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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훈 : 미래를 위한 준비, 때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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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8 - 2024.06.05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았던 나의 도전이 드디어 끝이 났다.

 

4월 8일 아침 8시 40분까지 오라는 문자를 받고, 나는 요양 보호사 교육원을 들어갔다. 문 앞 바로 앞자리, 선생님도 실습 현장도 바로 볼 수 있는 사실상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 앉기 위해 남들보다 더 빠르게 도착했다. 자리에 앉아 나의 동기들이 하나둘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첫날이라 다른 날 보다 특별했던 건 앞으로 우리가 배울 내용이 담긴 교재를 받았다는 건데, 바로 내 앞 공동 테이블에서 한 권씩 가져갈 수 있게 놓여 있었다. 으레 짐작은 했지만 내 또래의 젊은 사람은 없었다. 지난번 기수에는 20대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이번 기수의 내 동기들은 내가 제일 젊었고 이후  4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렇다. 나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80만원 정도의 돈을 내고 교육원을 등록했다.

최근 뉴스들을 통해 AI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에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가치 있는 직업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요양보호사를 떠올리게 되었다. 마침 기사 바로 밑에 있던 기사가 고령화 시대였던 것도 한몫했다.

무엇보다 취업 준비를 하다가 너무 나태해진 내자신이 꼴도 보기 싫어서 뭐라도 생산적인 것을 배워보자는 마음이 제일 컸을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 상황으로 나는 돈을 벌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돈이 나가지 않을 수 있는 선에서 학원을 알아보았다.

1. 차비가 안나올 수 있게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가.

2.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집으로 올 수 있는 거리인가.

3. 내 소중한 돈을 써도 될 정도로 믿을 만한 교육기관인가.

4. 내 소중한 시간을 들이기에 망설일 틈 없이 최대한 빠르게 수업이 개강하는 가.

 

이 정도의 상황에서 맞는 곳을 찾기엔 굉장히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 추측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선택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2024년이 시작되면서 국비지원이 대폭 감소했기 때문이었는데(2023년까지만 해도 55% 정도 지원이 되었던 것 같다. 지금은 10% 지원.) 그 결과 개강 인원이 채워지지 않은 많은 요양보호사 교육원들이 개강을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굳건하게 5년 인증 우수기관으로 인증된 교육기관이 우리집에서 20분 정도만 걸어가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경기도에 살면서 걸어서 20분 정도면 가까운 편이라 생각했던 나는 꽤 조건에 맞는 이 기관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 아주 특이한 문구가 내 눈에 들어왔다. 점심에 갓 지은 따끈한 쌀밥을 준다는. 뭐지. 이건?

처음엔 왜 밥을 학원에서 주는 것일까란 의문이 들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의문이 풀렸다. 아마 이 자격증을 준비하는 연령층이 우리 엄마 나이 때정도라 학원에서 밥을 주면 반찬만 싸서 오면 점심이 해결되니 꽤 매력 있는 솔깃함이었을 것 같다. 나 또한 이 문구에서 집까지 못 걸어오겠으면 학원에서 밥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다른 학원들 보다 10만원 정도 비싼 등록비였는데 일단 가보자는 마음으로 교육원을 바로 찾아갔다. 네이버 지도에서만 봤을 땐 초행길일 거라 생각했던 가는 길이 항상 밤마다 운동하러 지나갔던 그 길이란 걸 알고 묘하게 운명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익숙한 건물외관에서 낯선 내부 공간으로 들어가는 순간.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들어갔다.  살짝 열린 교실에서 선배 기수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지금 생각해 보면 쉬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수업을 듣는데 이 정도로 밝을 수 있다면 여긴 충분히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고 나는 그날 다른 학원보다 10만원 정도 더 비싼 등록비를 지불하고 등록하고 나왔다.  

 

두근 두근한 마음으로 친구들에게도 비밀로 하고 일단 수업을 기다렸다.

수업을 시작하니 가장 만족했던 변화가 바로 아침 일찍 일어나는 나 자신이었다. 9시 전에 도착해서 비콘과 출석을 해야 했기에 7시 40분쯤엔 일어나서 준비를 했다. 집에서 교육원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20분이면 되는 거리에 있기에 산책하는 마음을 가지고 출발하면 딱이었다. 경우의 수가 있다면 가는 길에 신호등이 3개나 있는 점이었다. 나는 살짝의 낯을 가리기에 점심은 집으로 와서 먹기로 결정하고 점심시간마다 집으로 뛰어 왔다. 낯가림이 끝날 때쯤엔 엄마와 밥을 먹기 위해 뛰어 왔다. 수업을 배우던 중 어르신들이 가장 행복해하는 순간이 함께 밥을 먹을 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로운 마음이 그 정도로 큰 것일까 하다가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도 밥을 혼자 먹기 싫을 것 같았다. 인간은 진화의 동물이라 하지 않았는가. 20분이 15분 되고 15분이 11분이 되는 기염을 토할 하체 근력을 얻었다. 그리고 집에 오니까 이상하게 힘들었던 게 싹 사라지는 게 아니겠는가. 아무래도 엄마 버프가 아니었나 싶다.

 

5년 인증 우수기관이였던 우리 교육원은 정말 엄청난 공부량을 가지고 있었다. 시험을 무슨 일주일에 3, 4번을 보는데 나중엔 8번인가 봐서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이게 맞아?" 싶더라니까. 젊은 나도 이런데 내 소중한 동기들은 더 힘들어했다. 시험을 보고 일정 범위를 넘기지 못하고 틀리면 재시험도 보는데 은근히 이걸로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

누가 요양보호사 쉽게 따는 거라 했어.

그래도 이 막대한 시험을 통해 문제를 거의 외우다 싶이 할 수 있었고 우리 기수 모두 한 번에 자격증 시험을 통과했다.

 

이론수업도 배우고 실습수업도 배우고 나면 진짜 현장으로 가는 실습만이 남게 되는데, 요양원 5일, 재가 5일을 가게 된다.

재가에는 주간보호센터 3일과 직접 어르신 집에 가는 재가방문요양 2일로 나뉜다. 사람마다 5일 내에서 나눠지는 일수는 달라지는 것 같기도 했다.

보통 실습은 둘씩 간다. 혼자도 가는 것 같지만 나의 경우는 모든 실습에 파트너 동기가 있었다. 그 덕에 마음이 훨씬 편안하게 실습을 할 수 있었다.

실습을 통해 느낀 점은 그동안 생각해보지 않았던 어르신들의 감정이였던 것 같다. 나는 살면서 노인의 마음을 이해해 보려고 한 적이 있었을까? 참 못났던 과거의 나였다. 모두가 지나갈 그 길에 대해 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일까. 그래도 배움을 통해 지금은 조금 더 달라진 나를 얻게 된 것 같다.

 

실습에서 몇가지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일단 요양원에서 있었던 일들이다.

침대에 누워 계시며 티비 광고 소리에 맞춰서 손으로 리듬을 타고 계셨던 어르신이 제일 먼저 기억이 난다. 물론 이 어르신께 식사도움과 간식 도움을 하면서 애착이 생겨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르신이 웃으면 나도 모르게 같이 미소가 지어졌던 좋은 기억이 있다.

또 하나는 남자 어르신이였는데 내가 옷수납장을 정리해 드리니 고맙다며 레쓰비를 주셨던 것.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가 받게 된 레쓰비는 지금까지도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이건 진짜 감동적인 상황이었는데 치매 어르신께서 바닥에 침을 뱉는 습관을 가지고 계신 분이 계셨었다. 그런데 내가 지나가니까 잠깐 멈추셨었다. 찰나였지만 어르신이 나를 보고 침을 안 뱉었다는 게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아마 아무도 그때의 내 감정은 모를 것이다.

웃겼던 기억도 있다. 뜨거운 물이나 음료를 드릴 때 반드시 찬물을 섞어서 온도를 조절해서 드려야 하는 것을 수업에서 배웠기에 어떤 어르신께서 커피를 타달라 하셔서 적당한 온도에 맞춰 드렸다가 "다시" 소리를 들었다. 너무 찬물을 많이 섞었나 하고 조금 덜 섞어서 다시 드렸다가 들켰다. 뜨거운 물로만 탄게 맞냐며 추긍하셨지. 모른 체 하면서 있다가 또다시 "다시"를 듣고 진짜 조금만 찬물을 넣어 다시 만들어 드렸다가 또다시 실패했었다. 어르신 목에 과연 이게 괜찮은 걸까 싶어 슬쩍 지나가는 선생님께 물어보았다 정답을 들었다. "이 어르신은 뜨거운 물에 타서 전자레인지에 약간 더 돌려드려야 해요."

어르신은 내가 얼마나 답답하셨을 까. 다시 타드리고 만족하시는 어르신의 얼굴을 보고 역시 배움과 경험은 다르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며 묘하게 그렇게 뜨거운 걸 잘드시는 어르신의 목을 걱정하고 있던 내 모습이 웃겼던 날이었다.

주간보호센터에서는,

첫날부터 계속해서 나를 보고 계신 어르신이 계셨다. 슬쩍 가서 말벗을 해드리려고 갔다가 따뜻한 말을 들었다. 일이 없을 땐 앉아야 된다고, 그러다 무릎 다 나간다며 내 손을 잡아끌어 옆에 앉혀주셨다.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하다가 다음 날에 나를 보자마자 손짓을 하며 이리 와보라 하셨다. 가봤더니 어르신이 손에 꼭 쥐고 계셨던 사탕을 나에게 주셨다. 나 주려고 가져오셨다며 활짝 웃으시길래 나 또한 웃음이 낫다. 그러다가 오후에 어르신께 가서 사탕 잘 먹었다 했더니 기억을 못 하셨다. 그 순간 마음이 너무 아팠다.

또 다른 어르신은 파킨슨 병을 앓고 계셨는데 내가 아파하실 때 옆에서 도움을 드렸던 걸 기억하고 괜찮아지시자마자 나에게 오셔서 끌어안아주셨던 것.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을 참 많이 느꼈다.

마지막 재가에서는, 

치매가 있으신 어르신 집에 가서 집청소도 하고 말벗도 해드리며 함께 있었는데 어르신이 고스톱을 좋아하 신다 하셨다. 치매선생님도 오시고 고스톱 모양의 퍼즐도 맞추어 보시다가(고스톱 광 모양 퍼즐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어르신이 고스톱을 치시고 싶어 하시길래 같이 간 동기 선생님과 함께 게임에 참가했다. 앞서 퍼즐 모양도 고스톱 모양이었던 고스톱을 사랑하는 어르신께 고스톱 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며 게임을 시작했다. 나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에 대해 알려주시는 게 좋으셨는지 계속 자신한테 패를 보여줘 보라 하시면서 자세히 알려주셨다. 그리고 꼭 말 끝에 절대 친구들이랑은 돈을 놓고 고스톱 치면 안된다고 하시면서 주의를 주셨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게임을 하다가 연속해서 내가 이길 때가 있자 이게 바로 초심자의 행운인가 보다고 얘기하며 좋아했더니 어르신도 좋아하셨다. 그렇게 하나하나 알아갈 때쯤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아마 지금까지도 같이 갔던 동기선생님과 치매 선생님과 어르신은 모를 만한 사실 하나가 있다. 사실 난 고스톱을 할 줄 안다. 핸드폰에 앱도 깔았던 고스톱게임. 게임 머니였지만 몇억씩 따고 좋아했던 때가 있었지. 연달아 이겼을 때 아차 싶어 다시 모른 척을 하면서 게임을 했었다. 그래도 어르신이 좋아했으니 거짓말이라도 선한 거짓말이었다. 

 

나는 기억력이 좋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습 때의 어르신들이 어제의 기억처럼 생생하게 하나하나 떠오른다.

그만큼 나에게 좋았던 기억이었던 것 같다.

실습 마지막 날 어르신들이 건강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의 실습에 마침표를 찍었다.

 

내 소중한 동기. 나와 함께 실습을 나간 동기와 나의 나이차이는 무려 40살 정도였다. 이 부분이 놀랍고도 감사한 게 사실 나는 40살의 나이차이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나의 동기가 내게 해준 배려 덕분이지 않았을까. 하시는 행동 하나하나에서 엄마가 스쳐 지나가서 더 귀여웠다. 어르신께 귀엽다는 단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너무 귀여우셨는 걸. 힘들 때도 즐거울 때도 같이 있다 보니 지금도 가끔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언제 내가 40대, 50대, 60대, 70대의 사람들과 같이 수업을 들어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지금 생각해도 참 잘 선택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실습 장소에서 만난 요양보호사님들이 하나같이 20년 후에 다시 오라고 말씀해 주셨다. 지금은 더 해보고 싶은 거 해보다가 나중에 다시 오라고. 그때 다시 만나자고 말씀해 주셔서 마음이 찡했다. 나에게 요양 보호사 자격증을 딸 수 있게 만들어 줬던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참 소중하게 남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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