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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힘이 들거나. 아무것도 하기 싫거나, 무언가 시작하고 싶거나, 심심하거나' 등등 아주 다양하게도 그림 그릴 시간을 만든다.

대학교 다닐 때는 주로 아크릴이나 유화를 그렸었다. 물감을 두껍게 사용하는 걸 좋아했다. 

한 번은, 교수님께 핸디코트를 추천받아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다. 아마도 두꺼운 물감과 같은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신 것 같았다. 

 

자유로움. 

캔버스는 나에게 세상에 없는 어떤 것도 표현 가능한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어느 날엔 아무것도 그려져있지 않은 캔버스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고민이나 걱정들을 하얀 캔버스에 묻었다.

 

나는 미완성의 그림들도 좋아했다.

진행 중이란 느낌은 그림의 끝을 나만의 상상으로 완성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교수님은 또 그런 모습을 보고, 살짝만 더 하면 완성될 텐데 라는 말을 흘려서 두고 가시기도 하셨다.

언제나 완성은 해뒀었지만 그래도 난 그 중간의 시간들이 참 좋다.

아무도 바라볼 수 없는,

이 그림에 담긴 끝을 볼 수 있는 게 오로지 나 혼자였던 그 시간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캔버스가 생각보다 무거운 걸 알고 있을까?

사실 물감이 하나도 칠해져 있지 않은 캔버스의 무게는 처음엔 그렇게 무겁게 다가오지 않는다.

들고 갈 수 있는 적당한 크기를 선택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적당히 들만 한데? 이 정도는 들 수 있지."라는 당당함.

그 당당함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그날의 나의 체력에게 달려있다.

화방을 나와 학교로 걸어가는 중간쯤, 두 팔이 후들 후들 거림을 느낀다. 바람이 불 땐 내 두 손에 힘도 들어가야 한다.

오르막 길, 그냥 여기서 그림 그릴까란 생각도 막연하지만 잠깐 해봤었다. 

그래도 그때는 그게 재미있었다.

 

요즘의 나는 아이패드에 그림을 그린다. 

세상은 참 좋아졌다. 물론 좋아진 기능을 사용하려면 상응하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 공짜는 없지.

난 나를 사랑하는 자기애를 외면하지 않고 프로로 샀다. 좋은 선택이었다.

태블릿에서 구매한 그림 어플에는 다양한 붓의 질감을 표현할 수 있는 브러쉬들이 한가득 있다. 원하면 더 추가할 수도 있다.

그래도 물감의 두께는 표현할 수 없다. 

내가 좋아하던 두께감을 그 비싼 공간에서는 만들 수 없다.

 

전시를 보러 가는 것을 좋아한다. 작가들의 붓터치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한번 가면 못해도 3시간은 둘러보다 나오는 것 같다. 집중하는 시간이 남들보다 좋은게 확실하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은 집중의 한계가 오는 순간, 갑자기 내 허리를 빡 하고 때리는 것 같이 순간에 다가온다.

인간은 왜 허리가 아픈 걸까.

 

나에게 평생 그림그릴 거라 했던 교수님이 가끔 생각난다.

그때 당시엔 이걸로 돈을 어떻게 버나, 작가가 그렇게 가난하게 산다던데 란 생각밖에 안 들었었다.

아마도 그때는 그림이 나에게 1순위가 될 수는 없었나 보다.

교수님은 왜 그런 말을 나한테 했을까? 문득문득 아주 가끔 교수님이 기억난다. 

"아닌데요. 이젠 그림을 그리지 않아요. 교수님."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오늘도 시간을 내서 간단한 그림 하나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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