 때 그동안 찍어 뒀던 사진을 본다. 그리웠을 추억들이나, 좋았던 기억이 담긴 사진들을 보며 자신의 마지막 남은 시간들을 정리한다. 물론 동영상 또한 남겨두는 사람들이 있지만 제대로 찍혀 있는 것은 드물다. 처음과 끝만 확인하였기에 중간에 카메라가 움직였다면 그 상태로 찍혀있기 때문이다. 시간도 여유롭지 않다.

 

아,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에겐 형벌이 더 가혹해졌다. 형이 정해지면 하루 9시간의 시간은 반드시 눈을 뜨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칫 유효기간이 적은 사람이라면 교도소에서 유효기간을 다 쓰고 나오는 경우도 존재했다. 아무래도 세상이 변하다 보니 범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사람들이 시위를 통해 주장했던 내용인데, 범죄자들의 인권을 참작해 교도소 내부에서 하루 9시간의 사회봉사를 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이 시위를 통해 재정된 법은 세상에 이득이 되긴 했다. 예비 범죄자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최소한 한 번의 브레이크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교도소 내에서 9시간의 사회봉사를 한다 해서 형벌에서 차감되는 방식도 아니라 범죄율은 감소했고, 재범률 또한 더 낮아졌다. 나쁘지 않은 결과다.

 

후자인 안구 이식이 가능한 경우를 생각해 보자. 굉장히 부정적인 생각들로만 가득 차오르는 상황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아마도 역시나 이미 눈을 감고 사는 세상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자들과 범죄자들은 다르다.

한 생명이 탄생하는 소중한 순간, 부모들은 아이의 눈의 유효기간을 의사보다, 간호사보다 빠르게 확인하고자 원할 것이다. "부디 적지도 많지도 않은 평범한 기간이여라."라고 기도하면서 말이다.

 

아이의 눈의 유효기간이 긴 경우, 수많은 곳에서 부모의 핸드폰으로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전화가 온다. 사람들은 당장 그 눈을 사고 싶다는 말들 뿐, 아이의 건강엔 관심이 없다. 아이의 눈 수명은 누구나 노릴 수밖에 없는 빨간 문신 같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병원들은 태어난 모든 아이들의 눈 유효기간을 태어나자마자 스폰받고 있는 비밀리스트에 업데이트시켜 둔다. 국가는 이러한 문제들 속에서 산모가 충분한 회복을 할 수 있도록 1년 정도의 안전 가옥을 제공한다. 하지만 1년이란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그럼에도 그나마 괜찮은 건 아이의 눈이 아직 작기에 완벽한 타깃이 되지는 않는다.

 

사람의 안구도 크기가 맞아야 이식을 해도 이질감이 없기에 보통은 연령대가 비슷한 사람의 안구를 많이 선호한다. 이런 경우 때문에 현재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범죄가 바로 납치와 유괴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태어나자마자 눈의 수명도 아껴야 하는 이 시기에 범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 성인의 경우는 납치나 유괴 이후 안구만 적출되고 살아서 돌아오는 경우가 있지만, 아이들의 경우는 실종으로 넘어간다. 보통 더 이상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을 정도로 성장한 아이들이 이 경우에 해당하는데 눈을 가리고 필요한 연령대가 될 때까지 키워졌다가 안구 적출 후 버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가에서 운영되는 안구센터도 있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죽기 전 아직 수명이 남은 눈들을 저장, 혹은 기증받아 따로 관리하는 센터이다. 보통은 가족들에게 이식이 되는 경우도 많지만 자신들의 눈에 아직 유효기간이 남아있을 때, 안구관리 비용을 내고 최대 5년까지 안구센터에 안구를 저장해 둘 수 있다. 기증되어 있는 안구일 경우는 대기를 통해 이식을 받을 수 있다. 물론 비용도 들지만, 기증된 안구의 수에 비해 대기 번호가 워낙 길어서 대기자로 걸어둔 상태였다가 사망했을 경우 자식에 한해서 대신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들만 한 가득이지만, 오히려 긍정적인 생각도 할 수 있는 시대다.

안구이식이 가능하다는 의학의 발전은 동물의 눈에서도 유전자 변형을 통해 안구를 만들어 내거나 이식시킬 수 있는 세상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오히려 외형적으로 안구를 선택해서 교체하는 상황도 올 수 있다.

 

"오드아이가 되고 싶다면 역시 여기! 500가지가 넘는 색상을 보유하고 있습니다."라는 광고와 함께 안구쇼핑센터가 세워졌다. 더 이상 이 세상엔 시각장애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의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안구의 비용은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는 금액대로 떨여졌으며, 그마저도 과열화 되어있다. 이미 안구이식 수술 또한 단순화되어 센터에서 구매한 안구를 그 자리에서 교체가 가능하며, 내년부턴 개인이 직접 교체 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찌라시도 돌고 있다. 이제는 안구를 들고 다니면서 시력에 따라 빛에 따라 바꿔 끼울 수 있는 상황이 온 것이다. 더 이상 안경과 선글라스, 렌즈들은 사용되지 않는다. 아주 극 소수의 어떤 이들은 아직도 안경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단순히 클래식한 분위기를 좋아하거나, 안경을 쓴 자신의 얼굴이 마음에 들었을 뿐이다.


생각보다 재밌는 상상의 시간이었다. 상황에 따라 더 생각해 보면 끝도 없을 것 같아서 중간중간 그만 멈췄던 것 같다.

마지막에 생각해 본 긍정적인 미래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더 이상 이 세상인 시각장애인이 존재하지 않는다."인 것 같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한 세상을 살아가길 바라며 오늘의 상상은 여기까지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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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가 들기름을 만난다면 무적의 두부가 된다. 어색한 사람이 있다면 들기름에 부친 두부를 주며 친해져 보자.

단백질을 대표하는 고기. 그 옆에 두부는 사실 딱히 고기보다 맛있지는 않다. "고기 먹을래, 두부 먹을래"를 묻는 이상한 사람은 없으니까.

 

그런 두부에게 들기름을 만나게 해 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들기름에 구운 두부는 그만큼 강하다.

들기름에 누워있는 두부의 마음은 얼마나 편할까. "이제 내가 최고다."라고 생각하고 있어도 뭐라 할 사람이 하나도 없을 테니.

 

나는 두부가 부럽다. 나도 나를 더 최고로 보여줄 나만의 무언가가 있을 텐데.

때로는 그런 걸 나 대신 누가 찾아줬으면 좋겠다. 

 

며칠 전 가족들과 변산을 다녀왔다. 영화 변산에서 박정민 배우가 "내 고향 변산은 보여줄 것이 노을 밖에 없네."라는 말로 기억되는 변산은 서울에서 꽤 먼 곳에 있다. 그 먼 길에서는 독수리와 매도 있었고, 커다란 날개를 쭉 펴고 한 바퀴 돌고 있는 모습에선 이유 없는 자유로움도 느껴졌다.

 

채석강을 처음 보았다. 암석들이 차곡차곡 포개져 있는 절벽은 얼마나 오랜 시간들이 이곳에서 흘러갔는지 느껴졌다.

해안을 따라 바닷길을 걸으며 파도와 바람에 내 숨도 크게 포개 보았다.

 

이유 없는 감정이 있다는 걸 아는가. 이유없는 기쁨, 이유없는 슬픔.

전자는 낙관적이지만 후자는 비관적이다.

 

나는 이 멀고도 먼 곳에 나의 이유 없는 감정들을 두고 갈 거다.

그 유명한 노을도 보고 가지 않을 거다. 

그래서 또 잘 살아보고, 그 다음에 노을을 다시 보러 올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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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힘이 들거나. 아무것도 하기 싫거나, 무언가 시작하고 싶거나, 심심하거나' 등등 아주 다양하게도 그림 그릴 시간을 만든다.

대학교 다닐 때는 주로 아크릴이나 유화를 그렸었다. 물감을 두껍게 사용하는 걸 좋아했다. 

한 번은, 교수님께 핸디코트를 추천받아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다. 아마도 두꺼운 물감과 같은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신 것 같았다. 

 

자유로움. 

캔버스는 나에게 세상에 없는 어떤 것도 표현 가능한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어느 날엔 아무것도 그려져있지 않은 캔버스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고민이나 걱정들을 하얀 캔버스에 묻었다.

 

나는 미완성의 그림들도 좋아했다.

진행 중이란 느낌은 그림의 끝을 나만의 상상으로 완성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교수님은 또 그런 모습을 보고, 살짝만 더 하면 완성될 텐데 라는 말을 흘려서 두고 가시기도 하셨다.

언제나 완성은 해뒀었지만 그래도 난 그 중간의 시간들이 참 좋다.

아무도 바라볼 수 없는,

이 그림에 담긴 끝을 볼 수 있는 게 오로지 나 혼자였던 그 시간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캔버스가 생각보다 무거운 걸 알고 있을까?

사실 물감이 하나도 칠해져 있지 않은 캔버스의 무게는 처음엔 그렇게 무겁게 다가오지 않는다.

들고 갈 수 있는 적당한 크기를 선택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적당히 들만 한데? 이 정도는 들 수 있지."라는 당당함.

그 당당함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그날의 나의 체력에게 달려있다.

화방을 나와 학교로 걸어가는 중간쯤, 두 팔이 후들 후들 거림을 느낀다. 바람이 불 땐 내 두 손에 힘도 들어가야 한다.

오르막 길, 그냥 여기서 그림 그릴까란 생각도 막연하지만 잠깐 해봤었다. 

그래도 그때는 그게 재미있었다.

 

요즘의 나는 아이패드에 그림을 그린다. 

세상은 참 좋아졌다. 물론 좋아진 기능을 사용하려면 상응하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 공짜는 없지.

난 나를 사랑하는 자기애를 외면하지 않고 프로로 샀다. 좋은 선택이었다.

태블릿에서 구매한 그림 어플에는 다양한 붓의 질감을 표현할 수 있는 브러쉬들이 한가득 있다. 원하면 더 추가할 수도 있다.

그래도 물감의 두께는 표현할 수 없다. 

내가 좋아하던 두께감을 그 비싼 공간에서는 만들 수 없다.

 

전시를 보러 가는 것을 좋아한다. 작가들의 붓터치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한번 가면 못해도 3시간은 둘러보다 나오는 것 같다. 집중하는 시간이 남들보다 좋은게 확실하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은 집중의 한계가 오는 순간, 갑자기 내 허리를 빡 하고 때리는 것 같이 순간에 다가온다.

인간은 왜 허리가 아픈 걸까.

 

나에게 평생 그림그릴 거라 했던 교수님이 가끔 생각난다.

그때 당시엔 이걸로 돈을 어떻게 버나, 작가가 그렇게 가난하게 산다던데 란 생각밖에 안 들었었다.

아마도 그때는 그림이 나에게 1순위가 될 수는 없었나 보다.

교수님은 왜 그런 말을 나한테 했을까? 문득문득 아주 가끔 교수님이 기억난다. 

"아닌데요. 이젠 그림을 그리지 않아요. 교수님."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오늘도 시간을 내서 간단한 그림 하나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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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이 시작되고 며칠 안된 어느 날.

코로나 이후로 못 갔던 목욕탕이 가보고 싶어졌다.

물론, 코로나가 함께 하는 세상이 왔다 해도 사람들은 최소한으로 있는 것이 아무래도 좋겠단 생각을 했다.

집 근처 목욕탕 중 비교적 최신에 만들어진 곳, 사우나도 함께 할 수 있는 곳, 새벽 할인을 하는 곳. 걸어갈 수 있는 곳.

딱 한 군데가 남았다.

 

아쉽게도 코로나 전에 자주 갔던 곳이었기에 목욕탕 내부가 궁금해서 설레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만약 처음 가는 목욕탕이었다면, '탕 종류는 몇 개나 있을까.' 라거나 '목욕탕 내부는 큰가.', '내부에 한증막이 있을 까', '시설물의 노후 상태.' 등등 많은 생각을 해보며 그 전날 잠들 수 있었겠지.

 

어찌 됐든 나는 취준생, 그렇기에 새벽할인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 사실상 할인이 되면서 걸어갈 수 있는 게 가장 매력적이었다.

새벽 할인은 이른 아침 목욕을 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목욕탕주인의 따스한 배려.

"새벽 5시부터 8시 사이 8000원"

얼마나 매력적인 문구란 말인가. 

집에서 목욕을 할 때 찬물이 들어있는 탕과, 뜨거운 물이 들어있는 탕을 함께 쓰고 싶다는 생각을, 난 생각보다 자주 했다.

물론 생각만 했다.

왜냐면 우리 집엔 욕조가 하나만 있을 뿐만 아니라 반복해서 온도만 다른 물만 쓰고 버리다간 엄마한테 등짝 스매싱을 맞을 확률이 아주 높기 때문이지. 그래도 욕조가 있는 게 어디인가.

요즘엔 욕조가 없는 집들도 많다는 것을 들었을 땐, 어깨를 지지고 싶을 땐 도대체 그들이 뭘 할 수 있는지 상상을 해봤었다.

 

 

아주 오래전에, 내가 하던 여러 게임 중에서 목욕탕 타이쿤이란 게임이 있었다.

녹차 탕, 우유 탕, 한방 탕들을 만들어서 관리를 하는 목욕탕 주인이 되볼 수 있는 게임이었는데,

손님들이 오면 그때그때, 때도 밀어줄 수 있다. 비교적 다른 탕들을 관리하는 수고스러움보다는 아주 쉽게. 버튼 한 번씩 눌러 주고 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타이쿤 속 목욕탕은 호화스러운 탕들이 가득했지.

 

꿈처럼 잠깐의 꿈들을 꾸고 번쩍, 눈을 뜨고 옷을 입고 그렇게 나는 출발했다.

새벽 5시, 캄캄한 골목을 지나, 신호등이 파란불을 켰음에도 불구하고 차가 먼저 지나가는 그 위험한 길을 지나, 나는 목욕탕에 도착했다.

조조할인을 받고 빨간색 열쇠를 받아 인기척이라곤 전혀 없는 탈의실을 거쳐 수증기들 사이 초록색 물이 부글거리는 탕을 보았을 때, 전혀 잊고 살았던 그때 그 추억의 타이쿤 게임이 생각났던 것이다.

 

아주 놀랍게도 나보다 먼저 온 손님들이 있었다. 도대체 언제 온 걸까.

아침형 인간들은 생각보다 정말 많구나. 더 부지런하게 살아야지.

 

수증기가 가득한 목욕탕엔 온탕 3개, 냉탕 1개, 급냉탕 1개, 어린이 탕 1개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증막 하나와 건식, 습식 사우나 실도 하나씩 있었다. 코로나 이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뜨끈한 온탕에서 몸을 지졌다가, 냉탕으로 바로 들어가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주로 냉탕에 들어갈 때 1박 2일의 게스트가 되어 계곡물에 들어가는 중이라고 생각하면서 들어갔다 나온다.

그렇게 하면 1박 2일을 볼 때 계곡 입수나, 바다 입수 같은 입수게임을 할 때 더 재밌게 볼 수 있다.

냉탕에 몸을 다 담갔을 땐 당연하게도 1박 2일을 속으로 외쳐본다. "1박 2일!"

 

부자들은 아침마다 냉탕에 들어갔다 나온다던데.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 최근에 얼음을 깨고 물속에 들어간 장면이 담긴 뉴스가 순간 떠올랐다. 푸틴의 마음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니다. 표정관리가 아주 잘된 얼굴이었다. 다른 감정 이었을 것이다.

지금 내 표정은 사진으로 남겨지기엔 너무나 냉탕의 짜릿함을 가득 담고 있다.

여러모로 냉탕에서 얼굴 관리가 되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왜 마약을 할까.

냉탕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이렇게 상쾌한데. 잠깐이었지만 이를 떨며 버텼던 나의 추위에 보상이라도 해주는 듯한 시원 상쾌한 이 기분.

냉탕에 갔다 나온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기분이다.

 

 

어제 영화 "웡카"를 보고 왔다.

영화에선 다양한 능력을 가진 초콜릿들이 등장했는데, 만약 내가 초콜릿을 만들 수 있는 마법사라면 나는 냉탕의 기분을 가진 "짜릿한 새벽 폭포 초콜릿"을 만들 것이다. 

아마도 재료로는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에서 푼 눈 한 스쿱과, 번개의 빛 3조각 정도, 추가로 새벽의 공기도 좀 넣어야겠다.

그러면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김종민 씨가 입수벌칙에 당첨 됐을 때 이 초콜릿 하나만 먹어도 될 텐데.

 

어쨌든, 새벽 5시 목욕탕은 나에게 아주 기분 좋은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이 정도의 힐링이라면 2주 정도에 한 번씩은 8000원을 내고 이곳을 찾아와야겠다.

온탕 냉탕뿐만 아니라 건식 사우나와 습식 사우나도 나의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어주는 좋은 공간이었다.

한 시간 반정도의 힐링 이후, 24시간 김밥나라에 가서 6000원짜리 순두부찌개를 시켰다.

이른 아침에도 사람이 꽤 많이 차 있었다. 모두 함께 아침밥을 먹으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이 시간.

고봉밥과 펄펄 끓는 순두부찌개가 등장했을 때, 점심때나, 저녁때보다 한 주걱정도 더 푼 공깃밥에서 음식점 아줌마의 사랑이 느껴졌다.

나이가 들었는지 이젠 이런 것만 봐도 눈물은 안 나지만, 뭔가 아주 살짝의 찡한 마음이 든다.

이른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힘내길 바라는 은근한 챙겨주는 마음이 아닐까.

중간에 챙겨주신 갓 나온 뜨끈뜨끈한 계란찜 반찬 때문이었는지도.

 

목욕탕의 끝은 역시 바나나 우유지

집으로 오는 길 편의점에 들렀다. 목욕탕에서도 바나나우유를 팔았지만 2000원 이기에, 밖에 나가서 먹으면 더 싸겠지란 생각으로 룰루랄라 편의점으로 온 나는, 1800원의 바나나우유와 인사를 나눴다.

'목욕탕 아줌마, 200원만 남겨서 팔아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과 함께. 그 옆에 있던 2+1 서울우유를 집어 들고.

역시 어른이 된 지금, 목욕탕의 끝은 서울우유 커피우유지.

 

모처럼 든든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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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문득 나만의 하늘을 생각을 해봤다. 

별들이 많은 하늘도 아니고, 분홍빛 노을의 색깔을 머금고 있는 구름들이 잔뜩 채워져 있는 하늘도 아니고, 

안개가 한가득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습한 하늘도 아니고, 차가운 파란색이 가득한 새벽의 하늘도 아닌

누구도 못 보았을 나만의 하늘을 생각해 봤다. 

 

사람들은 처음엔 자기가 보았던 하늘 중 가장 마음에 든 하늘을 담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자기가 보고 싶었던 하늘을 생각해 낼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은 검은 색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어느덧 자신의 하늘만을 보고 사는 게 익숙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은?

 

우선 가장 먼저 생각될 부분은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의 하늘을 궁금해질 것이다.

그렇게 하늘들을 공유할 수 있는 기능이 생길지도 모르지.

 

그러다가 인기쟁이 하늘을 가진 사람들이 어디선가 등장해서 저작권을 요구할지도 몰라.

커스텀 된 하늘을 팔기도 할 수 있겠다.

하늘 장인은 과연 몇 살일까?

많은 하늘을 보고 살았을 나이 든 노인일 수도 있겠지만, 상상력이 가득한 어린아이들 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또 장르를 생각 안 해볼 수 없지.

기본 하늘, 판타지적인 하늘, 계절감을 담은 하늘, 알록달록한 색깔이 있는 하늘, 전혀 본 적도 없는 예술적인 하늘,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을 하늘에 담고 싶어 질지도 모르겠다.

그럼 가장 인기 있는 장르의 하늘은 무엇일까? 

텔레비전에서 12월 마지막주에 올해의 인기 하늘을 발표할지도 모른다.

아마 어플 같은 것도 만들어져서 이달의 하늘 고르기 같은 투표도 할 수도 있겠다. 

 

장소를 이동할 때 사람들은 특색 있는 하늘을 찾아갈 수도 있겠다. 맛있는 음식, 맛 좋은 커피 그런 걸 찾으러 가는 게 아니라

오늘은 이런 하늘이 보고 싶어, 오늘은 저런 하늘? 물론 내 하늘로 꾸밀 수도 있겠지만, 장소에 따라 딱 그 하늘이 어울 릴 수도 있잖아.

아마 전시관에서도 "우리가 사랑하는 100가지 하늘 전시." , "유명인이 사랑한 하늘들," , "역사로 보는 하늘의 변천사.", "세상에서 제일 인기 없었던 하늘 50가지" 등등 다양하게도 전시할 것이다.

 

또 "아름다운 하늘 만들기, 20분이면 가능합니다." 라거나 "다양한 장르의 하늘, 기초부터 완성까지" 라던가의 강의들도 생겨날지도 모른다.

 

하늘 만들기에도 빈부격차가 있게 되면 어떻게 되려나.

그건 좀 슬플 테니까 상상에서라도 생각해보지 말자.

 

그럼 그렇게 100년 정도 지나면,

원래 있던 하늘을 보고 사는 사람들이 있을까?

커스텀 하늘이 아니라 진짜 원래 있던 하늘. 어쩌면 사람들은 원래 있던 하늘의 존재 자체도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어떻게 원래 하늘로 바꾸는 지도 까먹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금 내 눈에 보이는 하늘은 어쩌면 먼 옛날의 누군가가 만들어 둔 인기 하늘 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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