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았던 어느 하루, 경희궁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원래도 좋아했던 에스프레소를 유럽여행을 통해 더 좋아하게 된 나는 오늘도 이탈리아에서 마셨던 그 맛을 잊지 못해 주문해 보았다. 그리고 메뉴판 끝에 내가 좋아하는 샤케라또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들 샤케라또에 대해 알고 있는가? 어느 날 문득 처음 가본 카페에서 샤케라또를 발견했다. 이름이 참 특이하네 싶었던 나는 주저없이 주문했고 원래도 쓰고 단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기가 막힌 데스티니를 느낄 수 있었던 맛이었다. 에스프레소를 시럽과 함께 얼음과 미친 듯이 흔들어 마시는 음료를 도대체 누가 처음 만들어 먹었을까? 그 누가 되었든 내 입맛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카페에 잘 없는 메뉴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메뉴판에서 만날 때는 기대감에 부풀어 주문하게 되는 음료 중 하나이다.
다행히도 나는 카페인에 놀라울 정도로 무디다. 하루에 커피를 5잔 마셔도 전혀 두근 거리지 않는다. 잠도 물론 잘 잔다. 그렇기에 부담 없이 다양한 커피를 맛보고 즐길 수 있다. 처음 에스프레소를 주문한 날 느꼈던 작디작은 나의 컵을 기억하며 두 번째로 여운을 즐길 샤케라또도 같이 주문했다.
커피가 나오길 기다리며 창가쪽에 여유롭게 자리를 잡았다. 창문 밖에 조경으로 돌들을 담처럼 쌓아 넣어둔 벽을 보고 있자니 날씨가 딱 이 정도 가을의 느낌이 날 때 친구랑 같이 간 카페에서 주문했던 후추 에스프레소가 생각났다. 성당을 전망으로 옥상에 있는 카페였는데 메뉴를 주문하러 간 데스크가 이런 돌들로 껴서 만들어져 있었다. 사실 그때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때 주문했던 후추 에스프레소 때문이었다. 후추가 생각보다 에스프레소랑 어울리데?
후추 에스프레소를 생각하다 내가 언제부터 커피를 이렇게 좋아 했었나 기억을 되돌려 보았다. 아마도 대학생 때 처음 만났던 커피 장인이 내가 커피를 좋아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나는 대학생이 되면서 드디어 커피를 당당하게 마실 수 있었다. 초등학생 때 엄마 옆에서 한 개씩 얻어먹었던 에이스 과자에 묻힌 맥심커피 맛. 나의 소중한 기억 중 하나이다. 우리 엄마는 커피는 커서 먹어야 된다고 했었다. 그리고 지금에나 카페들이 이렇게 많지 사실 내가 고등학생 때는 카페도 그렇게 많이 있지 않았었다. 있어도 핫초코를 먹었었지. 그렇기에 대학생 때부터 진정한 커피를 마시게 되었었는데 진정한 커피 맛에 눈뜬 날이 바로 친구들과 간 정동진 여행 때였다.
정동진역 옆에 있는 해돋이를 볼수 있는 카페에는 커피 장인이 살고 있다. 대학생 때 갔던 기억이라 지금은 없어졌을 수도 있겠지만 그곳에는 엄청난 장인이 바다와 함께 npc처럼 존재했다. 그 당시 밤 기차를 타고 정동진역에서 내리면 새벽이 지날 때까지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1. 새벽이 지날 때 까지 깜깜한 새벽 공기를 맞으며 역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는다.
2. 기차가 정동진 역에 도착하자마자 역 앞에서 방을 빌려주기 위해 기다리고 계신 여러 어르신들 중 한 분의 집으로 가서 3만원을 내고 대실한다.
3. 걸어서 갈수 있는 위치의 24시간 하는 카페를 찾아간다.
우선 첫번째는 해보려다가 너무 무서워서 그만뒀다. 정동진을 찾아갈 때쯤엔 내 시간은 항상 겨울이었는데 추운 바람과 함께 노숙을 하기엔 그곳은 너무 깜깜했다. 두 번째, 친구들과 선택했던 인심 좋아 보이는 할머니네 집은 너무나도 더러웠다. 바닥이 끈적거리는 건 양말로 어떻게든 버텨보았지만 침대 위에 머리카락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의 털은 3만원을 깃털처럼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의 더러움이었다. 우리는 바닥에도 침대에도 못 앉아 있다가 해가 뜨자마자 벗어났다. 소중한 추억이며 값진 경험이었다. 세 번째로 선택했던 카페는 폭신한 기다란 의자가 가득 있었다. 커피 냄새가 가득했던 그곳은 우리 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와서 따뜻한 커피를 시켜 마셨다. 그 새벽에 자리가 없을 정도였으니 우리만 몰랐던 히든 카페였던 것 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할 때쯤 바리스타 자격증이 줄줄이 있는 한쪽 벽을 보았다. 장인이 살고 있었다. 외국어로 휘갈겨 뭔가를 증명하는 것 같이 생긴 자격증들이 한가득 있었다. 아저씨 장인이셨구나 싶은 마음으로 마셨던 커피는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아직 잊히지가 않는다. 여기저기 따뜻한 커피로 몸을 데우고 수면제를 먹은 것 같이 픽픽 쓰러져서 자는 모습을 보면 진짜 게임 속 여관느낌이었다. 해가 뜨기 시작하면 통유리였던 카페에서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주황색의 빛이 카페 가득 들어오던 그날의 따스함은 오랫동안 기억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창문 밖으로 선선한 바람이 흘러 들어왔다. 어디선가 나타난 호랑나비가 내 옆에서 날아다녔다. 열린 창문은 못 찾고 닫힌 창문들에만 다가가 부딪히는 중이라 문을 열어줘야 되나 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나의 커피들이 나왔다.
나의 샤케라또. 그건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가 아니였다. 내 거품 어디 갔어?
10월의 시작, 나의 설레는 마음은 샤케라또 거품처럼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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