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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우리 아파트 단지는 지금 엘리베이터 공사를 한다. 4월부터 9월까지의 대공사. 랜덤인 것 같은 공사 날짜가 엘리베이터에 공지되었을 때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던 모두가 조용해졌다. 3월의 선선했던 그날에 우리가 그토록 조용해졌던 이유는 별거 없었다. 무려 한 달 동안 하는 대 공사에 하필이면 가장 더울 때의 한 달이 우리 아파트가 된 것뿐이랄까.
초조하게 다가오는 공사날짜에 맞춰 물이나 쌀 등 무거울 만한 택배들을 미리미리 주문해 두었다. 그래도 한 달이면 길고도 짧은 시간이니까. 사람들도 모두가 한 마음이 된 것 같이 비슷하게 준비해 두는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됐겠지.(이 문장은 플레그였다.)"라는 생각과 함께 기다리던 엘리베이터 공사가 시작되었다. 
 
최근 여름에 하는 엘리베이터 공사로 인해 고령의 어르신들께서 집안에서 발이 묶여 병원도 못 가고 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현실이 된 이 순간, 가령 어르신들 뿐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내 나이 아직 젊다면 젊은 나이에 속하는 데도 정말 땀이 비 오듯 하더라. 단순한 근력 운동도, 유산소 운동도 아니다. 일직선으로 이어진 계단도 아닌 이 돌고 돌아야 되는 무수한 계단은 공포로 다가오기 충분했다. 그것도 고층에 살고 있다면? 나도 이렇게 힘든데 어르신들은 정말 아찔하다. 
우리 집은 17층이다. 처음부터 냉장고를 채워둘 것이 아니었다. 운동을 했어야 했다. 체력을 쌓아 뒀어야 됐다는 말이다.
생각보다 체력은 쉽게 쌓이지 않았다. 재활용을 버리러 가는 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날,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날, 외식하러 가는 날, 택배를 찾으러 가는 날, 자격증 받으러 간 날, 엄마랑 운동 가는 날. 모든 날들을 다 쌓아도 나의 체력은 그대로였고 그때마다 내 숨은 턱끝까지 차오르며 곧 죽을 사람처럼 헉헉거렸다. 이 정도면 평소에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건지 반성을 해야 될 체력이었다.
 
숨찬 하루하루를 보내던 우리에게 장마가 왔다.

비가 온다. = 우산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

이 수식은 평소엔 간단하면서도 상황에 따라 무서운 결괏값을 가지고 있다. 엘리베이터 공사를 하는 이 시점에선 우산을 깜빡한다면 집까지 다시 걸어 올라와 우산을 가져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장마가 시작되고 며칠 후, 누군가 인간은 진화의 동물이라 했던가. 사람들이 문 앞에 우산을 두기 시작했다. 
 
이렇게 힘겹게 집을 나가면 집으로 돌아오는 나에게는 정말 아무것도, 아무런 짐을 들고 올라오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인생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집을 나간 사람 = 집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운반할 사람 

참 웃긴 게 막상 나가면 책임감이 생겨서 뭐라도 사서 오게 된다. 내가 가족을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 이 기회에 알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묵직해진 두 손에서 가족의 사랑을 느꼈다면 이제 다시 현실과 마주해야 할 때. 13층까지 정도를 올라가면 가족의 사랑이든 뭐든 다 내려 두고 오로지 내 몸 하나만이라도 집으로 던지고 싶다. 힘겹게 집에 들어간 후엔 가족들의 손길이 느껴진다. 내가 아닌 내가 가져온 나의 사랑(보통 먹을 거)으로.
 
택배와 배달과도 거리를 두게 되는데(우리는 이때 하필이면 캐리어가 망가져서 두 번이나 캐리어를 받아야 했다.)
원래부터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에 대해 차이가 컸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왜 이렇게 배달음식이 땡기고 사고 싶어지는 게 많아질까. 그래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음식점 대부분 가서 먹는 게 배달해서 먹는 음식 값보다 싸다. 배달비를 내니까 가격이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던 우리는 거의 500원에서 1000원 차이가 나는 가격을 보고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를 등지게 되었다. 포장에서도 가게에서 포장하는 가격이랑 앱에서 할인받고 주문하는 가격이랑 다르더라. 아마도 수수료 때문이겠지라는 생각에서도 예전에 보였던 동네 배달북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이 기회에 배달을 끊고 직접 가서 포장해 오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우리가 얼마나 편안함만을 추구하며 살았었나에 대해서도 고찰해 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공사를 통한 또 한 가지의 순기능, 바로 주민들과 꽤 자주 볼 기회가 생긴다. 적어도 도착지점이 나의 가는 길 사이에 있거나 나의 도착지점보다 위라면 우리는 함께 걷는다. 물론 아무 말도 없이 걷기도 하지만 보통 그 순간의 마음은 같다. 너 마음이 내 마음이다 보니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묻는 질문 "몇 층 가세요."는 대답으로 들려올 그곳이 어디든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주기 충분한 근본의 힘이 된다. 아이들과도 자주 만날 수 있는데 함께 가진 못한다. 워낙 체력이 달라서일까. 날쌘돌이도 이런 날쌘돌이가 없다. 환한 그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하염없이 나의 젊은 날이 그리워 질 정도였다. 순수한 아이들은 오히려 자신의 도착지점에서 나를 기다려 준다. 힘내라는 응원과 함께 밝은 인사를 하고 뿌듯하게 집으로 들어가는 아이들. 정말 귀여우면서도 그들의 체력이 너무 부럽다. 
중간 중간의 층 사이에 쉬어가라는 의자가 하나씩 있는데 여기서도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이곳에 앉아 숨 좀 쉬었다가 갈지, 지친 나의 멱살을 잡고 집에 올라가서 쉴지. 나는 거의 이중인격이 된 것 같이 번뇌에 빠진다. 처음에는 보일 때마다 쉬어보았다. 한결 편하긴 하지만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늘어졌다. 땅만 보고 쉬지 않고 올라간 날은 4분 만에 도착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체력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시간으로 한 시간을 쏟아야 했다. 적당히 쉬다가 적당히 올라가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는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언제나 순기능만 있을 순 없는 이 상황에서 사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순간은 택배도, 배달도, 약속이 있는 날도 아닌 누군가의 담배 타임이다.
흡연. 
우리 가족은 아무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 덕에 담배냄새에 정말 예민하다. 그리고 일단 간접 흡연으로도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 다는 것이 가장 별로다. 니코틴이 주는 행복을 느끼지도 못한 채 암에 한걸음 다가가야 된다니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순간이란 말인가. 모든 암의 첫 번째 원인이 되는 것이 흡연이다. 담배는 담배를 피우는 시간이 어느 정도였든지 금연을 하는 그 순간부터 몸에 반응이 긍정적으로 온다. 그런 담배. 관리 사무소에서 가끔 마이크를 잡고 방송을 한다. 세대 내의 흡연으로 인해 많은 민원이 발생하니 화장실이나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 것을 권유하는 내용의 방송.
하지만 엘리베이터 공사가 시작되고 담배냄새는 하루를 멀다하고 하루에도 3,4번씩 집안을 가득 채웠다. 
물론 그들이 이해는 간다. 담배를 피기 위해 오르락 내리락 하기 힘들 수 있다. 그럼 그냥 시간대를 정해서 방송을 해줬으면 좋겠다.  차라리 그 시간에 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고 있는 게 나을 것 같다. 담배는 왜 태워야 될까. 그냥 씹어 먹는 사탕이나 껌으로 개발되었으면 좋겠다. 

사람의 권리는 참 답이 없는 것 같다. 나의 권리가 있다면 상대방의 권리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함께 협력하며 살아가는 세상에서 더 나은 방향을 찾아 끊임없이 탐구하며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

담배에 대해서 신기한 상황도 있었다.

어느 날은 3시부터 6시까지 거의 30분에 한 번씩 담배냄새가 나길래, 처음에는 짜증이 났지만 연거푸 나니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담배를 찾게 될 상황이면 담배를 피울게 아니라 울어야 되는 거 아닌가. 본 적도 없는 누군가가 걱정이 되는 순간이었다. 나 이 정도면 인류애가 꽤 있는 것 같기도. 

 

아무쪼록 엘리베이터 공사가 하루 빨리 끝나서 안전하게 새롭게 다시 태어나길 기대한다.

그동안 너무 엘리베이터에 대해 감사함을 못 느꼈던 것 같다.

엘리베이터 공사가 끝나면 물론 아쉬운 부분도 생기겠지만 이번 기회에 당연하게 생각했던 부분에 대해 감사함을 알아갈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 그리고 이번 기회에 살면서 볼일 없었던 스티커를 만나게 되었다. 엘리베이터가 들어 있는 벽에 붙어 있는 스티커.

무슨 의미인지는 갤럭시 서클투 서치로 찾아보기까지 했는데 잘 모르겠다. 대충 주의하라는 경고 스티커가 아닐까 예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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